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TV가 가지 않은 길
상태바
[PD의 눈] TV가 가지 않은 길
- 지상파 플랫폼의 위기와 PD
  • 염지선 KBS PD
  • 승인 2015.06.12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전에 거실을 TV없는 서재로 만드는 모 신문사의 캠페인이 있었다. 지금이야 그 신문사도 종편 채널을 운영하기에 그런 캠페인을 다시 하진 않겠지만, 당시에는 나름 반향도 좋아서 기획 기사를 통해 이를 실행한 가정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방송사 직원 가족도 있었는데, 당시로는 이해가지 않는 해사 행위라고 생각했다. 어찌 방송 종사자가 TV가 유해하다는 전제를 가진 캠페인에 동조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이제 TV는 더 이상 유해한 매체가 아닌 듯싶다. 그저 관심에서 멀어진 매체가 되었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스스로 TV를 안 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담당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거나 친한 PD가 만든 방송 정도 본다고 한다. 심지어 아예 TV가 집에 없다는 직원도 있다. 그리고 보다 솔직해지자면, 나부터 TV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페이스북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포털 연예뉴스에 소개되는 소위 '뜨는' 프로그램도 사실 인터넷 동영상 클립 정도 보거나 SNS 짤방으로 짧게 보고 만다. 전체 TV시청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pixabay

새로운 시대, 플랫폼의 시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홍보의 장이자 저널리즘의 창구가 되었다. '피키캐스트'가 얕은 지식을 담당하고 있고 아프리카TV는 풍선으로 돈을 벌고 있는 시대다. CJ 계열의 채널들을 통해 프로그램을 서로 홍보하고 방송하는 동시에 간장, 고추장, 카레도 같이 팔고 있다. 외국에서도 HBO가 못 먹어도 “GO!”를 선언했으며 넷플릭스는 일본 본토에 곧 상륙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무성하다. TV는 이제 미디어가 아닌 여러 가지 모니터 중 한 개에 불과한 기계덩어리가 되었다.

작금의 미디어 환경 급변에 TV 제작 PD들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도 볼 시간이 부족한 TV프로그램 제작에 매진하고 있지만, 과연 맞는 방향인가에 대한 궁금증 생긴다. 모두들 플랫폼, 플랫폼이라고 떠드는 가운데 지상파라는 기득권이자 굴레 속에서 이렇게 제작에만 신경 써도 괜찮은가에 대한 의문이다. 수신료를 받기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지상파 KBS 사정도 이러한데, 송출이 제한되어 있는 지역방송사나 소규모 케이블 방송사들은 얼마나 더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미디어 구루(Guru)가 나타나 우릴 구원해줄 계시를 내려주길 기다리는 느낌이다.

이에 대한 화답처럼 각종 강연이나 세미나 등에서 미디어 학자, 유명 컨설턴트, 스타트업 CEO 등이 “위기에 빠진 지상파”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온라인 플랫폼으로 갈아타라, 이미 늦었으니 지상파 콘텐츠의 고급화에 몰두하라, 중국에 플랫폼으로 진출하라, 중국과 합작하여 대규모 시장을 노려라, 이젠 유투브다, 네이버TV캐스트다, 다음카카오TV다, 아프리카TV다, 그래도 POOQ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듣다보면 팔랑귀처럼 “맞아 맞아”하다가 돌아서면 또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사실, 이러한 미래 예측의 특징은 모두 맞는 말 같긴 해도 다 모두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위대한 스티브 잡스도 애플TV로 또 한 번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틀리지 않았는가. 그 어떤 이도 우리에게 계시를 내려줄 순 없는 시대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미디어의 지형이 지상파 중심에서 그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 방향성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론적인 방향 제시는 무의미하다. 다만 새로운 길을 먼저 뚫고 나아가면서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MCN을 구축하고, 누군가는 대규모 고급 콘텐츠를 만들 것이고, 누군가는 모바일용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다. 모두 두려워 말고 일단 변화의 방향을 우리 스스로 찾아갔으면 좋겠다. PD들은 판을 키우고 큰 틀을 고민하고, 경영진은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미디어 지평 위에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기실, 우리는 모두 프로듀서가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