‘방송 공정성=근로조건’…법조인들 “획기적인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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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MBC 해직언론인 해고 무효 2심 판결문

2012년 170일 파업을 벌이다 해고 및 징계 처분을 받은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외 43명이 MBC를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파업의 목적・시기 및 절차의 적법성・파업 수단 부분의 상당성 모두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방송의 공정성’이 언론종사자들의 주요한 근로조건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2민사부(부장판사 김대웅)은 지난 29일 서관 제305호 법정에서 열린 MBC 해직언론인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이용마 전 홍보국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최승호 PD, 박성호 기자, 박성제 기자 등을 비롯한 MBC노조 조합원 4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등 소송 2심 선고에서 피고인 MBC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결과가 나오자 MBC는 당일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통해 상고할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의 핵심쟁점인 △파업의 목적 △시기 및 절차의 적법성△파업 수단 부분의 상당성 모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 지난 170일 파업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방송 공정성 확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2년 MBC노조의 170일 파업은 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이 파업의 주된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에 있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핵심쟁점 중 파업의 목적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이다. 지난 170일 파업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방송 공정성 확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2년 MBC노조의 170일 파업은 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으며, '방송 공정성‘은 MBC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외견상 경영권에 속하는 대표이사(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 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쟁의행위라도, 그것이 오로지 대표이사의 교체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으로서 주장된 것이라면, 대표이사의 퇴진 그 자체는 쟁의행위의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으로 볼 수 없다”며 “따라서 그러한 쟁의행위가 반드시 목적의 정당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지난 1심과 2심 재판 과정에서 MBC는 MBC노조 파업의 목적은 ‘김재철 전 사장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펼쳐진 것이라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단체협약 상 명시된 공정방송 의무, 즉 공정방송협의회(이하 공방협) 개최를 거부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재판부는 MBC가 방송법 등 관계법령과 단체협약에 의해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MBC 구성원들의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이 악화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김 전 사장 퇴진 요구는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보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파업에 이른 주된 목적은 김재철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그러므로 이 사건 파업의 주된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에 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해고 등 징계무효소송 2심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4월 30일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조능희)가 서울 성암로 MBC신사옥 앞 광장에서 ‘170일 파업 해고・징계 무효 판결 환영행사’를 연 가운데 해직언론인을 비롯한 MBC 구성원들이 해고자 전원 복직을 촉구하고 있다. ⓒPD저널

파업 개시 시기 및 절차, 수단 및 방법에 있어서도 노조 측 손 들어줘

또 다른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 파업의 시기 및 절차의 적법 여부에 있어서도 법원은 적법한 파업이었다고 인정했다.

사측이 노조의 파업은 불법 파업이라고 주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 3일 만에 파업에 돌입하는 등 회사가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MBC가 노조의 공방협 개최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던 점 △노조의 거듭된 공방협 출석 요구에도 김재철 사장과 MBC가 응하지 않았던 점 △공방협 개최 및 불공정 보도 문제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 파업할 것임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던 점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하고 MBC에 파업 발생을 통보한 점 등을 들어 파업 개시의 시기나 절차와 관련하여 관련 법규에 정한 요건에 다소 미비된 점이 있더라도 이로 인해 파업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까지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파업의 수단 및 방법의 상당성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인용해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MBC노조가 2012년 파업 당시 본사 1층 로비에서 집회를 하고, 일부 조합원들이 보도국이 있는 5층이나 사장실이 있는 10층에서 농성을 하는 등의 쟁의행위를 벌였지만 파업 기간에 비추어 볼 때 비교적 단기간에 그쳤고, 회사를 전면적·배타적으로 점거하지는 않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일부 방송에 차질이 빚어졌으나 방송 프로그램의 송출 자체가 중단되지는 않았고, 노조가 선거방송과 올림픽 방송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 등은 제공한 점, 파업 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볼 만한 행위는 일어나지 않은 점 등 파업 자체의 정당성에 영향을 줄 정도의 행위라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을 종합한 결과 170일 파업의 수단 및 방법 역시 상당하다고 보았다.

▲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PD)와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노조 편성제작부위원장을 맡았던 김민식 PD가 서로 끌어안고 해고 등 징계무효소송 2심 승소를 기뻐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제공

“해고 등 징계처분은 징계재량권의 일탈・남용”

이 같은 점들에 비추어 재판부는 MBC가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이용마 전 홍보국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최승호 PD, 박성호 기자, 박성제 기자 등 6명을 해고하고 38명에 대해 정직 등 징계 조치를 한 것은 “징계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 무효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정영하 전 위원장 외 43명에게 내려진 징계처분 모두 ‘무효’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징계처분이 무효인 이상 정영하 전 위원장 외 43명이 근로계약관계가 유효함에도 MBC의 귀책사유로 인해 근로 제공을 하지 못한 셈이 되므로 사측에 임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MBC는 해고자 6명에게는 각 2000만 원, 나머지 원고 38명에게는 각 100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MBC기자협회장을 맡았던 박성호 전 MBC 기자가 동료와 함께 승소의 기쁨을 나구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제공

“해고 등 징계무효소송 2심 판결,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킨 획기적 판결”

이번 판결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언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준현 변호사는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킨 굉장히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방송의 공정성이 언론종사자들의 중요한 근로조건 중 하나이고,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한 파업에 대해 정당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파업이라는 것은 주로 노동자의 근로조건 중 경제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며 “‘방송의 공정성’은 굉장히 추상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언론사와 언론인의 역할이자 중요 근로조건으로 인정해줬다는 것은 언론사가 앞으로 공정성에 관한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또한 이번 판결은 방송종사자, 언론종사자들이 사측에 방송의 공정성과 방송의 독립성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을 한 재판관이 대단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MBC노조 측 법률대리인으로 해고무효 소송을 비롯한 다수의 소송을 맡고 있는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도 선고 직후 이번 판결이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이 언론 종사자들의 ‘기본 근로조건’임을 거듭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며 “MBC는 경영진의 사유 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이자 방송 종사자들의 일터다. 더 이상 공영방송을 사유화 하려는 시도가 오늘 판결, 누적된 판결로 인해 중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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