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사’와 유병재, 방송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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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얼마 전 종영된 KBS2 <프로듀사>에서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킨 인물은 사랑에 얽혀 있는 주인공 PD들이 아닌 변 대표(나영희)였다. 연예기획사의 갑질 행태와 돈을 벌기 위해 비인간적인 처사도 감행한 등장인물 중 유일한 악역으로 방송만 생각하는 방송사 PD에게 윗선에다 부당한 압력이 가하는 거대 악이었다. 예능국장은 그녀 앞에서 늘 쩔쩔매다 마지막 회에 와서야 시원하게 내질렀고, 차태현과 공효진 등의 일선 PD들도 막바지에 능력을 발휘해 변 대표로부터 ‘방송주권’과 ‘선’을 지켜냈다.

<프로듀사>는 로맨틱코미디 즉, 판타지가 가득한 드라마였다. 예능 PD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짙고 강했을 것이다. 스타 연예인과의 로맨스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변화하는 흐름을 보니 실제로 방송사 PD들이 <프로듀사>의 그들처럼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맞서 역전 만루 홈런을 치는 일은 이제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판타지가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방송사 예능국을 무대로 한 KBS 드라마 '프로듀사' ⓒ화면캡처

최근 가장 뜨거운 예능 이슈는 가요기획사들이 예능인들을 대대적으로 포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SM을 필두로 YG의 유병재, FNC의 정형돈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예능인들을 영입하고 있다. 또, 최근 실시간검색어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예능계 인사는 공중파 예능에 단 한 번도 고정 출연한 적 없는 유병재다. YG 전격 입사 소식에 이어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위해 사옥 근처 50평대 아파트를 내줬다는 기사가 연일 탑 연예뉴스가 되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날까지 매일매일 방송(국)과는 상관없이 일거수일투족이 이슈가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YG의 보도자료에 있는 ‘더 나은 창작활동을 위해’라는 구절이다. 그를 영입한 이유가 단순히 ‘출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예능의 시대라고 할 만큼 예능의 영향력이 그 어떤 대중문화 장르보다 극대화된 시대다. 이때 가요기획사들이 예능인들을 공격적으로 섭외하는 것은 일종의 시그널이다. 배우 에이전시에서 소속 배우를 확보하는 차원과는 다른 더 큰 영향력을 갖기 위한 1단계 전략이다. <프로듀사>에 등장하는 방송국과의 알력다툼이나 출연자 끼워 팔기 등의 차원을 넘어선 예능 제작의 주도권을 갖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인 셈이다.

아직 기획사들이 예능에 본격 진출하고 장악할 뚜렷한 방안과 노하우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예능 제작에 이미 나선 SM의 사례에서 보듯 틀림없이 방송사 안에서 기획부터 제작이 이뤄지던 예능 콘텐츠 제작 방식에 도전하는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한류를 이끄는 콘텐츠가 예능이며 제작비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가장 탐이 나는 분야다. 더 이상 방송사의 시스템과 플랫폼에 기대지 않아야 할 동기와 자원이 충분하다.

▲ MBC ‘무한도전-식스맨’편에 출연한 유병재 ⓒ화면캡쳐

이는 여러 프로덕션들이 방송사의 편성을 받아(아니면 모셔와) 진행하는 드라마처럼 예능도 제작자 집단, 창작 집단이 탄생해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함께 제작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됨을 뜻한다. 방송사는 물론 방송사 소속 PD의 이름이 차지하던 기획과 제작 크레딧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영석 사단은 지금 tvN이란 울타리 안에 있지만, 앞으로는 제2의 제3의 나영석 사단이 방송사란 울타리를 벗어나 여러 자본과 손을 잡고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먼 이야기라고 말 할 수 있지만 늘 변화는 그렇게 왔다. 케이블의 안착부터 오늘날 종편의 역습까지 이렇게 빨리 세상이 바뀌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약 한달 전 유재석이 JTBC 출연을 결정하면서 예능계 전체가 술렁였다. 그는 지상파 예능의 높은 아성과 영광의 상징이었다. 그 마지막 성벽이 무너졌기에 그토록 크게 술렁인 거다. <프로듀사>는 유재석처럼 그 마지막 찬란했던 시대에 바치는 판타지 같다. 기획자, 즉 스타PD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존 방송사의 권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고, 더욱 더 스타PD가 산업화되는 예능 창작집단 시대에 접어들면 기획사와 방송국 PD의 관계는 선악 구도가 아닌 경쟁 및 제작 파트너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것이다. <프로듀사>의 행복한 PD들 너머로 현실에선 ‘뭐 없어?’라고 묻는 순간 드높은 변화의 파도에 묻히는 살벌한 시대가 몰려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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