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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01 17:18
  • 수정 2015.06.04 15:46

“제2, 제3의 강기훈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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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최민철 PD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사진은 1993년 강기훈 씨의 모습. ⓒ화면캡처

한 사람의 인생을 가른 단 하나의 증거 ‘필적’. 육안으로 봐도 너무나 다른 필적, 그리고 동일인의 필적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증거와 증인들. 그럼에도 모두 채택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이해 못할 감정결과만이 유일한 증거가 됐다. 그렇게 강기훈씨는 1991년 5월 8일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15년, 강씨는 ‘무혐의・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5월 30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이하 ‘24년의 진실’ 편)의 연출을 맡은 최민철 PD는 1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제2, 제3의 강기훈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며 “강기훈씨 사건은 그 당시엔, 그땐 그랬지 라는 말 한마디로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4년의 진실’ 편은 1991년 강기훈씨가 어떻게 ‘유죄’를 받게 됐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24년간 그 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온 과정은 물론 24년만에서야 진실이 밝혀지고 강씨가 무죄를 받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검찰의 문제,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에 대한 문제점 등을 짚었다.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화면캡처

최 PD는 ‘24년의 진실’ 편을 준비하게 된 이유에 대해 “24년 만에 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게 단순히 과거에 한 사람이 재수 없게 걸렸고 그 시절에는 그랬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며 “24년만에 만나본 진실이 너무 늙어서 영향력이 없고 생명력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시절 이 사건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반드시 돌아봐야 했고, 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현재는 어떤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화면캡처

오랜 시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당초 1993년에 방송을 준비했으나 불발, 이후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사건을 조명하며 오랜 시간 취재를 해왔다. 그만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단순히 개인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1990년 노태우 정권 당시) 수서지구 특혜분양, 대구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과잉진압으로 인해 벌어진 강경대 치사사건 등 정권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정권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증거 없는 사건들을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거나 파렴치한으로 모는 걸 너무 많이 봐왔어요.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국민들은 툭하면 ‘음모론’을 이야기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건 음모다, 다른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요. 왜 우리 안에 이렇게 불신이 누적됐을까 생각해보면, 비합리적인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았기에 이것들이 앙금이 되어서 오롯이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예요.

현재와 과거가 달라졌나? 아니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만 봐도 유감스럽게도 24년 전 강기훈씨와 너무 닮아있고, 증거 없이 혹은 증거를 조작하며 간첩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1960~1970년대의 모습을 2015년에 그대로 볼 수 잇다는 게 너무나도 끔찍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강기훈씨 사건을 한 사람의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 국가 폭력이 이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이것은 낡은 시대, 그 당시엔 그땐 그랬지 라는 말 한마디로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때도 우리의 법은 강기훈씨가 죄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제2, 제3의 강기훈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화면캡처

최 PD는 취재를 하면서도 무기력함과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강씨의 무죄가 왜 24년이 흐른 뒤에야 밝혀질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최고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검찰과 재판관은 왜 강씨에게 ‘유죄’를 물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만날 수 없거나 만나도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최 PD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미 끝난 재판이 아니냐”는 거였다.

최 PD에 따르면 당시 법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2012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릴 당시 주심을 맡았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제작진을 밀치는가 하면 카메라를 파손하기도 했다.

최 PD는 “그분들께서 ‘법관의 양심’이라고 하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는데, 나는 어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보통 국민의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왜 조작이라고 생각했냐? (증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배경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노코멘트로 나와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최 PD는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다만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게 우리 시대의 고민”이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들의 판단이 명확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무력하다고 해야 하나, 씁쓸함이 남았다”고 말했다.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화면캡처

그리고 최 PD는 과거사를 돌아보지 않는 검찰, 그 속에 담긴 ‘법관의 양심’에 따라 법관으로서의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검찰의 현실과 이면을 파헤치고 싶은 의지를 드러냈다.

“예로 임은정 검사와 같이 상명하복과 같은 폭력적인 것에 따르지 않고 법관에 양심에 따라서 일하는 사람은 옷을 벗게 된다든지, 인사평가에서 마이너스를 받는다든지 등의 일이 있어요. 이처럼 양심에 따라서 일하는 정의로운 검사를 지켜주지 못한 것은 우리도 많이 반성했어요.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정의로운 법관들이 소신을 지켰을 때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제지를 당한다는 것이 전 공포스럽게 느껴졌어요. 이런 케이스를 제보 받아서 할 수 있으면 한 번 다룰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요.”

▲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그를 모함했나-강기훈 유서대필사건, 24년의 진실’ 편. ⓒ화면캡처

[참고]

*수서지구 특혜분양 사건: 청와대까지 연루된 초대형 부동산 스캔들로 1991년 1월 서울시가 한보그룹을 배후에 둔 주택조합에 수서지구 택지를 특혜 공급한 일은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비롯해 여야 의원, 청와대 비서진, 건설부 공무원 등이 구속됐으며,4년 후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서 사건과 관련해 정 회장으로부터 수백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구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공단에 입주한 두산전자가 발암물질인 페놀원액 30톤을 낙동강으로 방류, 3월 16일 대구 다사 수원지에 유입되며 무색무취의 페놀 수돗물이 250만 대구시민에게 공급된 사상 최대의 수질오염 사건이다. 대구 시민들은 물론 페놀 수돗물을 마신 많은 임산부들은 유산, 사산 및 기형아 출산 등의 피해를 겪었다. 이후 1990년 11월 1일부터 1991년 2월 28일까지 무려 325t의 페놀을 불법방류한 사실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강경대 치사사건: 1991년 4월 26일, 등록금 인하 시위 중 불법연행을 당한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자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강경 진압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강경대 학생은 경찰에 붙잡혀 쇠파이프로 무자비하게 폭행당하고서 방치됐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

이 사건 이후 학생들은 대통령 노태우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했고, 이어 학생 등이 잇따라 분신하며 이른바 ‘분신정국’이 조성됐다.

*임은정 검사: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재야인사 박형규 목사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백지구형’(뚜렷한 구형의견 대신 재판부에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하는 것)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해 이후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서울중앙지검에서 창원지검으로 좌전당했다.

재심 선고 공판에서 임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무죄를 내려주십시오”라고 구형을 내리며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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