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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셰프에겐 냉장고 부탁 못하나요?

[위클리포커스] ‘쿡방’ 열풍 ‘셰프테이너’ 전성시대…여전히 여성은 한식, 집밥만 김세옥 기자l승인2015.06.15 07: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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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기억을 더듬어 2010년 방송됐던 드라마 <파스타>(MBC)의 첫 회를 떠올려보자.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스페라’에 새로 부임한 셰프 최현욱(이선균)은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선언하고 부주방장부터 이제 막 보조 딱지를 뗀 초보 요리사까지 네 명의 여성을 모두 해고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자신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남성요리사 3인과 새롭게 채용한 남성 주방보조로 채웠다. 이후의 전개를 위한 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양성평등부터 부당해고까지 여러 측면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여성계로부터 나왔지만, 상당수의 여론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버하지 말라는 쪽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TV 속 오락·교양프로그램들을 셰프들이 점령하고 있다. 지상파부터 유료방송까지 모두 요리하는 프로그램들, ‘쿡방’을 앞 다퉈 편성해 셰프들을 ‘모시고’ 있다. CJ E&M 계열의 라이프스타일 전문채널로 일찍부터 요리 프로그램에 집중해왔던 올리브TV를 통해 유명세를 쌓아온 셰프들이 이 같은 ‘쿡방’ 열풍 속 각 방송사에서 줄줄이 편성하고 있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셰프들을 통칭하기 위해 셰프(Chef)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합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 올리브TV <올리브쇼 2015> ⓒCJ E&M

‘셰프테이너’가 남성명사로 기능하는 쿡방의 세계

그런데 이런 ‘셰프테이너’라는 단어는 현실에서 남성명사처럼 기능하고 있다. 물론 한국어 명사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셰프테이너’라는 단어가 마치 남성명사처럼 인식될 만큼, TV 속 요리사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남성이다.

실례로 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경우 고정 출연자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초 정가은, 화요비 등 고정 여성 출연자가 있었지만 방송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여성 출연자들을 모두 하차시키고 남성 셰프 군단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진행자인 김성주, 정형돈을 비롯해 게스트가 의뢰한 요리를 경쟁 속에 만들어내는 셰프 군단(최현석·정착욱·샘킴·미카엘·김풍·홍석천·이원일·박준우·이연복·맹기용) 등 모든 출연자가 남성으로 채워졌다. 셰프들에게 냉장고를 맡기고 요리를 의뢰하는 게스트 중 여성이 없으면 2주 연속 <냉장고를 부탁해>에선 남녀 성비 10(MC 2인·셰프 6인·게스트 2인) 대 0의 방송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올리브TV의 대표 푸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올리브쇼 2015>에 출연하는 셰프 11인도 모두 남성이고, tvN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 문외한인 윤상, 김구라, 박정철, 손호준 등 4인의 남성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이 또한 외식사업가이자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이다. 걸그룹 에이핑크와 AOA와 함께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통한 다이어트 방법을 알아보는 SBS플러스 <날씬한 도시락>(6월 6일 종영)에는 건강한 요리법을 알려주는 전문가 2인이 등장했는데 이들 또한 모두 남성 셰프(최현석·맹기용)였다.

‘쿡방’이 인기를 끌자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요리 관련 특집을 기획하곤 하는데,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도 지난 5월 30일부터 ‘4대 천왕-명가의 비밀’이라는 코너를 3주 연속 방송하고 있다. 이 코너에선 전국 유명 중식당의 주방장들이 자장면, 탕수육, 볶음밥 등의 맛을 겨루는데, 4인의 주방장 모두 남성일 뿐 아니라 이 코너의 스페셜 MC는 백종원이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JTBC

물론 여성을 등장시키는 요리 소재 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역할은 비전문가 영역에 머무른다. KBS Joy에서 방송 중인 <한끼의 품격>은 시청자들이 소개하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으로, 5인의 평가단이 심사를 맡는데 이 중 한 명은 독특한 시식 평가로 유명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다. 그녀와 함께 평가단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3인의 남성 셰프(레이먼킴·요나구니 스스무·신제록)와 외식사업가 홍석천으로, 전문적인 심사는 사실 이들의 몫이다.

지난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대단한 레시피>의 진행자 5인 중에도 여성이 있다. 배우 김원희와 함께 진행을 맡은 가수 문희준,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조우종 아나운서가 함께 전국을 다니며 특별한 레시피를 찾아 경쟁을 하면 또 다른 진행자인 강레오 셰프가 레시피와 맛에 대한 평가를 담당한다. 매주 한 명의 스타와 함께 요리 여행을 떠나 그와 함께 힐링 요리를 맛보고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 밥상을 선물하는 콘셉트인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식사하셨어요?>의 진행자 중 한 명인 방송인 이영자도 요리 잘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하지만 이 프로그램 안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이는 임지호 요리연구가다.

여성은 파스타 만들 수 없나

여성이 전문가 위치에서 등장하는 방송도 있는데, 대부분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한식을 소재로 할 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 즉 노포를 찾아 음식에 대한 철학과 요리 비법을 배우는 TV조선 <백년식당>에는 진행자인 김성경 외 4인의 셰프가 등장하는데 이 중 한 명이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명현지 셰프다. 올리브TV의 <한식대첩3>에도 백종원, 최현석 셰프와 함께 심영순 요리연구가가 심사위원으로 출연한다. 심영순 요리연구가는 ‘옥순동 요리 선생님’으로 불리며 재벌가의 딸이나 며느리, 장·차관 부인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등 평생 한식요리를 강의해왔다.

지난 1월 23일 종영한 SBS플러스 <쿡킹코리아>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연예인들과 젊은 쉐프들이 팀을 이뤄 대결하는 콘셉트였던 만큼 많은 무려 8인의 요리사들이 심사위원(3인)과 출연자(5인)로 등장했는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심사위원 정혜정 요리연구가(국제한식조리학교 교장) 역시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인물이다.

한식 외의 분야에서 여성 요리사가 활약한 프로그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요리 프로그램들을 주요하게 편성해온 올리브TV의 경우 초창기 가수 싸이의 누나로도 유명한 푸드스타일리스트 박재은, 빅마마 이혜정 등에게 진행을 맡겼고, 이들은 한식부터 양식까지 다양한 레시피를 방송을 통해 선보였다.

▲ 올리브TV <한식대첩3> ⓒCJ E&M

다만, 당시의 요리 프로그램은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의 방송처럼 매일의 식단을 고민하지만 때때로 주말에는 가족 혹은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는 여성들에 대한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많았다. 지금 TV 속에서 남성 쉐프들이 시청자들의 감탄 속에 선보이는 전문 영역으로서의 요리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성 쉐프들은 시청자들이 흔히 세 끼 밥으로 주로 소비하는 한식이 아닌 대부분 외식의 대상인 중식, 일식, 이탈리아 음식 등의 전문가들이다.

요리연구가 차유진씨는 “여성 요리사도 파스타를 만들 수 있고 생선을 다듬고 고기를 발라낼 줄 알지만 (TV 속에선) 전문적인 요리 실력과 능력을 가진 여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차유진씨는 “(이런 모습은) 여성을 어머니, 애인, 부인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집밥을 하는 남성을 백‘주부’(백종원), 차‘줌마’(차승원) 등으로 호명하는 것 역시 집안 살림을 하는 사람은 여자라고 단정하며 대상화 하는 모습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즉, 가사의 한 부분이 아닌 직업으로 선택하는 요리는 매식(買食)으로 소비되는 요리이며, 이런 요리의 전문성은 주로 ‘세 끼’ 밥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여성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판단하는 결과라는 문제제기다.

그러나 제작진 입장에선 주요 시청층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실례로 <PD저널>이 시청률 조사 전문기관 TNMS에 의뢰해 지난 3월 2일부터 6월 8일까지 3개월 동안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성별·연령별 시청률을 확인한 결과 1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여성의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이에 대해 차유진씨는 “주요 시청층에 대한 고려가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요리를 직업으로 하고 있고 공부하는 여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남자 요리사 일색의 프로그램들만 많다는 사실에 대해 형평성의 측면에서 제작진의 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유진씨는 “요리사부터 지면에 음식 평론을 하는 기자, 하다못해 음식 다큐멘터리의 진행자마저 다 남자”라며 “제작진들은 늘 여성으로는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이는 일종의 ‘푸드 포르노’의 한 종류로 남성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된다”고 지적했다.

▲ tvN <집밥 백선생> ⓒCJ E&M

BBC 트러스트 보고서, 현실의 남녀 성비 반영한 프로그램 제작 권고

출연자의 성비와 관련한 해외 방송들의 철학은 어떨까.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관리·감독기구인 BBC 트러스트(BBC Trust)가 2011년에 발간한 ‘BBC 과학보도의 불편부당성과 정확성에 관한 BBC 트러스트 리뷰’(Review of impartiality and accuracy of the BBC's coverage of science)에 따르면, BBC는 2010년 한 해 동안의 BBC 과학 보도에 대해 영국 임페리얼 대학(Imperial College London)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그룹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영국에서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의 실제 비율에 비해 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과학 콘텐츠에 과학자로 출연하는 남성 과학자의 수가 많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이에 이사회는 방송에서 남성과 여성의 균형을 맞추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과학포럼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BBC 트러스트는 “BBC의 콘텐츠에서 영국 내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 비율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한 계획과 그 효과”에 대한 설명을 보고서에 포함하고 1년 후 발간하는 보고서에서 이에 대한 검토 결과를 담겠다고 밝혔다. 요리 프로그램의 사례는 아니지만, 현실의 전문 영역에서의 남녀 성비를 방송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철학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한 PD는 “한국에선 여전히 요리를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성이 요리하는 모습 자체가 이슈가 된다”며 “시청자의 공감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최근의 요리 방송에선 남성 요리사들의 출연에 더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연령, 성별 등을 고려한 출연자 안배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고 노력도 하지만 시청률 등 현실의 상황 속에서 때때로 간과되는 것도 사실이며, 특히 예능·오락의 영역에서 좀 더 그런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도 “결국 제작진 개인의 의식만 강조하긴 보다는 방송사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부분을 고민함으로써 내부의 시스템 마련을 위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별에 따라 출연자를 안배하라고 강제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만큼, 방송의 공영성을 생각할 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를 적극으로 하는 게 긍정적이라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이를 위해 공영방송의 이사회나 시청자위원회 등을 구성할 때 다양한 연령, 계층, 성별 등을 반영토록 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라는 게 있다. 영화 산업에서의 성적 불평등, 특히 여성이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테스트로, 이를 통과하기 위해선 3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여성 캐릭터를 최소 두 명 이상 포함’하고 ‘이 여성들끼리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야 하며 ‘그 대화 속에 남자 주인공에 관한 것이 아닌 다른 주제의 내용이 있는지’ 여부다. 단순 비교를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 벡델 테스트를 작금의 ‘쿡방’에 적용하면 첫 질문부터 탈락할 수밖에 없다.

사실 TV 속 요리하는 남자의 인기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요리가 여자의 몫으로 인식되고 있는 까닭인 측면도 존재한다. 요리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이런 현실의 인식에 대한 반전을 주기에, 양성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갈망을 반영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이러한 갈망을 반영한 결과인 ‘쿡방’이 요리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여성의 성 역할을 고정시킬 우려를 낳는다면 어떨까. 지금의 방송들이 최선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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