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수요일 저녁 김광한 아저씨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어느 정도 위중한지 알아보려고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이라도 받지 않으실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전화벨이 울리기만 하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김광한 아저씨는 운명하셨다.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난주 아저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안부와 건강을 물었고, 다음 주에 얼굴을 보자며 늘 그렇듯이 씩씩하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은 아직도 믿기 어렵다. 참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김광한 아저씨라고 부르는 이유는 나에게 아련한 추억의 그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친밀하면서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PD들 중 상당수가 ‘라디오 키즈’라 불릴 만큼 라디오에 대한 추억이 많이 있다.
특히 현재 현업에서 활동 중인 40대의 PD들에겐 80년대 라디오 방송과 팝음악은 청춘의 자양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라디오를 통해서 팝음악을 접했고 라디오 PD를 꿈꾸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나에게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은 ‘청춘의 교과서’였고 해외 팝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었던 창구였다. 80년대 초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팝음악에 빠져 팝음악 잡지에 나오는 빌보드차트 순위를 외우고 다니곤 했다. 잡지가 월간이다 보니까 항상 차트는 최신 순위가 아니라 한 달 전 차트가 소개되곤 했는데 김광한 아저씨가 진행하는 팝스 다이얼에서는 미국의 유명 DJ 케이시 케이슴(Casey Casem)의 최신 차트 프로그램 ‘American Top 40’를 편집해서 방송했다.
김광한 아저씨의 목소리와 케이시 케이슴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졌다. 당시에 팝스 다이얼에서 방송되는 팝송을 항상 녹음했는데 공테이프가 없을 땐 비싼 돈을 주고 산 클래식 테이프나 영어 회화 테이프에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곤 했다. 그만큼 학창시절 김광한 아저씨의 라디오 방송은 늘 삶의 한가운데 있었고 라디오 PD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해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나 김광한 아저씨가 CBS에서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로 방송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늘 친구처럼 친밀함을 보여주셨다. 그는 내 이름 김세광과 아저씨 이름 김광한을 합쳐서 ‘김세광한’ 이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전화하실 때면 “나! 김광한” 이라고 친구처럼 대화를 했다.
그가 편안한 안식을 찾아 하늘로 떠났다. 지난주 아저씨가 마지막 남긴 문자 메시지를 당분간 지우지 못할 것 같다. “그렇네 올해 절반이 지났네. 자기도 PD/DJ 잘하고? 시간 많아요. 연락줘요? 김광한”
아저씨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