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축적된 기억이라는 이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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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되감기] 영화 ‘스틸 앨리스’

뭐더라? 늘 쓰던 단어인데도 머릿속을 맴맴 도는 경험을 우린 모두 갖고 있다. 뭐 하려고 했더라? 문득 멈춰 서서 의아해하기도 하고, 손에 안경을 들고 안경을 찾기도 하며 영화 제목이, 누군가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모두들 하는 얘기. 아,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앨리스는 이미 그 정도의 단계를 지나버렸다. 든든한 신뢰와 믿음을 나눌 수 있는 남편, 이제 다 자라 부모의 자랑이 되어 준 삼남매, 언어학자로서 교수로서 인정받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가꾸어 온 만큼의 성과를 거둔 사람이다. 언어학자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앨리스는 언제나 정확하고 적확한 어휘로 훌륭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녀의 머릿속은 언제나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강의 도중에도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어휘가 생각나지 않고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낯설고 멍한 상태에 빠져들며 혼란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철저하고 반듯하고 정확했던 앨리스에게 이런 경험은 낯설고 불쾌하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 영화 ‘스틸 앨리스’

그런 그녀에게 내려진 진단은 희귀성 알츠하이머. 유전이 되는 질병. 노년이 아닌 조기에 발병되는 질병. 그녀에게 알츠하이머는 그녀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뒤바꾸려는 끔찍한 것이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많은 질병이 있지만 그 중에서 알츠하이머는 난감하고 힘겨운 것임에 틀림없다. 인지장애를 유발하여 기억을 잃어가는 그 병은 누군가의 지난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마음 아픈 질병이다.

우리의 현재는 시간에 묻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각자의 뇌가 적당히 편집하고 수정해서 보관한 그 상태로 가끔씩 의식의 수면으로 떠올라 그 자신을 완성하는 퍼즐조각이 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은 곧 누군가의 정체성이다.

<블레이드 러너>나 <엑스 마키나>와 같은 영화를 잠시 떠올려 보자. 근미래. 인공지능 정도를 넘어서서 인간의 외모와 흡사하다 못해 도무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들’. 그들과 인간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튜링 테스트이다. 앨런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의 바로 그 주인공. 천재적 두뇌로 독일의 이니그마를 풀어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단초를 마련한 바로 그의 이름을 딴 테스트로 기계와 인간을 구별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이다.

주목할 것은 위 두 편의 영화에서 튜링 테스트가 심층적으로 그려지는데 테스트의 주 질문은 ‘기억’에 관한 것이라는 것. 어릴 때의 어느 시간의 기억, 가족에 대한 기억,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추억…. 그 기억은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뇌에 기록된 것으로 그 누구도 누군가의 기억을 자기의 경험으로 만들 수 없기에, 누군가의 기억은 그 사람의 고유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누군가의 정체성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다른 무엇의 구분을 위한 튜링 테스트는 곧 대상의 기억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알츠하이머는 심각하게 슬픈 질병이며 어이없게 절망적인 질병이다. 자신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 자신이 지나 온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과거가 만들어낸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자신이 이루어낸 삶의 가치와 기록을 송두리째 잃는다는 것….

앨리스의 경우, 그녀에게 하필 희귀성 알츠하이머가 발병한 것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언어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업적을 남긴 그녀에게 인지 장애라니. 모든 것이 명확하고 명쾌해야 했던 그녀에게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뭉뚱그려진 채 남게 되다니.

하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앨리스로 살아간다. 기억이 사라져도 앨리스는 여전히 앨리스로 살아간다. 그 사실이 <스틸 앨리스>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때리며 뭉클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앨리스 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줄리안 무어의 말을 옮겨본다.

“우리는 흔히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본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은 변화하고 있지만 진짜 모습은 어떻게든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먹먹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지만 절망으로 빠지지 않게 되는 건, 아마도 줄리안 무어의 이 말에 동의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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