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도 라디오는 위기…해답은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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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네번째 넥스트 라디오 포럼 ② 정찬형 MBC 라디오 PD

▲ 정찬형 MBC 라디오 PD ⓒ한국PD연합회

“라디오가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30년 전에도 ‘라디오가 위기’라고 했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콘텐츠 혁신에 있다” 라디오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모인 네 번째 ‘넥스트라디오포럼’ 강연에서 발제를 맡은 정찬형 PD가 내놓은 해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195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면서 많은 학자들은 ‘라디오는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1980년대 정 PD가 MBC에 입사했을 때도, 라디오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라디오 르네상스’라는 모임이 있었다.

최근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이용 가능한 오디오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라디오 위기론은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라디오 위기론’은 늘 있었고, 중요한 것은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혁신적인 콘텐츠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정 PD의 말이다.

그는 “시대의 요청이나 시장의 요구를 직시하면서 소재영역의 확장, 새로운 장르 개척, 신상품 개발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체가 늘어가고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더라도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PD는 지난 1982년 MBC에 입사해 <지금은 라디오 시대>, <손석희의 시선집중>,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주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각 프로그램에 정 PD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청취자들을 끌어왔다. 딱딱한 시사물 성격이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는 당시 현대방송 (HCN)의 ‘America's Funniest Home Videos'을 라디오에 차용해 재미있는 사연 코너를 집어넣었고, 이후 청취자들이 급증해 당시 사람들이 가장 즐겨듣는 라디오 1순위에 올랐다. <손석희의 시선집중>도 당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에서 영감을 얻어 인디리포터 코너를 만들며 현장감을 살려낼 수 있었고 결국 대표적인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자리 매김했다. 정 PD는 현재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배출수의 음악캠프>를 연출하고 있다. 다음은 정찬형 PD의 강의와 질의응답 중 주요 내용 정리다.

연출자의 눈으로 본 ‘라디오 전성시대’

청취자로서 본 라디오의 ‘진짜 전성기’는 1960~70년대다. 라디오 연속극이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마루에 모여 앉아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섬마을 선생님’이나 김수현 작가의 데뷔작인 ‘저 눈밭에 사슴이’와 같은 라디오 드라마들의 인기가 높았다. 한 편에 20분 정도 방송을 했는데, 하루에 12편 정도가 방송되기도 했다. 인기 있는 라디오 드라마들은 영화화됐고,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같은 라디오 드라마가 재방송 되는 것도 일상이었다. 실제 범죄 사건을 드라마로 엮은 <법창야화>는 워낙 인기가 높아서 퀴즈 추첨 장면을 TV로 중계하기도 했다. 60년대 후반 시사풍자극이었던 <오발탄>은 청취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일부 집에만 흑백 TV가 놓여 있던 시절이 라디오의 진짜 전성기였다.

1982년 MBC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라디오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당시 방송국 내에 ‘라디오 르네상스’라는 소모임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라디오가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니 부흥을 시켜야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었다. 입사 후 첫 부서 회의에서는 “라디오가 전성기였을 때 들어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컬러TV에 밀려서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MBC

선배들이 라디오 쇠퇴기라고 걱정할 때 라디오 PD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연출자로서는 라디오 전성기를 살아왔다. 80년대 <푸른 신호등(1988년)>, <지금은 라디오시대(1995년)>, <손석희의 시선집중(2000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2003년)>, <고스트스테이션(2012)>, <배철수의 음악캠프(2014년)> 등을 연출하면서 라디오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로 신기술과의 결합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1990년대 초 PC통신 시대에 PC 통신과 라디오를 결합한 <생방송! 라디오 컴퓨터 쇼>를 만들었다. PC 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라디오에 소개하거나 미디 음악 콘테스트를 열면서 청취자와의 소통을 넓혀 나갔다.

2000년 <오마이뉴스> 창간에 영감을 얻어 만든 프로그램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이었다. 당시 시민기자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고려대 강의를 두고 학생들과 대치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쓴 기사의 조회 수가 100만 건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해 10월 만든 프로그램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당시 첫 게스트가 김영삼 대통령, 패널은 오현호 오마이뉴스 대표였다. 현장연결은 ‘인디리포터’가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에서 착안한 것이다.

미래 라디오를 위한 올드보이의 몇 마디 “그 중에 제일은 사랑”

지금의 라디오는 제작 시스템이 예전 같지 않고 연출기회도 제대로 못 찾고 있는 상황이다. 내부의 자기검열, 외부의 통제 때문에 위축되고 창의력마저 억압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연출 철학이나 연출 기술을 도제식으로 차근차근 전수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라디오 전성기와는 전혀 다른 현실인데, 그럼 어떡하면 좋으냐?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개혁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환경이나 조건이 부여된 것이라면, 같은 제작여건 안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PD의 숙명이다.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는 그 안에서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기회가 주어지거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는 개혁과 혁신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신기술을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남들보다 앞서 신기술을 시도하고 적용해봐야 하지만, 때로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할 때도 있다. 라컴쇼나 미니처럼 신기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보면 향후 프로그램 구상이나 제작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원래 방식을 밀고 나가는 것도 차별화될 수 있다. 나는 ‘보이는 라디오’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이는 라디오’는 라디오라기보다 인터넷 텔레비전 방송이지 않나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공동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청취자들이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회성의 관심이 아니라 사회를 규정하는 문화, 정치, 경제 등에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지난 3월 12일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는 정찬형 PD ⓒ노컷뉴스

Q.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시대는 지났다. 라디오와 음악의 관계,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라디오 외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옛날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를 통해서만 음악을 듣던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다운로드를 해서 음악을 듣다보면 ‘닫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다운로드와 다르게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면 ‘창이 열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함께 듣고, 공유하는 라디오만이 가진 고유한 부가 기능을 강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교통방송에서는 영어 FM 방송 등 다국어 방송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외국어와 라디오는 어떤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앞으로 다민족 사회를 생각하면 영어방송 등 다국어 방송이 상당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을 때 AM 주파수를 영어 방송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주장했는데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표준 FM의 콘텐츠를 영어 버전으로 방송하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어 방송이 동시통역을 계속 넣어야 하는 한계 때문에 인터뷰하지 못한 사람들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메르스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WHO와 인터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아이템 선정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출연자 섭외 노하우가 있다면?

아이템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핫(hot) 한가, 흥미로운가, 중요한가’를 고려한다. 핫 한 아이템, 뜨거운 감자는 무조건 아이템이 된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말초적 흥미 뿐 아니라 지적 흥미도 포함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이템으로 선정한다. 섭외 노하우라면. ‘이 프로그램에 내가 나가면 나한테 이익이다’라고 출연자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축적’되는 부분도 있다. 10년 전에 시선집중에서 인터뷰 했던 사람이면 다시 그 쪽에서 인터뷰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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