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알면 인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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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PD 인문학포럼 ‘생명의 나무, 인간이란 열매’

▲ 왼쪽부터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 장대익 서울대 교수, 김현우 EBS PD ⓒ한국PD연합회

‘2015 PD 인문학 월례 포럼’(이하 인문학 포럼)이 지난 27일 저녁 합정동 ‘문학하다’ 북콘서트 전용홀에서 ‘생명의 나무, 인간이란 열매’를 주제로 세 번째 문을 열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진화생물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와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6부작을 제작한 김현우 PD가 발제를 맡아 진화론적 관점으로 본 인간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인문학 포럼은 한 주제에 대해 화제의 프로그램을 만든 PD와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3월과 4월 두 차례 포럼이 진행된 바 있다.

포럼의 사회를 맡은 이채훈 PD교육원 전문위원(前 MBC PD)은 “인문학 포럼은 학계의 이론과 PD의 현장 경험을 결합시켜 생활 속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인문학’을 지향하고자 한다”며 포럼의 취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대익 교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다른 종들의 가장 큰 차이는 ‘소셜 마인드’에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침팬지와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협력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침팬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힘을 모은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협동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데에는 ‘정교한 모방능력’을 통해 문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만이 눈치와 눈썰미를 진화시켜 타인을 모방하고, 이를 통해 인적 자본을 축적하고 전달할 수 있다“며 ”모방은 문명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티브잡스를 예로 들며 “과학은 21세기 인문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문학 열풍을 불러온 스티브잡스가 강조한 것은 사실 ‘인문학을 공부해라’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 기술을 만들어내도 소용이 없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와 참신한 이해는 과학에서 나온다. 인간 실존에 대해 설명하는 진화론이 대표적이다.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을 넘어 이제 과학적 인문학을 생각해야 할 때”라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김현우 PD는 다큐멘터리 <생명, 40억년의 비밀>을 제작하면서 배우고 느낀 진화론적 관점을 설명했다. 그는 생명체가 활동한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흔적화석(trace fossil)’을 촬영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어느 시점에서 진화의 경로가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내가 여기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많은 우연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연 앞에서 겸허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또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였던 공룡의 멸종을 언급하며, “몸집이 큰 공룡들은 예상치 못한 운석 충돌에 멸종했지만, 몸집이 작고 약한 포유류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공룡의 멸종 덕에 살아남았다. 미래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덕에 ‘순간’에 충실하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문학포럼은 오는 6월 ‘인터스텔라,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이어 ‘아프리카의 눈물’, ‘음악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엔터테인멘트와 인간의 품위’, ‘내 머리로 생각하는 PD의 인문학’ 등의 주제로 오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다음은 두 사람의 발제 주요 내용 정리.

"인문학을 넘어 과학적 인간학으로”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장대익 서울대 교수 ⓒ한국PD연합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은 사실영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도덕적 가치와 실존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학은 실존과 가치에 침묵하지 않는다. 과학은 인간을 ‘우주적 존재’와 ‘자연적 존재’로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진화론이 대표적이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지닌 종으로 진화하게 된 것은 ‘정교한 모방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도 모방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집중해 중간 절차를 쉽게 무시해버린다. 반면에 인간은 다른 대상의 행동을 무작정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학습을 한다. 정교한 기계를 만들어 내고 인간 문명을 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또 다른 특성은 ‘소셜마인드’에 있다. 인간은 ‘협동하는 눈’을 갖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침팬지의 눈은 공막(흰자)이 없다. 다른 침팬지가 어느 대상을 바라보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공막이 있어 현재 내가 어느 대상에 관심이 있는지 타인에게 신호를 보내준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데 비해 침팬지는 오직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만 힘을 모은다. SNS가 대세인 이유도 인간의 ‘소셜마인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기를 바란다. SNS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기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실제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진화론은 과거 인문학을 ‘과학적 인간학’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는 과학이 21세기 인문학이 될 것이다. 인문학 열풍을 몰고 온 스티브잡스가 강조한 '핵심교양(liberal art)‘은 문사철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인문학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과학, 예술, 과학을 모두 포함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는 사용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제품과 기술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까닭이다.

“악한 생명은 없다” (김현우 EBS PD)

▲ 김현우 EBS PD ⓒ한국PD연합회

1년 반 동안 ‘흔적화석(trace fossil)’을 촬영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흔적화석은 생명체가 활동한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진화의 경로가 달라졌다면 내가 여기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진화의 단계마다 수많은 우연이 모여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우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진화론은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게 한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간과 다른 종이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진화는 인간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다‘라며 진화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화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에서 개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에 ‘선과 악’의 구분은 없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악하다고 볼 수 없다. 생명체는 다른 동물에 먹히지 않기 위해 몸에 딱딱한 껍질이 생기고, 먹잇감이나 포식자를 빨리 발견하기 위해 눈이 생겼다. 생명체들은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환경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진화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자연은 무심하다’라고 느꼈다. 진화에 특정한 ‘방향’은 없고 미래는 내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를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먼 미래를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순간’에만 충실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미래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의미 있는 행동들이 모여 결과로 더욱 좋은 문명과 인간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지난 27일 저녁 합정동 ‘문학하다’ 북콘서트 전용홀에서 ‘생명의 나무, 인간이란 열매’를 주제로 열린 PD인문학 포럼 참석자들이 패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한국PD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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