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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05:01
  • 수정 2015.05.05 09:11

“‘미로찾기’와 미디어 공공성 확립, 결국 같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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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디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나선 언론노조 백재웅 조직쟁의실장

지난 22일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은 서울 상암동에서 ‘미로찾기’ 운동 출범을 선언했다.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 찾기’를 뜻하는 ‘미로찾기’는 간접고용과 열정페이로 점철된 현재의 미디어 산업을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미디어 산업의 ‘장그래’ 문제, ‘열정페이에 신음하면서, 열정페이를 비판하는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미디어 비정규직의 고질적인 문제를 언론노조가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직은 미로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 ‘미로찾기’의 출범 뒷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기 위해 백재웅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을 만났다.

▲ 지난 달 22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미로찾기’ 출범식이 열렸다. ⓒ언론노조

“방송 산업 전반에 퍼져있는 비정규직 노동 실태에 대한 조사는 8여 년전에 나온 보고서가 마지막입니다. 현황 파악조차 쉽지가 않죠.”

백 실장은 구체적인 실태 조사가 어려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미디어 비정규직은 그 어떤 산업에서보다도 고용관계가 복잡하다. 파견이나 용역 등 간접고용 형태부터 작가나 프리랜서PD 같은 특수고용, 계약직 등 업무고용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열정페이 문제가 더해졌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지금은 이런 처지이지만 조금만 참고 견디면 나도 저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열정을 빌미로 저임금을 강요하는 구조에 순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백 실장은 “‘열정페이’의 시작이라는 IT산업 분야에서도 부당하게 초과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며 “뭔가 하나 ‘대박’이 나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환상과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 산업도 그런 성격이 강해 설득이 어렵고, 결집이 어렵다”고 밝혔다.

백 실장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인식 변화”라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이고 자세한 사업방향과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미로찾기’ 출범식을 감행한 것도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미로찾기’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존중과 대접은 정당한 권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언론노조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전망 같은 게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로찾기’는 홈페이지와 전화로 365일 24시간 노동 상담을 받고 있다. 출범식을 하고 사이트를 오픈하고,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은 모두 미디어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사회 전반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매주 진행하는 홍보 캠페인도 시작했다.

▲ 지난 달 30일 서울 상암동에서 ‘미로찾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노조

백 실장은 “‘미로찾기’의 역할은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수 있게 판을 제공해주는 것”이라며 “말 그대로 아직 ‘미로’라서 정해진 답은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연한 권리 찾기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로찾기’는 앞으로 미디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커뮤니티와 모임 등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다.

사실 미디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미로찾기’가 출범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많았다. 특히 가장 큰 어려움은 내부에 있었다.

“이런 말도 들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면 프로그램 못 만든다’, ‘PD들 현장에서 일 못한다’고요. 언론인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저임금으로 최대치의 노동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권리찾기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피해로 오지는 않을지, 프로그램 제작에 해가 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것이다.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작가와 스태프 등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그런 예다.

그러나 백 실장은 “제작비 문제를 거론하며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라는 거냐고 하는 건 최저임금에 대한 중소상공인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며 “‘최저임금 높이면 우린 뭐 먹고 살라는 거냐’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런 ‘내부의 불편함’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 ‘미로찾기’ 홈페이지. ⓒ미로찾기

‘미로찾기’는 출범 선언문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바로서는 일과 미디어 공공성 확립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명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찾기가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닌 미디어 공공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백 실장은 “지금처럼 미디어 비정규직의 권리가 철저히 외면 받는다면 그 어떤 공공성도 지켜질 수 없다”며 “노동자의 자기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기업 내부의 문제점을 제어할 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의식과 행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회 공공성 문제에 대해서도 나서지 못할 것”이라며 “그래서 어떻게 보면 ‘미로찾기’는 미디어 공공성의 출발이고 기본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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