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서 편안한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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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주는 드라마의 힘

지난 토요일 자정 심야식당이 문을 열었다. 일본판 <심야식당>을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심야식당>이 방영된 것. 배우 김승우가 주인공인 마스터 역할을 맡았다. <심야식당>은 사람들이 잠들 때인 밤 12시에 문을 열어 새벽 7시까지 운영되는 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에서는 아베 야로의 만화를 원작 삼아 드라마로 시즌3까지 제작됐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심야식당>은 관객 수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마니아층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심야식당>은 일본 뿐 아니라 ‘일드’를 애청하는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심야식당> 리메이크 소식이 들렸을 때 국내 시청자들이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리메이크작 <심야식당>은 원작의 기획의도를 충실히 따른 듯 보인다. SBS <심야식당>은 30분짜리 시추에이션물로 실험적으로 편성된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이 식당에 모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다. 예컨대 팍팍하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노동’이 잠들 때쯤,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민낯 그대로 <심야식당>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은 밤의 끝자락에서 타인과 술 한 잔 기울이며 마음을 나눈다. 오늘을 견뎌내고, 내일을 맞이할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식사 한 끼를 대접하는 마스터의 일상이 깃든 곳. 그곳이 <심야식당>이다.

‘잘해봐야 본전’ 리메이크작 <심야식당>이 풀어야 할

▲ SBS 드라마 <심야식당> ⓒSBS

과제였다. 하지만 드라마 방영 직후 시청자들은 호평보다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혹평에서 공통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즉, 청년의 고달픈 삶을 상징하는 한 아이돌의 ‘발연기’ 논란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심야식당>의 주요 무대인 ‘식당’이라는 공간에 대한 쓴 소리를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일본 가정식 술집 같다’, ‘화려하고 세련됐지만 심야식당 같지 않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냄새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의 맛”을 전한다는 기획 의도와 달리 고급스런 평면 TV나 오디오의 배치를 보면 이질감이 든다. 시청자들의 기대 반, 우려 반 중 기대감이 사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좀 더 살펴보면 원작과 리메이크 간의 공간을 다루는 방식을 비교했을 때 현저한 차이를 마주하게 된다. 원작에서 ‘식당’이라는 공간은 그야말로 작고 누추하게 그려진다. 도시의 외곽, 구석진 골목에 있을 법한 낡은 식당이다. 마스터 한 명 움직이기 버거운 좁은 공간, 어두침침한 식당 내부, 조리 도구마다 손 때 묻은 느낌까지 고스란히 세월을 담아내고 있다. 단골집의 익숙함을 그리워하듯 <심야식당>에는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의 편안함이 공존한다. <심야식당 시즌3 스페셜> 다큐멘터리에서 우노 역을 맡은 배우 단칸 씨가 “(<심야식당> 세트장) 그 곳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위치가 켜지듯 기분이 확 변한다”고 말할 정도다. 섬세하게 재현된 공간은 인물의 연기는 물론 드라마 서사에까지 힘을 실어준다.

이처럼 드라마 속 공간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힘의 크기는 달라진다. 한국판 <심야식당>의 공간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유독 날카로운 이유도 <심야식당> 속 ‘식당’을 그저 별 볼 일 없는 공간이 아니라 ‘위로의 공간’인 동시에 이야기의 완결성을 부여하는 공간으로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국내 드라마에서 ‘공간’을 통해 서사의 힘을 극대화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가난한 피아니스트와 상류층 여성의 위태로운 사랑을 그린 <밀회>(JTBC)에서 곰팡이까지 핀 것까지 묘사된 선재의 남루한 단칸방은 부족할 게 없는 혜원과의 계급적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둘의 사랑으로 전복시키는 공간으로 그려졌다. 또 상류층의 속물의식과 기득권을 적나라하게 들춰낸 <풍문으로 들었소>(SBS)의 세트장을 맡은 이철호 미술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전형적인 부잣집을 꾸미려 장식적인 접근을 하기보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어 풍자나 해학을 담는 공간으로 설정했다”며 서사를 품은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오마이스타>, ‘<풍문으로 들었소> 7억 세트장, 이런 비밀이...’, 2015.03.13)

공간이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드라마가 진짜보다 더 ‘리얼하게’ 공간을 재현할 것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간 갈등이 중심인 국내 드라마에서 공간은 하나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보편적인데다가 공간(세트장)에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수억 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에서 마스터 역을 맡은 코바야시 카오루 씨는 식당의 낮은 찬장 때문에 자꾸만 머리를 부딪쳐 모서리 보호대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든 배우를 보니, 손님들의 허기를 묵묵하게 달래주는 마스터로 보인다. 한국판 <심야식당>에서도 그러한 익숙함을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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