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논란과 방송 그리고 ‘베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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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가 표절 시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신경숙 작가의 표절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배신감에 비난을 퍼부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문학계와 출판계에서는 부랴부랴 해명을 하고, 급한 불끄기에 나섰지만 대중은 영 미덥지 않다는 반응이다. ‘신경숙 표절 사태’가 대한민국의 민낯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직자 후보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이 단골 이슈가 된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절 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각 분야에서 지 오래고, 영화 및 음악 분야에서도 저작권 논란이 비일비재하다.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패러디, 클리셰와는 다르다. 패러디는 어떤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것을 뜻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되며, tvN <SNL 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클리셰의 경우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 통속극에서 흔히 쓰이는 기법, 진부한 표현을 뜻한다. 패러디와 클리셰와 달리 표절은 아이디어 차용을 넘어서 아이디어의 핵심 혹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베낀 것을 뜻한다.

대중에게 파급력이 큰 방송계도 표절은 남 일이 아니다.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하나의 포맷이 흐름을 타는 동시에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현실을 보면, ‘표절의 흥행’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예능 등 장르 불문하고 ‘베끼기’ 논란이 생기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 지난 6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공동주최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일례로 KBS 드라마 <아이리스>는 표절 공방이 법적 공방으로 번져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현재 방영 중인 KBS <너를 기억해>의 경우 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이 CJ E&M 드라마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과 유사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제작진이 이를 부인하는 해명에 나서는 등 ‘표절 논란’ 진화에 나섰다. 또한 드라마의 타이틀, 포스터 제작 시 ‘미국 드라마 베끼기’를 했다가 누리꾼의 지적으로 곤혹을 치르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은 미국 애니메이션 <징키 젠키스 럭키 루>의 남녀 구도가 흡사해 도마에 올랐다. SBS <별에서 온 그대>는 <뉴 암스테르담>, KBS <골든 크로스>는 <트루 디텍티브>,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올리브 러브>의 티저 영상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의혹으로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예능에서도 기시감이 들 정도로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다. MBC<일밤-아빠! 어디가?> 이후 KBS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등 다른 듯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왔다. KBS <어 스타일 포유>는 인터넷 생방송을 소재로 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후발주자로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KBS <레이디 액션>은 MBC <일밤-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을, KBS <마마도>는 ‘나영석PD표’로 꼽히는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아류작’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조대현 KBS 사장은 최근 수신료 관련 기자회견에서 ‘베끼기 논란’에 선을 그었을 뿐, 해명에는 말을 아꼈다.

이처럼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가에서 표절 혹은 표절 경계선에 있을 법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무얼까. 추측해보건대 이전에 비해 치열해진 채널 경쟁을 들 수 있다. 지상파 시대가 점차 저물고 채널 다양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종합편성채널이 안착하는 동시에 케이블 채널이 젊은층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콘텐츠로 성장세를 굳히면서 시청률 경쟁도 만만치 않게 됐다. 더구나 시청자들이 TV 콘텐츠를 웹 혹은 모바일로 시청하는 패턴으로 바뀌면서 지상파 스스로도 젊은층의 소구점이 어디인지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실험적인 시도보다 이른바 ‘검증된’ 대박 프로그램의 수순을 밟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드라마는 독자층이 형성된 웹툰이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드라마 제작에 힘을 쏟거나, 예능은 시청자 호응을 가늠할 수 있는 '대박' 프로그램의 포맷을 차용해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 이 때 차용과 표절의 갈림길이 생긴다. 물론 우리나라 현행법상 표절을 따질 수 있는 근거가 있지만 대중의 판단에 맡기는 영역이 넓은 만큼 방송계 스스로 표절에 대한 자정작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에 침묵했던 문학계와 출판계의 자충수가 방송계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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