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고 졸업사진, 풍자와 방송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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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정부고 졸업사진이 화제다. 지난 1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정부고 오늘 졸업사진 찍나봅니다”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들은 어떤 의미에서건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 화제를 낳은 거의 모든 현상들을 분장과 패러디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사진들만 봐도 이들에게 한계는 없다. 최근의 쿡방 열풍을 주도하며 ‘설탕성애자’, ‘백주부’ 등의 캐릭터를 획득한 백종원과 순한 소주 열풍을 부른 한 주류업체의 소주병으로 분장한 학생부터 여전히 불안을 남겨두고 있는 메르스 사태와 이에 대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까지, 이 학생들이 표현하지 못할 건 없어 보일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떤 이는 한 해에 무슨 일들이 있었고 무엇이 유행했는지를 확인하려면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보면 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조선왕조실록에 비유할 정도다. 조금은 과장된 말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의정부고 졸업사진에서 유쾌함과 신선함을 느낀다는 표현일 터다. 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추억 만들기에 가까운 졸업사진에 대중은 왜 열광하는 걸까.

▲ 의정부고 졸업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엔 풍자의 맛도 있다. 사실 이 사진들 속 학생들은 분장을 통해 화제가 된 어떤 모습을 약간 비틀어 재연하고 있는 것인 만큼 촘촘한 풍자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주류 미디어 안에선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떤 모습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경향이 짙다.

실례로 의정부고 졸업 사진 속엔 박근혜 대통령의 “살려야 한다” 패러디가 있다. 지난달 메르스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됐을 당시 박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을 방문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 속 벽엔 ‘살려야 한다’고 적힌 A4 용지가 붙어있었고, 누리꾼들은 설정 논란을 제기하며 수많은 패러디를 쏟아냈다. <국민일보>는 온라인 뉴스에서 이 현상에 대해 보도했는데,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의 항의전화에 이어 예정됐던 정부 광고가 갑자기 취소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6월 14일 방송)에서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늑장 대응과 국민에겐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것과 달리 언론 보도 속에선 방역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한 사진이 공개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모습 등을 풍자했다. 그런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특정인의 인격과 관련해 부적절한 내용이 있다”, “여러 국민이 고통 받고 있는데 우스갯소리와 부적절한 표현을 하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불쾌한 이들도 있을 것” 등의 이유를 들어 행정제재(의견제시) 처분을 내렸다.

실재하는 논란을 전하거나 정부를 풍자하는 미디어의 모습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누군가를 불쾌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적절한 게 되는 현실 속에서 어른들이 만드는 미디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리고 부작용처럼 강자를 향해야 할 ‘풍자’가 약자에 대한 ‘조롱’으로 표현되곤 한다.

▲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풍자한 KBS 2TV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6월 14일 방송 ⓒ화면캡처

이런 모습들을 보며 많은 이들은 쉽게 권력 앞에 작아진 방송 제작진들을 탓한다. 이 비판들은 틀리지 않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는 우선 주체가 제작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을 탓하는 것만으로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들을 위축시키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를 위한 대안으로 ‘다이빙벨’을 제시한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9>(현 <뉴스룸>)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하고 최근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풍자한 KBS <개그콘서트>와 MBC <무한도전> 등에 대해 행정제재 처분을 내린 방심위의 의사결정을 맡는 9인의 위원은 여야가 각각 6인, 3인씩 추천한 결과다. 정파의 이해를 대리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불공정한 구조인 상황인 것이다.

또 공영방송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각계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야가 7대 4(KBS 이사회), 6대 3(방송문화진흥회, MBC 대주주) 등 압도적으로 불공정한 비율로 추천한 결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방송을 움직이는 시스템의 문제를 봐야 하는 이유다. 현재 권력을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결정할 수 있고, 나아가 한 프로그램의 생사여탈까지도 쥐고 흔들 수 있는, 한 쪽 권력에 쏠린 중첩된 방송 지배구조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이런 지배구조의 문제는 여도 야도 모두 ‘공감했던’ 문제다. 과거형인 것은 2012년 대선 당시만 해도 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이를 이행할 의지를 ‘전혀’ 내보이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여당이 이행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현실을 이대로 방관한다면 대중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방송 제작진들도 못하는 정치 풍자를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하는 모습을 연례행사처럼 즐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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