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존중감도 성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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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 TV보기]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의 환상

▲ EBS ‘리얼극장-내 딸은 트렌스젠더입니다’ ⓒEBS

지난 4월 28일 방영된 EBS <리얼극장> ‘내 딸은 트랜스젠더입니다’ 편에는 트랜스젠더 정인혜 씨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삶의 의욕을 잃고 두문불출한 채 외모를 꾸미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던 그녀가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담겼다.

그녀는 2012년도에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형수술을 받아 확 달라진 외모로 주목받았다. “인생을 바꿔주는 메이크오버쇼”라는 수식어를 내 건 <렛미인>은 수술 이후 지원자들의 삶이 ‘불행 끝, 행복 시작’할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인식시킨다. 그러나 정인혜 씨가 겪은 고통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놓인 처지에서 온 것이다. 성형수술은 그녀를 ‘진짜’ 고통스럽게 하는 삶의 조건과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것을 견디거나 다르게 볼 마음의 힘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메이크오버’ 후 카메라 밖으로 나선 출연자들이 많아지면서 부담을 느낀 탓일까. <렛미인> 제작진은 오는 6월 방송될 시즌5를 예고하면서 타 시즌과의 차별점으로 '자존감 향상'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수술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자아상 확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렛미인> 출연자가 방송을 통해서 얻게 된 자신감은 ‘외모의 변화’를 통해서 채워진 것이다. 게다가 방송용으로 메이크오버된 모습은 화장과 의상, 헤어스타일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최고로 갖추어진 모습’이다. 성형된 얼굴로도 평소에는 쉬이 도달하기 힘든 모습이라는 뜻이다. 그 모습이 자신의 기준점이 되면서 출발하는 ‘변신 후의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차다. 외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시들어 가기 마련이다.

▲ '렛미인' 출연 당시의 정인혜 씨 ⓒCJ E&M

애초에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왜 여성들이 콤플렉스와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사실은 여성들이 콤플렉스에 시달릴수록 성형산업은 더 많은 돈을 번다. ‘네 외모를 바꾸면 네 인생이 달라질 거야’라는 메시지는 ‘네 외모는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곳곳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성들이 어떻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겠는가 싶게 여성비하와 혐오가 만연되어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10년 넘게 부동의 1위다. 남녀격차는 당연시되고 ‘여성들은 멍청하다’는 말이 유명 연예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특히나 외모에 대한 차별과 압박은 심각한 수준이다. 방송에서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성을 얼마나 조롱하고 비난하는지, 집중해서 들어보라. 코미디 프로그램들에서 그런 내용을 빼면 아마도 러닝타임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시즌5가 예고되자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1일부터 <렛미인>5의 방송 중단을 요청하며 온라인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렛미인>을 필두로 한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에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미 지난해의 일이다. 3개월 동안 집중 모니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실질적인 의료광고’임을 지적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적극적 개입을 요구했다. 현행 의료법 제56조 제4항은 방송에서의 의료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제5조 제1항에는 ‘방송사업자는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 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렛미인5’ 방송 중단 촉구 서명 운동 홍보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출연자들의 인생이 변했고, 그들이 행복해졌다는 ‘착각’을 근거로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 감동이 강력할수록 성형수술 유인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런데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협찬비에 따라 결정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격을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2012년 2월에는 <렛미인> 시즌3에 출연해 침술성형으로 유명세를 얻은 한의원이 고객들로부터 1인당 수백만 원의 선불금을 떼먹고 잠적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성형외과 의료분쟁 상담건수는 2012년 444건에서 2013년 731건으로 64.6% 증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형이 이렇듯 쉽게 ‘행복’을 거머쥘 만능키처럼 이야기되도록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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