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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스피치 미디어, 이대로 좋습니까?

[위클리포커스] ①여성 소수자 비하로 웃음 생산…혐오 반대를 혐오하는 시대의 방송 김세옥 기자l승인2015.06.09 11: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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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 장동민은 지난 4월 3일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해 모델 한혜진에 대해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이랑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행자들이 이유를 묻자 장동민은 이렇게 말했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남자가 싫어할) 모든 걸 갖췄다.”

# 지난해 7월 23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의 진행자 중 한 명인 김구라는 이날 게스트였던 배우 송창의를 보고 “옷에서 동성애 코드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이에 또 다른 진행자인 윤종신이 “편견”이라고 지적하자 김구라는 버럭 하며 “그게 말실수야? 의견도 얘기 못해?”라고 반박했다.

# 지난 1월 종영한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명인본색’은 가짜 요리 명인이 일하는 고급 일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이 일식당의 여주인 이름은 ‘스시코’다. 초밥의 스시(壽司)와 일본여성의 이름 뒤에 흔히 붙는 코(子)를 합성한 이름으로 보인다. ‘스시코’는 부실한 서비스에 항의하는 손님들 앞에서 ‘몸이 약해서~’ 같은 엉뚱한 변명으로 화를 돋운다.

국적이나 인종, 성,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출신지역, 외모 등을 잣대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증오연설)라고 한다. 현실에서 이런 헤이트 스피치를 접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인터넷을 켜고 아무 게시판이나 뉴스 댓글창만 봐도 ‘김치녀’, ‘홍어’, ‘검둥이’, ‘동성연애자’ 등 갖가지 차별과 혐오의 말들을 만날 수 있다.

방송은 어떨까. 물론 ‘전혀’ 아니라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처럼 ‘노골적인’ 표현들을 마주하는 경우는 많진 않다. 그렇다면 방송은 헤이트 스피치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아니다. ‘노골적인’ 표현들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 누군가를 차별하고 비하하며 혐오하는 말들은 진행자와 출연자의 말 속에 스며들어 그것을 ‘웃음’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 옹달샘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왼쪽부터)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불거진 막말 사태에 대한 심경을 말하고 있다. ⓒ뉴스1

얼마 전 개그맨 장동민이 MBC <무한도전> ‘식스맨’ 후보에 오르면서 뒤늦게 그가 속한 개그 트리오 옹달샘(유세윤·장동민·유상무)의 인터넷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 속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개X년”,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들한테 머리로 안 돼” 등의 발언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또 삼풍 참사 생존자를 두고 “살기 위해 소변을 음용했다”며 ‘소변 먹는 동호회 창시자’라 조롱하고, 장애인의 신체적 특징을 과장해 흉내 내면서 비웃었다.

일련의 발언들이 알려지고 옹달샘 멤버들의 방송 하차 요구가 높아지자 일부에선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웃으며 말하는 콘셉트’라는 옹호도 나왔다. 연예인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속 발언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고, 팟캐스트 방송이 대안언론으로까지 기능하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끼리’ 있는 자리라고 편히 차별과 혐오의 언어들을 쏟아낼 수 있다는 주장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순진함을 차치하고 이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우리끼리’가 아닌 모든 대중에게 열려 있는 TV 속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수위의 발언들이 그들을, 그리고 다른 방송인들을 통해 던져지고 있는 까닭이다.

장동민은 JTBC <마녀사장>에 출연해 모델 한혜진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떠들고, 생각하고” 라는 이유를 들어 싫은 감정을 표현했고, 김구라와 김성주, 손준호, 장동민, 오창석이 출연한 MBC every1 <결혼 터는 남자들>에선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한 아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다는 남편의 얘기를 가정 폭력이 아닌 코믹 에피소드로 취급했다. 또 KBS <개그콘서트>는 여성 코미디언으로 하여금 “김치녀가 될 거야”라는 대사를 뱉게 했다.

지난 2006년 외국인 여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한국 문화와 생활에 대해 얘기하도록 한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천명훈은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 레슬리 앞에서 가발까지 준비해 ‘시커먼스’ 춤을 추다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천명훈 입장에선 분위기를 띄우려 1987년 KBS <쇼 비디오자키>에서 장두석과 이봉원이 선보여 인기를 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의미심장한 시점에 돌연 폐지된 코너 ‘시커먼스’를 따라한 것이었겠지만, 인종 차별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개그콘서트>는 지난 2013년 3월 코미디 40년 특집 방송에서 장두석과 이봉원을 출연시켜 ‘시커먼스’를 또 공연했다. 스타벅스에선 주문자를 구분하기 위해 컵에 이름을 적는데, 미국과 유럽 등에서 한국인 등 아시아인 주문자를 ‘찢어진 눈’을 그려 구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종 차별이라고 격분하고서도 정작 한국의 방송에선 시대를 돌고 돌아 피부색을 잣대로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코미디를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남성 코미디언들이 덩치가 큰 여성 코미디언들의 신체적 특징을 놀리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그렇다보니 여성 코미디언들이 토크 프로그램이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미디를 하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수치심을 토로하며 눈물짓는 모습 또한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사회에서 마음대로 구분한 잣대를 앞세워 한 출연자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 상대 출연자가 정색하며 “저는 정상입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등의 답변을 하는 모습을 방송함으로써 동성애자를 졸지에 건강하지 못한, 비정상의 범주에 넣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지난 2011년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선 자신의 성적 지향에 혼란을 느낀다는 한 남학생의 사연을 다뤘는데, 제작진은 이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이윤석에 대해 ‘한 가정의 가장,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계신’이라는 자막을 넣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노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3월 26일 JTBC <썰전> ⓒJTBC 화면캡쳐

방송제작가이드라인, 방송심의규정 등 혐오 언어 제어 장치 존재하지만…

방송에서 이런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제작진은 없다. 각 방송사에서 마련하고 있는 편성규약과 윤리강령 등에선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와 인권보호 등의 내용을 어김없이 적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들은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을 통해 그 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례로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은 “소수 계층의 권익을 존중하고, 프로그램 내에서 차별적인 내용이나 표현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인권의 존중), “차별은 명예나 프라이버시의 침해와는 달리 은밀히,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방송제작자는 각별히 유의해서 차별의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사회 통합) 등의 방송규범을 마련하고 있다.

또 차별의 형태와 관련해 “외국인,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수적인 다소(多少)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열세에 놓여있는 소수 계층을 무시하고 근거 없이 이단시하는 편견을 갖기 쉽다”고 지적하며 “차별적 표현을 하지 않도록 제작자는 의식의 저변에 자기 점검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쉬운 집단으로 장애인, 노인, 여성, 북한주민, 외국인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에 대해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 가운데는 여성에 대한 차별 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방송 언어의 사용이나 영상 표현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제작진의 경계를 당부하고 있다.

심의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현행 방송심의규정에는 차별과 혐오를 경계하는 조항들이 존재한다. 제9조(공정성) 5항은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 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고 적고 있고, 제21조(인권보호) 3항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거나 부정적이고 열등한 대상으로 다뤄선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제29조(사회통합)는 방송으로 하여금 지역·세대·계층·인종·종교 간 차별과 갈등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제30조(양성평등) 1항에선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해선 안 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심의규정의 존재와 현실에서의 적용은 별개다. 최근의 심의 사례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여성 혐오가 담긴 ‘김치녀’라는 표현을 방송한 <개그콘서트>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만을 적용해 행정지도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또 방심위는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경제력 최하위층의 국내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고, 이로 인해 늘어난 다문화 가정이 깨질 경우 그 자녀들 때문에 사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강용석 변호사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한 JTBC <썰전>에 대해서도 방송심의규정 제31조(문화의 다양성 존중) 위반만을 지적하며 행정지도의 경징계를 하는 데 그쳤다.

▲ 2014년 7월 23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MBC

반면 여고생들의 키스 장면을 방송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해 다수의 방심위원들은 “동성애가 떳떳하고 자랑스럽다면 왜 커밍아웃을 하나.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하지만 현실에선 아직 터부시하고 금기시해야 하는 인습이 상존하고 있다”,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은 느낌”, “성소수자는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며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했다. 방송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호와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위반이 이유였다.

더 큰 문제는 아예 심의 대상으로 잡히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방심위에서 발간한 방송심의사례집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방송심의규정의 인권보호와 양성평등과 관련해 제재를 받은 사례는 지상파 방송을 통틀어 각각 1건, 4건뿐이었다. 유료방송의 경우는 각각 9건, 3건으로 상대적으로 지상파 방송보다 많았다.

하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을 포함한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여성이나 외국인 등 소수자의 외모와 인종 등 신체적 특징을 비하하며 웃음의 코드로 삼는 코너들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심의제재 현황은 방심위 역시 차별과 혐오의 말들을 웃음의 코드로 삼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성별, 성적 지향, 인종, 국적 등을 이유로 혐오와 차별의 말을 내뱉는 방송의 실태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도 사실상 전무하다. 현재 방심위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는 위탁 연구 보고서 목록을 보면 방송언어 전반에 대한 실태와 이에 대한 시청자와 제작진의 인식 등을 주제로 한 연구들은 존재하지만, 차별적 표현 등은 이 중 하나의 사례로만 언급될 뿐 이에 대한 본격 연구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김치녀” 발언 방송한 연출자를 ‘일베’라 비판하는 게 답은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표현의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고, 관련 제도도 존재하는데 왜 현실에서의 적용은 별개의 문제가 되는 걸까.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타인을 조롱하고 혐오하며 웃는 게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치녀”라는 말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코미디언이, 이를 방송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연출자가 ‘일베’이기 때문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매순간 의식하고 경계하며 주의하지 않으면 빠질 수밖에 없는 웃음의 코드로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전규찬 교수는 그러나 “(조롱과 혐오를 웃음의 코드로 자리 잡게 한) 사회 구조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를 핑계 삼아 방송 등 언론에서 보이는 문제를 면죄할 순 없는 일”이라며 “그렇기에 오히려 더 방송·언론은 더욱 더 책임 있게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력의 시작으로 전 교수는 작금의 방송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돌아보기 위한 공론의 장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각각의 방송사들은 물론 방심위조차 이와 같은 차별과 혐오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거나 천착해 말한 일이 없다”며 “켜켜이 중첩된 구조 안에서도 어떻게 책임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론의 장에서 방송의 실태를 돌아보며 자각의 기회를 갖는 게 우선이라는 것으로, 이런 인식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개선 방안 마련과 관련 교육 또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강화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 소장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다 보니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도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의 말들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부족할 수 있고, 그렇기에 그런 표현들을 코미디와 토크 등 방송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며 “그렇기에 현재보다 강화된 가이드라인과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널리 퍼진 상황에서 공적 책임이 큰 방송에서부터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강화해 심각한 수준의 발언을 반복하는 이의 출연을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만 “혐오를 비판하는 일을 혐오하는”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BBC 제작가이드라인 ⓒBBC 홈페이지

방송 안에 침투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 제작진 스스로 판단할 계기 필요

그러나 현업 제작진들은 가이드라인의 강화가 자칫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최하위 계층의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아 다문화 가정이 늘었다는 강용석 변호사의 발언을 여과 없이 방송한 JTBC <썰전>의 김수아 PD는 지난 5월 20일 방심위 의견진술 과정에서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한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데려왔다는 말 아닌가”(함귀용 위원)라는 지적을 받고 “비판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지만 (현실에서 존재하는 의견이기에) 아예 방송에 나가선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강 변호사와는 다른 반대 의견이 있어야 공정한 게 아닌가”(박신서 위원)라는 심의위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김 PD는 “상대 출연자에게 반대 의견을 말하라고 늘 지시할 순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고민이 없진 않지만 제작진의 판단과 자율성의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항변이다. tvN <코미디빅리그>, KBS <개그콘서트> 등을 담당하는 PD들도 방송언어 등의 문제로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현장의 반응이 심의 지적과 다르다는 점 등을 제기하며 연출자의 판단에 대한 존중, 제작 자율성의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이런 가운데 세계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꼽히는 영국 BBC의 제작가이드라인과 제작가이드라인 준수요강에선 차별과 혐오를 담는 거친 표현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제작진으로 하여금 자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표현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BBC 제작가이드라인은 “거친 언어가 불쾌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는 편집상의 목적 없이 사용될 때”라고 지적하며 △성적 욕설 △인종차별·민족차별 표현 △성·성차별·성정체성에 관한 욕설 △질병·장애에 대한 경멸 표현 등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작가이드라인 준수요강에서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어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는 전제와 함께 “인종차별주의 욕설, 신체적·정신적 장애나 성정체성 등과 관련한 경멸적 언어는 시청자가 점차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추세”라는 식으로 제작진의 판단에 참고가 될 현실을 적고 있다.

또 “BBC는 특정 언어나 문구를 금지하지 않지만, 콘텐츠 제작자에겐 거친 언어는 편집상 정당화될 때에만 사용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해당 부서의 상급 편집자 혹은 편집부와 상의하라”고 연출자의 책임의 문제와 함께 판단을 위한 방법 또한 알려준다. 또한 “언어의 수용 가능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맥락’”이라고 지적하며 제작진으로 하여금 특정 단어의 사용을 결정하기 전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디서’, ‘왜’, ‘누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지,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의도와 어조로’ 그 단어를 사용했는지, ‘얼마나 많이’ 사용됐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이유들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전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한 PD는 “제작가이드라인 등에 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할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곤 하나, 그 내용들을 숙지하기 위한 교육의 기회가 현실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사회적으로 어떤 사안이 크게 논란이 된 후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제작가이드라인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을 계속 상기하고 제작 현실에서 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그 내용들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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