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PUT을 통해 본 공영방송의 생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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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을 통해 본 공영방송의 생존 조건
[기고] INPUT 2015 도쿄 현장을 가다
  •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15.05.2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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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15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세계공영방송 총회인 인풋(INPUT:Television in the public interest)은 공영방송의 생존의 조건을 ‘젊은 수용자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기술발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공영방송의 본질적 의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탐색했다. 24개의 세션에서 총 76편이 상영되었으므로 필자가 보고 느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회를 복기하고자 한다.

▲ INPUT 2015

지랄 같은 젊은 세대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번 인풋이 끊임없이 천착한 주제는 어떻게 하면 이 변덕스럽고 잡히지 않는 청소년 시청자를 잡을 것인가였다. 세션의 제목 역시 ‘Television for the Fucked, Fucked up, Fucking up Generation'이다. 과감히 사용한 비속어에서 기획자들의 속 타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인풋이 제시한 해법은 무엇인가?

스웨덴의 탐사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인컨비니언트>(The Inconvenient)는 계급, 노동문제, 인종차별, 인터넷 감시 등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을 아티스트, 블로거, 사회운동가 등의 눈을 통해서 까발린다. 범죄경력을 가진 스웨덴의 논쟁적인 힙합 가수가 프리젠터가 되어 스웨덴의 계급격차를 고발한다. 청소년들에게 호소력 있는 프리젠터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연결했고, 기성세대가 보기에 다소 과격해 보이는 표현방법과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아무리 급진적인 주장이라 하더라도 공영방송의 틀 안에서 수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갈등폭발의 위험은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남아공의 10대를 위한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인 <틴에이저즈 온 미션>(Teenagers on Mission)은 두 명의 진행자가 한 주제에 대해 버라이어티하게 검색하듯 훑어보는 프로그램이다. 감옥이라는 주제로 넬슨 만델라 수감의 역사가 나오다가 갑자기 현재 복역 중인 재소자가 등장하여 건전하게 살라고 충고하고, 수감자의 인권에 대한 헌법규정을 살핀다. 뮤직뱅크 진행하듯 스피디하게 읊어대는 진행자의 대사와 빠른 편집이 10대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며 선형적 구성과는 다른 하이퍼링크 형 이야기전개가 특징적이다.

콜롬비아에서 출품한 드라마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는 학생들의 고민을 담기 위해 전문 연기자와 일반인이 함께 출연했다. 청소년 대상은 아니지만, 홍콩의 <웬 위 캔트 브레스>(When we can't breath)는 신문의 사회면에 보도된 자살사건을 드라마화한 것으로, 아마추어 연기자를 기용해서 리얼리즘을 획득하고자 했다. 두 드라마는 공영방송사가 수용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는 마음을 시청자의 출연이라는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뉴스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세네갈의 제작사가 만든 <랩드 뉴스>(The Rapped News)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5분간의 뉴스에서 앵커는 오늘의 뉴스를 랩으로 읊는다. 앵커가 현장을 연결하자 중무장한 군인들 앞에서 기자가 방탄조끼를 입은 채 랩으로 현장상황을 전한다. 심지어 앵커와 현장기자는 랩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랩으로 뉴스를 전하더라도 뉴스가 갖고 있는 사건의 무게는 변함이 없을까?

청소년을 끌기 위한 인풋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들이 받아들이기 좋은 방식으로 다뤄라. 한국의 공영방송이 청소년의 진지한 고민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을 문화상품의 소비자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능동적인 참여자라기보다는 시청률을 구성하는 하나의 숫자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이러한 질문에 공영방송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INPUT 2015 세미나가 열리는 현장 ⓒ홍경수

기술발전에 대한 대응

웹과 결합한 프로그램도 다수 선보였다. KBS의 드라마 ‘간서치열전’은 인터넷 포털을 통해 10분씩 6회에 나누어 웹드라마를 선보인 뒤에 나머지 7회를 포함한 전체 프로그램을 TV로 방송했다. 스웨덴의 <붑스 투 더 올>(Boobs to the wall)은 유머가 풍부한 웹 시리즈 코미디로 두 자매가 성 평등, 강간 등의 문제를 경쾌하게 다루고 시청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매주 토론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성에 대해 거침없는 표현을 드러냄으로써 청중을 놀라게 했다.

스위스에서 만든 <온 더 롱 풋>(On the wrong Foot)은 2014 월드컵 기간 동안 스위스와 프랑스의 저명인사들의 축구에 대한 상식에 대한 인터뷰 대답을 편집하여 재미난 1분짜리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으로 공영방송과 웹을 통해 선보인 크로스미디어 프로젝트였다. 이외에도 수용자의 반응을 담는 다양한 인터액티브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첫날 저녁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 특별 세션에서는 텍스트와 사진 동영상이 한데 어우러진 BBC NEWSBEAT의 뉴스 스토리텔링 전략이나 NHK의 빅데이터 저널리즘 현황, 어지간한 방송사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한 UCC 플랫폼인 니코니코 동화의 사례발표와 질문이 이어졌다. 테크놀로지 변화에 대한 인풋의 대답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언, 공영방송사가 플랫폼으로서 웹과 모바일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콘텐츠 기획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암시로 대신했다.

▲ KBS ‘간서치열전’ ⓒKBS

공영방송의 숭고한 의무는?

인풋은 공영방송의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도 놓치지 않았다. 개막작 <리얼 재팬>(Purely Personal Documentaries-Real Japan: Finding Independence at 38)은 일본의 고령화, 저성장, 청년실업문제 등을 담아냈다.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한 탓에 부모님으로부터 쫓겨나 독립하는 감독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조명하고자 했다.

<스노든 그레이트 이스케이프>(Snowden's Great Escape)는 미국의 공적이 되어버린 스노든이 홍콩에서 남미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행보를 담아냈다. 감독은 도대체 어떻게 어산지나 스노든 등 중요인물을 인터뷰할 수 있었을까? 독일과 덴마크가 공동제작으로 대담하게 재구성한 스노든의 대탈주가 미국에서라면 방송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번 인풋에서는 두 편의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제작한 <Get Rea!- Saving Sewol>이라는 프로그램과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 편이다. 싱가포르에서 만든 다큐는 해양경찰청이 제대로 구조하지 못해 해양경찰청이 폐지되는 등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데에 착목하여, 해양경찰청을 취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시사가 끝난 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나왔다. ‘세월호 사건이 매우 복잡한 정치 사회적인 역학관계를 갖고 있는데 경찰청의 입장만으로 사건의 실체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경찰의 입장만을 듣고 유족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는가?’ 제작자는 유족들의 촬영허가를 얻지 못했고, 통역자를 통해서 질문을 하느라고 즉각적인 반박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다큐프라임 가족쇼크>편은 세월호 유가족 부모들이 절규하고 오열하며 자녀를 떠올리는 인터뷰를 절제된 내레이션으로 담았다. 객석은 무거우리만치 조용했고 일부 관객은 훌쩍이기도 했다. 시사가 끝난 뒤에 객석에서 나온 질문은 ‘인터뷰가 충분한데도 내레이션을 많이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었다. 제작자는 한국의 시청자는 내레이션으로 충분히 설명된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며, 이 프로그램이 정치적으로 분열된 한국의 대중을 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 ⓒEBS

인풋에서 선택한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의 공영방송의 빈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제대로 다룬 프로그램이 없어서 해양경찰청을 중심으로 한 싱가포르의 다큐멘터리나, 자녀 잃은 부모의 슬픔과 회한을 담은 가족 다큐멘터리가 선택된 것은 아닐까?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를 설명하는 창의적이고 참신한 프로그램도 많이 상영되었다. 동서독 통일 과정을 헝가리 외무장관의 관점에서 재연배우를 활용해서 만든 ‘1989’나 비만여성의 모임을 관찰하여 감정의 구조를 생생하게 드러낸 <인디펜던트 렌즈>(Independent Lens: All of Me), 인도계 주인공이 터번을 쓰고 등장하여 민족에 대한 편견 등을 경쾌하게 조롱하는 호주의 라이브 스튜디오 코미디 <리걸리 브라운>(Legally Brown), 경쟁관계인 방송사를 대표하는 두 명의 프리젠터가 방송사의 명예를 걸고 경쟁하는 ‘채널 vs. 채널’ 등은 PD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싶다.

나흘간의 황홀한 콘텐츠 축제가 끝났다. 언젠가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의 장이 점차 축소되고 ‘각자 알아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학회에서는 논문발표 뒤에 준비된 토론 말고는 활발한 토론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방송관련 학회에서 화제의 프로그램을 상영하고 제작자와 토론하는 세션을 만들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번에 필자와 함께 참관했던 대학생들은 내년 캘거리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적금을 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내년 인풋에 참여할 수 있다면 기다리는 1년 내내 행복할 것 같다. 더 많은 PD들이 인풋을 통해 더 좋은 아웃풋을 산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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