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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 상담 프로그램

[위클리포커스] ②고민 소재 예능의 한계와 극복을 위한 제언 최선우 기자l승인2015.07.24 1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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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SBS<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 방송 후 ‘딸바보 아빠’를 둘러싼 논란으로 주말 내내 시끄러웠다. 이날 방송에는 아빠의 스킨십이 부담스러운 고교 2학년 딸과 스킨십을 피하는 딸이 서운한 아빠가 나왔다. 관찰카메라 화면에서 아빠는 딸에게 강제로 입뽀뽀를 하고, 침대에 자고 있는 딸 옆에 슬쩍 누워 딸을 안기도 했다. 아빠와 딸 사이의 스킨십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시청자들은 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방송이 끝난 후 출연자 가족을 향한 비난 여론과 도가 지나친 악성 댓글이 쇄도했다. 급기야 출연한 학생의 언니인 큰딸이 제작진의 방송 조작 시도와 의도적인 편집이 있었다는 글을 개인 SNS에 올렸다. 논란이 지속되자 <동상이몽> 제작진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동상이몽>은 그동안 자녀와 부모의 시선에서 같은 문제를 보며 오해를 푼다는 시도로 ‘착한 공익 예능’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방송 시작 13회 만에 ‘조작 논란’ 까지 제기돼 세대 간 소통의 벽을 허물겠다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빗나갔다.

고민 예능에 대한 끊이질 않는 문제제기

▲ 지난 18일 방영된 SBS <동상이몽> 에서 둘째 딸이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 ⓒSBS

사실 '동상이몽'을 둘러싼 잡음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동안 고민 소재 예능 프로그램이 고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있어왔다. 예능 프로그램이 일반인 출연자의 사연을 토크 소재로써 가볍게 소비하거나 희화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심각한 언어표현이나 물리적 폭력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여겨지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지난 18일 <동상이몽> 방송에서는 방송인 김구라 씨는 "나는 (아들인) 동현이 배꼽을 많이 쑤셨다"고 말하며 주인공 둘째 딸의 고민은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논의를 축소시켜 버렸다.

제작진의 의도적인 편집으로 인한 2차 가공도 문제다. 고민을 가볍게 다뤄도 된다는 제작진의 태도는 자칫 자극적인 ‘악마의 편집’의 소지를 낳는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동상이몽> 제작진이 가족의 문제를 실제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게 보이도록 과장했을 것”이라며 성폭력 관련 이슈에서 정도와 수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큰 딸의 주장대로 만약 제작진이 가족의 고민의 정도와 수위에 임의대로 개입했다면 이는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동상이몽>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은 단순 재미를 위한 선정적인 상황 재연과 편집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패널들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역시 다른 의미의 폭력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언론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출연진들이 고민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점도 문제 삼았다. 연예인 패널들은 자신의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에서 나온 조언을 제시하고, 방청객으로 자리한 이들은 둘 중 어떤 편을 지지하는지를 표시한다.

18일 방영된 <동상이몽>에 패널로 출연한 배우 신정근 씨는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용돈을 거부하고 스킨십을 안 해주는 자신의 딸을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과도한 스킨십이 부담스럽다고 고민을 토로한 사연의 주인공에게는 “아빠가 남의 딸을 만졌을 때가 문제” 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예능은 예능일 뿐?

고민 소재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끊이질 않는 근본적 원인은 시청자와 제작진 간에 고민 소재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입장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예능은 예능’이라는 입장이다. 고민을 다룬다고 해서 방송의 톤이 너무 진지해버리면 오락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고민을 터놓고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이라고 본다.

JTBC<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이하 <톡투유>)의 이민수 PD 역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방송을 통해 타인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고민 토로의 장’을 마련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이 PD는 “제작진이 정해놓은 답이나 시청자에게 교훈을 주려는 강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한다. 개인이 혼자 고민을 끌어안고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만 겪은 게 아니구나 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위로를 얻는 것만으로도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 프로그램 장르의 한계를 지적했다. 웃음과 재미를 목표로 하는 예능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솔루션 제공은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룰 차원이지 예능의 범주는 아니다. 예능에 전문가 패널이 출연하는 건 장르 성격 상 맞지 않는다. 전문가 패널이 출연하면 오히려 연예인 패널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시청자들이 전문가 패널을 요구하는 건 단지 제작진이 정도를 넘는 과한 연출을 했거나 선정적인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민 예능이 ‘착한 예능’이 되려면

EBS FM 라디오 <경청>의 방영찬 PD는 아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하면 잘 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경청>은 2013년부터 1년 간 방송된 청소년과 청년들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라디오 고민 상담 프로그램이다. 평일 밤 12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만 했을 뿐이다.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방송에 출연했던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상담기관보다 ‘경청’해주는 DJ와 제작진을 신뢰하고 의지했다. 자살을 결심했던 한 학생은 방송 출연 후 제작진에게 따로 연락해 “살고 싶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 PD는 ‘진정성’을 고민 상담 프로그램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단,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송 중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도 훈계도 하지 않았다. 방 PD는 ”<경청>의 담당 작가는 불면증을 앓을 정도로 아이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방송 후에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밤을 꼬박 샐 때도 많았다. 방송에서 고민을 다룰 때는 출연자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간과 인력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덧붙여 그는 짧은 방송 분량과 촬영 기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단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송 분량과 촬영 기간이 짧을수록 사전 인터뷰를 비롯해 촬영 전에 이루어지는 초기과정에서부터 제작진과 일반인 출연자 간의 교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의 구성과 연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커뮤니케이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고민 소재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촬영 기간과 방송 분량이 출연자의 고민을 깊이 있게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상이몽> 역시 1회마다 새로운 가족의 사연을 다루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작진의 연출 없이 주인공 가족의 실제 모습을 관찰카메라 영상에 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고민 상담 프로그램 제작진도 이 같은 비판 지점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다. 이들 역시 예능의 재미는 살리면서 방송의 공익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나름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한다고 항변한다.

▲ 일반인 출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KBS<안녕하세요> 패널들의 모습. ⓒKBS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의 연출을 맡은 전온누리 PD는 “사연 선정 후 사전 인터뷰에 공을 들인다. 가끔 심각한 사연이나 전문가의 코칭이 필요한 경우에는 제작진이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 전문가에게 방송분 VCR 모니터링을 직접 의뢰한다. 방송 중에 해법이나 전문가의 소견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60분 정도의 방송에서 고민을 완전히 해결해 줄 순 없는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반인 출연자의 고민을 다루기 때문에 제작진이 좀 더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예인들과는 달리 방송 출연이 처음인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방송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방송 중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을 잘 모른다. 맥락 없이 편집이라도 되면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방송 직후 악성댓글로 인한 무차별 공격과 원치 않는 사생활 침해 등 고민 예능에 출연한 일반인에게 2차 피해가 종종 일어나는 이유다. 지난주에 발생한 <동상이몽> 논란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딸바보 아빠’ 방송 직후 일부 네티즌들이 작은 딸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비난여론을 쏟아 부었고 이번에도 결국 방송에 출연한 가족은 상처를 입었다.

[관련기사] ① 고민 소재 예능의 공감과 치유…예능과 공익 사이


최선우 기자  frankies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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