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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업계의 고민거리를 보여주는 두 수치가 있다. 바로 49%와 100%다.

먼저 49%. 이것은 한 유명 주간 소년만화 잡지의 독자 성비율이다. 소년층-남성층에 어필하는 강한 표현의 만화들이 주로 연재되면서 ‘남성들의 잡지’로 인식되어온 이 잡지는, 실제로는 반수 가량의 독자가 여성이다. 이것은 이 잡지가 발행 중인 만화 단행본들의 판매 추이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배구를 다루는 특정 타이틀과 슬램덩크 이후 가장 히트한 모 농구만화의 단행본은 구매층의 60% 가량이 여성이다. 당연히 잡지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구매경향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이 여성 고객들의 구매력은 잡지를 유지하는 큰 힘이 되어주는 중이다.

▲ 일본 만화잡지 <주간 영매거진>. ⓒ주간 영매거진

이것은 비단 이 유명 주간 만화잡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출판사인 고단샤의 <주간 영매거진>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층에 어필해온 잡지의 경우도 여성독자가 늘었다. <피안도> 같은 작품의 경우는 여성독자들의 지지와 단행본 구매율이 매우 높은 만화다. 2000년대 들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인 스퀘어 에닉스의 <소년간간> 같은 경우도 주력 타이틀이었던 <강철의 연금술사> 단행본 구매층의 반 이상이 여성이다. 물론, 잡지 자체의 구매도 반 이상 여성독자에 의해서 이뤄진다. 즉, 이미 일본 만화 업계에서 소년/소녀와 같은 성별로 잡지 구매층을 구분하는 장르 분류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전자매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만들어진 일본의 전자 만화 시장에서도 20~30대 직장여성들은 막강한 구매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소프트 에로장르의 작품들이 초기 전자 만화 매체 시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만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만화를 만드는 창작전선에서도 여성들의 비중은 매우 높아지고 있다. 소년 만화잡지에서 ‘소년 만화’라는 장르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여성이고, 만화 연재를 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도 여성들의 비중이 매우 높다. <데스노트> 등의 작품으로 매우 유명한 오바타 타케시 작가의 작업실에는 그를 제외한 전원이 여자 작가로 이루어져 있고, 선이 굵은 남성적인 터치로 유명한 SF 작품인 <문 라이트 마일> 같은 작품도 작가 이외의 스탭 전원이 여성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학교들을 찾아가 보면, 정원의 60~70%가 여성이다. 남성 학생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들어보면 여성 학생들에 비해 자질도 의욕도 매우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 그럼 이제 처음 거론한 두 가지 수치 중 후자를 꺼내 들어보자. 100%. 이것은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진 어떤 유명 만화잡지 편집부의 남성 편집자 비율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인 일본의 출판만화 업계 편집부. 그러나 이제 독자의 반 이상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는 전원 남성이다. 위에서 거론한 대부분의 잡지에 여성 편집자가 없거나, 간혹 있더라도 비중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어예 없다. 굉장히 강력한 ‘금녀의 구역’인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일본의 만화 편집부와 기획부서가 감당해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 때문이었다. 이런 편집과 기획 업무에는 낮 12시쯤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낮밤이 뒤바뀐 생활’이 거의 필수로 따라다닌다. 또, 예전에는 원고를 작가에게 일일이 받으러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체력이 필요했다. 작가들에 따라서 작품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고, 국토가 길고 큰 관계로 장거리 이동이 다반사에 심야에 대응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받은 원고는 인쇄소에 전달해야 하고 이를 일일이 살펴봐야 했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많은 현장에 디지털 작업이 도입되었고 작가의 원고도 디지털로 전송 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교정지를 살피고 인쇄소에 전달하는 작업도 PDF 파일 상에서 점검하고 보내는 게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과거처럼 체력적 소모를 많이 요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작가들 접대 등도 여성작가가 늘어나면서 과거처럼 많은 양의 음주나 흡연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던 소년·청년·성인 만화 편집부에는 아직도 여성들의 비중이 극히 낮다. 어찌 보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고와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해도 될듯하다.

다른 현장들과는 다르게 퍽 변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성독자의 비중이 무시 못 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만드는 사람조차도 여성이 반 수 이상을 넘어가는데, 기획자는 여전히 남성 위주인 남성 만화잡지 편집의 세계. 이것은 요즘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 일본 출판만화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도 모순은 존재한다. 여성이 기획해서 여성이 그리고 여성이 보는 만화를 과연 ‘소년 만화’라는 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순 말이다.

*글쓴이 신주쿠 이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 콘텐츠 기획자, 번역가. 중학교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인생을 구원받고, 일본에까지 건너왔다. 인생의 만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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