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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리고 ‘욕망’

[위클리포커스- 요리에 빠진 TV] ③ 요리 프로그램의 쓴맛 류재화 번역가·불문학 박사l승인2015.05.07 1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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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지듯 생겨나는 TV 속 음식 프로그램들은 축제인가? 전쟁인가? 이처럼 주방이 환대받은 적은 없었다. 이처럼 흔한 찬거리들이 신성한 권력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주방의 셰프들이 족장이 되었다.

드디어 TV가 최적의 소재를 찾아낸 것이다. 먹이, 먹을 거리. 오브제(objet)란 "포식자의 눈앞에 던져진 먹이"라는 뜻이다. 허기, 주시, 추격, 육식. 실은, 이것이 모든 예술의 바탕이다. 인류사회라는 것도, 인문사회라는 것도 고작해야 이 '먹이'를 찾아 떠나는 사냥꾼의 역사에 불과하다. 내장 속 오브제가 내 시야 속 오브제가 될 때, 내 고매한 상상력의 오브제가 될 때 시선을 딴 데 둘 수가 없다. 최고의 이입, 최고의 몰입. 허기는 욕망의 바탕이고, 과잉은 또 허기, 결핍의 외현화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먹다'라는 동사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가수도 노래하는 대신 먹으며, 배우도 연기하는 대신 먹는다. '삼둥이'도 먹는다. '사랑이'도 먹는다. '차줌마'도 먹는다. 예쁜 스타들은 키스와 포옹의 사랑 연기를 하는 대신, 먹고 입을 예쁘게 오물거리며 황홀경의 유사어를 발성한다.

“레시피는 더 쉽게! 퀄리티는 더 높게!” 주방의 셰프들은 모두 훈남 셰프로 TV 속 스타가 되어가고 있으며 주방 세트장에서 이루어지는 쇼는 그 어떤 무대 위의 음악 쇼보다 지루하지 않다. 시선과 귀를 사로잡으며, 지식과 감각을 한껏 고양하는 덜 유해한, 더 유익한 방송. 스타들의 매력은 가공 무대의 연기에서보다 실제 자기 삶의 공간에서 더 매력을 발휘한다.

▲ olive ‘신동엽 성시경의 오늘 뭐 먹지’ ⓒCJ E&M

신동엽, 성시경은 <마녀사냥>에서의 성적 수다를 <오늘 뭐 먹지?>의 음식 수다로 옮겨온다. <삼시세끼>의 차승원은 배우의 매력 그 너머 사람의 매력을 보여주더니, 느닷없이 우릴 혼란스럽게 만든다. 만재도의 그 소박하고 건강한 공간에서 꼼꼼한 생활력을 보여주던 ‘차줌마’는 이번에는 “어떻게 삼시세끼를 다 해먹나?”(시켜 먹어!) 배달앱 광고로는 최적의 카피이다. “자급자족 어부 라이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그러나 잘 챙겨먹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어부 라이프”라는 원 프로그램의 기의와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새로운 기의가 탄생했다. ‘삼시세끼’는 차승원이라는 기표만 있을 뿐 함의를 달리하는 텅 빈 내용물이 된다.

한국의 도시와 거리는 ‘맛집’갤러리들의 도열이고, 쇼핑타운의 아케이드는 하나의 빈칸도 용납하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아메바처럼 TV 속 음식 프로그램들은 범람하고 창궐하는 양상을 보인다.

‘음식’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가장 즉물적인 소재다. 포식을 하는 포유류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다. 젖을 빨아야 하는 우리에게 음식은 그 어떤 저항도, 거부감도 주지 않는다. 음식재료의 질감, 그 재료를 활용한 창작적 예술력은 그 어떤 다른 욕망보다 직접적이다. 즉, 무매개적이다. 어쩌면 이 무매개적 욕망이 지금 우리의 TV를 음식 프로그램들이 점령하게 된 주된 이유일 것이다.

태초에 생은 그렇게 탄생되었나? 우리가 안 그런 적 있었나? 한 지점에서 하나가 성공하면, 바로 그 인접 지점에서, 경계 지점에서 증식이 시작된다. 광속으로 퍼진다. 우후죽순으로 솟는다. 다 덮을 때까지, 다 지배할 때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피로...

▲ 자료사진 영화 ‘아메리카 쉐프’

향미와 쾌락과 행복의 원천이었던 이 음식이, 이 향연이, 이 축제가 전쟁이 되고 살육이 된다. 피로를 야기하는 과도한 음식, 음료.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미’하는 음식에서 오는 피로가 아니라 ‘소비’하는 음식에서 오는 피로다.

음식 프로그램들은 가치를 매겨 교환시켜야 하는 시장 문화를 TV 속에 그대로 옮겨온 형태들이 아직은 대부분이다. 이 부티크, 저 부티크 쇼핑하듯 ‘맛집’을 찾아다니고, 최고의 셰프와 최상의 레시피가 가판대에 내걸린다. 음식 평점이, 식당 평점이 매겨진다. 성적이 리스트업되고, 공개(처형)된다. 스포츠 경기를 하듯 최단 시간에 요리를 맞추어 내놓아야 하는 살벌한 레이스. 무시무시한 실력 경쟁이다. 전쟁이다.

‘음식’이 ‘진-선-미’일 수 있다면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원초에서 파생한 최고의 발명품, 예술품. 식감과 오감을, 황홀감을 자극하는 이 맛의 감각은 그 어떤 관념적, 철학적 메시지보다 환영받는다. 음식은 삶이다, 생이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영화 <생선 쿠스쿠스>에서는 해체된, 이질적 가족의 구성원들이, 씨족 공동사회의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를 먹으며 화해하고 화합하는 민속지적인 풍경을 거의 샤먼적으로 보여준다. 집밥의 향수, 디아스포라들을 한데 모으는 곡식의 비밀. 우리나라 TV 음식 프로그램들이 아직 탐색하지 않은 어떤 온기어린, 몹시 갈구되는 더욱 본질적인 세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류재화 번역가·불문학 박사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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