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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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없는 라디오 시대 ⑦]

지금 영국의 라디오 업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입니다.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라디오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라디오와 스마트폰의 강점을 접목시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라디오는 90%가 넘는 청취율을 기록하면서 또다시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5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사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특히 15세 이하의 어린 연령층에서는 라디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계속 늘고 있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드웨어로서 라디오를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청취자를 다른 매체가 선점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에서 추진한 아이폰용 하이브리드 라디오 플레이앱

영국의 라디오 종사자들은 ‘라디오에 너무 오랫동안 혁신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라디오의 하드웨어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모바일 앱(안드로이드, 윈도우 모바일 등의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의 사용자 경험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기존의 라디오가 갖는 강점과 약점을 비교했습니다.

광범위한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로,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바일 앱을 통한 라디오 청취는 방송 참여, 정보 검색, 편의성, 다양한 수익모델과 연계성 등에서 강점을 갖지만, 영국에서는 3G 커버리지가 넓지 않고, 도심 안에서도 3G 신호가 아예 안 잡히는 지역이 많으며, 기기가 신호를 잡으려고 계속 시도하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량이 컸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를 얼마나 소모했는지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기 때문에 청취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이것은 우리에 비해 열악한 영국의 모바일 인프라 탓이기도 하지만, 배터리 소모나 데이터 요금에 대한 우려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조사를 통해 기존의 라디오가 갖는 강점들도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FM이나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 디지털오디오방송)를 통한 라디오 청취는 배터리를 평균 6배 더 쓸 수 있었고, 데이터 요금이 없이 완전히 무료였고, 커버리지도 훨씬 넓었습니다. 물론 모바일 앱이 제공하는 다양한 확장성과 편의성은 따라갈 수 없겠지만,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5~20시간씩 라디오를 듣는 영국 청취자들에게는 라디오의 기본적인 장점들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그래서 기존 라디오의 장점을 살리면서 모바일 앱의 매력을 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라디오,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였습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앱을 통해 방송을 듣지만 인터넷 연결이 아니라 기기에 내장된 FM 수신기(또는 DAB 수신기)를 통해 듣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커버리지 한계, 배터리 소모, 데이터 요금 걱정 등을 모두 극복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3G(또는 LTE) 연결을 통해 방송에 참여하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또 방송에 나오는 노래의 음원을 바로 다운로드하는 등의 재미와 편의성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기본적으로 FM 수신칩이 내장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스마트폰 제조사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대다수 스마트폰이 FM 수신칩을 기본 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사들이 아주 미미한 수준의 원가 절감을 위해서 이 기능을 제한해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라디오들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라디오 수신 기능을 활성화하고 라디오 수신을 위한 앱을 기본 탑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청취자’를 이용했습니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라든지, ‘이런 기능이 있다면 스마트폰을 통해 라디오를 더 많이 들을까? 그렇지 않을까?’ 라든지 답이 빤한 질문들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BBC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64%, 라디오를 꾸준히 청취자들의 84%가 이런 하이브리드 라디오 기능이 내장되면 좋겠다고 응답했고, 전체의 67%, 청취자의 87%는 이 기능을 많이 사용할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라디오 업계는 이 자료를 가지고 스마트폰 제조사를 압박했고, 끝내 유니버셜 스마트폰 라디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라디오가 처한 상황을 분석할 때, 스마트폰 제조사를 설득할 때, 이들은 뻔히 답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아는 것과 객관적으로 뒷받침되는 자료는, 설사 그 내용이 같다고 하더라도, 행동을 결정할 때에나 남을 설득할 때에나 큰 차이를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규모 청취자 조사가 꼭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개별 방송사 차원이 아니라, 라디오 전체가 함께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BBC의 편성 책임자인 마크 프렌드(Mark Friend)는 이렇게 말합니다. “BBC 라디오가 아무리 크고 경쟁력이 있어도 애플이나 삼성에 비하면 정말 작은 회사에 불과하다, BBC 혼자서 그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 국민의 90%가 함께 하고 있는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나서면 그 누구와도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다.”

유니버셜 스마트폰 프로젝트,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우리도 꼭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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