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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상담하는 예능프로그램의 동상이몽

[위클리포커스] ① 고민 소재 예능의 공감과 치유…예능과 공익 사이 김세옥 기자l승인2015.07.24 15: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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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TV가 모든 건 아니지만 많은 걸 상담하기 시작했다. 금성에서 온 아빠와 화성에서 온 엄마가 명왕성에서 온 아이를 만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도통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모와 자녀의 소통 두절 상황부터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감정과 질투, 욕망으로 인해 기대와 불안에 흔들리는 상황까지, 자신과 타인,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TV 안으로 들어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있다.

사실 이렇게 TV에서 고민을 상담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다만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K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등 교양 프로그램에서 고민 상담의 역할을 했던 그동안과 달리, 최근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 K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 SBS), <마녀사냥>,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이상 JTBC)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민 상담을 적극적으로 맡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SBS

무겁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 상담과 감상의 줄타기

고민 상담을 주요 포맷으로 가져온 예능이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누군가의 고민을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출연자들도 일단 서로의 속내를 터놓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온 만큼, 평소라면 하지 못했던 말들을 편하게 한다. 여기에 TV 속에서 만나왔던 익숙한 연예인 패널들은 친구, 혹은 아는 언니와 오빠처럼 내담자인 출연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관객들과 함께 공감과 중재의 역할을 한다. 고민을 털어놓는 행위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가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마음 상한 일을 털어놓았을 때 진지하게 들어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느껴본 일이 있다면 알 수 있다. 편하게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 자체에서 마음의 짐이 일부나마 덜어진 듯 느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누군가가 마음속의 말을 털어 놓을 때 보일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그저 들어주며 공감의 표현 정도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누군가 고민을 토로해 올 때 뭔가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곤 한다. 하지만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결국 저마다의 경험만큼만 조언할 수 있을 뿐이다. 고민에 대해 얘기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패널들이 자신의 조언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칫 재판관처럼 발언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창기의 <마녀사냥>이 새롭다는 평가를 받은 배경엔 19금을 지향하며 그간 방송에서 쉽게 다루지 못한 연애와 섹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는 점만 있는 게 아니다. 연애와 섹스에서 파생하는 욕망 등을 터부시하지 않고 긍정하며 진행자들이 저마다의 경험에 비추어 감정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태도가 있었다. 방송 중간 진행자들이 “우리는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고, 할 수도 없다”고 강조하던 모습 말이다.

▲ JTBC <마녀사냥> ⓒJTBC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지향을 벗어나는 순간들이 때때로 목격됐다. 일례로 명문대생인 연하의 남자친구가 장난이라며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들을 하는데, 자신이 싫다는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멈추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소연을 한 어떤 여성의 사연에 대해 진행자들은 “사연이 ‘아가아가’하다”며 귀여워했을 뿐이다.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방영횟수가 쌓이며 어느 순간 연애에 대해 ‘많이 아는’ 존재로 포지셔닝 된 진행자들이 누군가의 고민에 섬세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벗어나 일종의 판관의 역할을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들이 나오는 것이다.

<동상이몽>에서도 유사한 장면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현대무용을 하는 딸은 허리 통증에 괴로운데 엄마는 부상을 참고 계속 하라고만 할 뿐이니 괴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재석과 함께 진행을 맡고 있는 김구라는 한국 골프 선수의 부모들은 선수가 경기 중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뺨을 때리기도 했다며 사연자의 엄마를 옹호했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패널들도 엄마의 헌신에서 훌륭한 선수가 나오는 법이라며 부모의 입장에 보다 공감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최고의 센터라고 불렸던 농구선수 출신의 서장훈이 패널 중 유일하게 운동을 한 경험을 토대로 “치료가 우선”이라며 출연 학생의 엄마를 설득하려 했지만, 김구라는 혼자 하는 무용과 팀플레이인 농구의 차이를 주장하며 서장훈의 조언을 “일종의 자기과시”라고 몰아붙였다. 부모의 입장에 서본 일이 없는 네가 뭘 알겠냐는 투의 발언이 연장자인 동시에 진행자라는 권위에 더해져 김구라의 입에서 나온 순간, 결국 질책 당한 건 서장훈이 아닌 부모의 헌신과 마음도 모르고 하소연을 늘어놓은 딸이었다.

‘예능이니까’와 ‘예능이지만’의 경계

웃음을 기본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진행자와 패널이 출연자의 고민을 가볍게 다루며 때때로 희화화하는 경우도 보인다. 얼마 전 <안녕하세요>에선 29년 동안 모태 솔로라는 게 고민스럽다며 출연한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진행자 중 한 명인 신동엽은 “혹시 남자는 만나봤냐”고 질문했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한 농담이었겠지만, 타인의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차별을 드러내는 일이 여전히 많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칫 무신경한 질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왔다.

소재의 선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가장 뜨거운 논란은 <동상이몽>에서 있었는데 아빠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부담스럽다는 18세 여고생의 고민이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 방송에서 침대에 함께 누울 뿐 아니라 입술 뽀뽀까지 하려는 아빠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딸의 고민은 “사랑하는 것과 이를 표현하는 게 습관화 돼야 한다”며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부족했던 스킨십을 후회하는 김구라의 발언 등과 함께 가족의 사랑으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스킨십이 싫다는 딸의 의사가 가족애라는 가치 아래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에서 어떤 이들은 젊은 여성의 신체를 “딸 같은 마음에서” 만졌다는 이들의 변명을 여전히 관대하게 수용하는 사회의 현실을 떠올리기도 한다. 방송 이후 사춘기 딸에 대한 아빠의 스킨십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온라인상에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기야 출연 학생의 언니인 큰딸이 SNS에 “작가들이 촬영 내내 카톡이나 문자로 ‘○○ 좀 해주세요’ 등의 연락을 했고, 우리는 그것을 따랐다”는 글을 남기며 조작방송 의혹까지 일고 있다. 결국 제작진은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하게 방송으로 전달되지 못해 아쉽다”는 공식입장을 내놨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KBS 화면캡쳐

개인의 고민으로 등장했지만 사회의 부조리와 맞닿은 사연들을 다루는 제작진의 태도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몇 년 전 <안녕하세요>에는 사장의 취미 생활 때문에 무려 5년 동안 오전 근무 시간 내내 건담을 닦아왔다는 여성이 출연했다. 건담 청소 때문에 일이 밀려 수당도 없이 야근을 하는 것은 물론, 건담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밤 12시에 사장에게 불려나갔는데 알고 보니 사장 친구의 장난이었다며 더 이상 일이 아닌 사장의 취미생활인 건담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고민 토로였다. 하지만 함께 출연한 사장은 계속해서 건담 청소를 시키겠다는 뜻을 꺾지 않았다.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사연임에도 진행자들과 패널들은 사장이 사연의 주인공을 좋아하기 때문 아니냐며 남녀상열지사를 앞세운 웃음올 적당한 봉합을 시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마녀사냥>에선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의 점장이 애인 행세를 해 고민이라는 사연이 등장했는데, 이때 진행자 중 한 명인 성시경은 틈을 주는 사연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또 다른 진행자인 허지웅이 사연자의 시급에 점장의 지분거림을 받아주는 값까지 포함된 게 아니라고 꼬집긴 했지만, 직장 안에서 존재하는 권력 관계의 문제까지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자와 패널들이 하는 발언들은 사연자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허탈감을, 때때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지적에 제작진들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정체성과 한계를 동시에 말한다. 고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65분 내외의 방송에서 웃음과 함께 해결까지 하는 건 쉽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고민을 소재로 한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 동일한 평가를 하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이만큼의 역할을 하기에 공익의 성격을 띤 예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동상이몽>만 해도 지난 3월 31일 파일럿 방송 당시 동시간대 1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과 언론으로부터 고르게 호평을 받고 정규 편성이 된 케이스다.

세상의 모든 고민은 그 고민을 하고 있는 개인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개인은 사회에 속해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고민은 대부분 사회의 문제와 분리하기 어렵다. 경제학자이자 사진가인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한 사람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지적처럼 말이다. 고민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기획의도를 떠나 공익의 성격을 부여받고 있는 현실이고, 그렇기에 제작진도, 시청자도 웃음과 공감에 더해 인권과 상식, 그리고 공정함에 대한 화두를 놓기 어려워지고 있다. 고민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고민과, 그에 따른 진화를 기대하게 되는, 기대해야만 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②고민 소재 예능의 한계와 극복을 위한 제언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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