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재량권 남용’ 제어 장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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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잇단 패소, 무엇을 말하나] ①정민영 변호사 기고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간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즘 물오른 정치풍자를 보여주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민상토론>이 “불쾌감, 혐오감 등을 유발하고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쳤다”며 난데없는 행정지도 조치를 내리더니, MBC <무한도전>에 대해서는 “메르스에 대해 정확치 않은 내용을 내보냈다”며 행정제재를 했다. 도대체 방심위는 뭐하는 곳이길래 이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냐며 웃어넘기는 분위기였지만, 그간 이루어져 온 방송심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문제가 꽤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다.

방심위 위원 9명은 우리나라에서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과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심의하고, 이에 대한 제재 여부, 제재의 수위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문제 있는 방송이라고 판단하면 해당 방송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하도록 처분할 수도 있다. 또 인터넷게시물을 차단하거나 삭제할 권한도 갖는다. 방심위가 ‘심의의 칼’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언론자유는 상당한 정도로 위축될 수 있다. 방심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들 역시 굳이 귀찮게 방심위에 불려 다니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방심위라는 ‘사실상의 행정청’이 방송과 인터넷을 심의하는 게 맞는 것인지, 심의를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일단 접어두자. 지금의 방송심의제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심의가 최소한의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노골적으로 정부와 여당을 편드는 종편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는 반면, 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방송에 대해서 방심위는 여지없이 크고 무거운 칼을 휘둘러 왔다.

▲ 자료사진 ⓒ뉴스1

지난 2013년 말, 시국미사에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에 대해 작정하고 쓴소리를 한 박창신 신부. CBS 라디오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는 박 신부를 출연시켰다가 ‘객관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출연시켰다’며 방심위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다. JTBC <뉴스9>은 세월호 참사 당시 다이빙벨 구조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잠수기술 전문가를 인터뷰했다가 ‘혼란을 야기한 보도’라며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정부나 고위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에 대해 방심위는 “공정성을 잃었다”,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등의 이유로 법정제재를 되풀이해 왔다.

방심위의 법정제재를 수긍하지 못하는 방송사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지금까지 결과를 보면, 정치심의 논란이 있었던 제재 중 상당수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뒤집혔다. 앞서 언급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한 제재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박 신부가 개인의 견해를 밝힌 것이고, 진행자가 박 신부의 발언에 동조하거나 방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방심위 제재를 취소했다. JTBC 뉴스에서 다이빙벨 구조법에 대해 다룬 것과 관련해서도 서울행정법원은 JTBC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JTBC뉴스가 다룬 ‘다이빙벨 구조법을 사용하면 20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하다’ 등의 주장이 불분명한 허위사실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방심위의 중징계 결정이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심위는 지난 2013년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에 대해서도 법정제재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방심위의 재량이 남용되었음을 인정했다. 이 사건에서 방심위가 제재의 주된 이유로 삼은 방송심의규정은 “방송은 재판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제11조)” 였다.

법원은 이에 대해 “해당 방송은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한 특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1심 재판부의 판단과 함께 이에 대한 변호인과 국정원의 의견, 아직 항소심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방송했다”며 “이 방송이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약한다거나 사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방심위의 제재가 이유없다고 판단했다. 그밖에도 상당수 사건에서 법원은 방심위의 제재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 KBS '추적60분-천안함' 편 대법원 판결서 ⓒPD저널

방심위 제재에 대해 법원에서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는데도, 방심위는 일방적이고 편향된 심의를 그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방송심의규정이 방심위의 재량을 통제할 어떠한 지침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심의규정 상당수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심의규정을 신경 쓰지 않고 제재결정을 남발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제2항을 보자. 이 조항에서는 방송의 공정성에 대하여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균형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외에 어떠한 내용도 없는 조항이다.

이렇다보니, 방심위는 한쪽의 입장과 그 반대편의 입장을 50대 50으로 반영하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주된 대상은 정부정책이나 고위공직자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방송들이다. 그 결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를 다루면서 통진당 의원을 출연시킨 뉴스에 대해 공정성 위반이라는 심의가 이루어지고,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비판적으로 다루겠다고 만든 다큐멘터리를 두고, ‘두 전직 대통령의 입장에서 유리한 내용을 충분히 다루지 않아 공정하지 못했다’라는 판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재판중인 사안을 방송으로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된다(제11조)는 조항 등 자의적으로 쓰일 규정들이 상당수 있다. 심의위원들의 재량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심의규정이 대폭 개정되어야 한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6월 23일 오후 서울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심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또 한 가지 살펴볼 점은 방심위원 9명의 구성이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도록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방심위원 9명 중 6명은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하고, 3명은 야당이 임명한다. 위원들은 당연히 자신을 임명해 준 쪽의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수 위원은 여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해 심의를 진행하고,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야당 쪽 위원 3명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위원들이 방송과 통신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표적으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지금까지 방송 및 통신과 하등의 관계도 없던 인물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함귀용 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별다른 전문성이 없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보니 심의가 ‘정치적’으로 진행될 위험도 같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9명의 방심위원 모두가 50대 이상(대부분은 60대 이상)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방송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은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동성 고교생의 키스 장면을 기성세대 상당수는 기겁하듯 받아들이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도 않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연령대, 성별, 계층의 문화적 감수성을 심의에 반영하려는 최소한의 노력 없이,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위원을 구성하다보니, 50대 이상 남성 9명이 우리 사회 방송과 인터넷을 심의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간략히(?) 살펴보았지만, 그 외에도 지금의 방송심의제도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제도 전체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정권편향적인 심의 및 제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제 있는 심의가 법원의 판결에 의해 바로잡힌다고 하지만, 법원 판결이 확정되는 것은 방송이 나간 지 최소한 수년이 지난 후다. 방심위 입장에서는 수 년 뒤 법원에 의해 심의가 뒤집어지든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방송심의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 출발은 정부 정책이나 고위공무원 등에 대한 의혹제기를 방송의 공정성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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