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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상품으로 전락한 방송 콘텐츠의 시대

[위클리포커스] 플랫폼 전쟁과 죽어가는 방송 콘텐츠, 무엇을 해야 하나 김세옥 기자l승인2015.07.30 23: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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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결합상품의 규모가 커지면서 방송은 호프집의 라이터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이 됐다.” 한광섭 SBS 기획본부 정책팀 차장은 지난 21일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공정한 거래문화 조성방안’을 주제로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유료플랫폼의 규모가 커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방송콘텐츠가 호프집의 홍보상품인 라이터와 같은, 이른바 ‘미끼’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이다. 당장 이런 위기의식은 거대 통신사의 IPTV와 유료플랫폼이라는 동종 시장 안에서 경쟁하고 있는 케이블TV 쪽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지만, 지상파도 예외일 수 없다는 지적 역시 이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방송·통신 융합? 통신에 포획된 방송 콘텐츠

지난 2008년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기치 아래 IPTV에 대한 적극 지원 정책을 펼치며 콘텐츠 활성화를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가입 가구 1000만을 넘기며 급성장 한 IPTV는 방송 콘텐츠 제작·유통과 관련한 직접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이들이 열중한 건 이동통신과 집 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인터넷 전화 등 여러 상품을 묶어 각각의 서비스에 따로 가입할 때보다 싸게 판매하는 결합상품으로 가입자를 모으는 일이었다.

▲ 지상파 방송 3사 사옥 이미지 모음 ⓒPD저널

전기통신사업법은 결합상품을 구성할 때 전체 상품 총합의 3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상한 규정을 두고 있을 뿐, 통신 기업들이 각 상품별로 할인율을 다르게 적용하더라도 총 할인율이 30%만 넘지 않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 통신 기업들이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하면 ‘방송은 공짜’라는 홍보를 할 수 있는 이유로, 정준희 박사(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강사)는 “통신 산업의 지배력과 경쟁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보조적’ 방편으로 (통신기업들이) 방송을 포획했다”(7월 23일, 한국방송학회 주최 ‘미디어 콘텐츠 가치 정상화 방안’ 토론회)고 현 상황을 표현했다.

지상파가 사실상 독점적인 플랫폼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던 시절만 해도 시청자들은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되는 월 2500원의 수신료를 납부하고 프로그램 사이 방송되는 광고만 시청하면 자유롭게 TV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이블에 이어 IPTV, 그리고 종합편성(이하 종편)·보도채널(PP)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인터넷·모바일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 가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광고’라는 이름의 파이는 줄어들었다.

방통위가 지난 6월 30일 발표한 ‘2014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에 따르면 전체 광고시장에서 지상파의 비중은 급격하게 감소(2005년 79.3%→2014년 57.7%)한 반면 종편 등을 포함한 PP의 비중은 증가(2005년 17.5%→2014년 37.3%)하고 있다. 최근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에 광고총량제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광고규제 완화 정책을 내놨지만 이에 반발하는 유료방송 측을 달래야만 했고, 결국 모든 방송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실익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나 시청권에 대한 우려는 불가피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들이 선택한 건 추가 광고규제 완화(중간광고 도입)와 함께 콘텐츠 제 값 받기에 주력하는 일이다. 최근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TV와 IPTV에 재송신하는 <무한도전>(MBC) 등의 인기 프로그램 VoD(주문형 비디오) 가격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다. 또 매월 280원 수준의 가입자당 재송신료(CPS)를 430원으로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지상파 OTT(Over The Top) 서비스 ‘푹(Pooq)’은 모바일 IPTV에 PIP(Platform in Platform) 방식으로 입점했는데, 최근 가입자 1인당 서비스 제공대가를 1900원에서 390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 중인 상황이다.

지상파 유료화 vs 콘텐츠 제작 선순환 구조 마련

지상파 방송의 잇따른 요구에 유료플랫폼 사업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 가격 등의 인상 요구는 결국 여전히 열악한 지상파 직접수신 현실 속 유료방송에 가입돼 있는 90%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상황을 만들 것이라며 “지상파 유료화”라는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지상파 방송들은 ‘콘텐츠 제 값 받기’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이창훈 MBC 콘텐츠저작권보호팀장은 지난 21일 공공미디어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5~6년 전만 해도 양질의 다큐멘터리와 사회공익 프로그램들이 제법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프로그램의 광고 판매율이 제로(0)인 상황이다. VoD가 팔리고 해외 시장에 수출되는 것들만 살아남는 결과가 작금의 예능 전성시대인 것이다. 이렇듯 수익성만 본다면 예능 프로그램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런 방향을 정말 우리가, 방송생태계가 원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쩌면 10년 후엔 홈쇼핑과 플랫폼만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지상파 방송들은 콘텐츠 재송신 등의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투명성’이라고 말한다. 이창훈 팀장은 “수년 전부터 콘텐츠 이용 관련 시스템 제공을 요구해 왔지만 어느 유료 플랫폼 사업자도 제공하지 않았고 확인하게 해주지도 않았다”며 “IPTV를 운영하는 곳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용자 특성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IT(정보통신) 기업들인데 이런 회사들에서 콘텐츠 관리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아이러니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 5월 케이블TV와 IPTV에 재송신하는 <무한도전>(MBC) 등 인기 프로그램의 VoD(주문형비디오) 가격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했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가요제 방송 모습. ⓒMBC

문제는 이미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 플랫폼에 갖가지 결합상품 형태로 묶여있는 시청자 입장에선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제 값 받기’ 주장에 공감은 할지라도 당장 체감되는 이용 가격 상승에 지지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지상파 방송의 욕심 때문에 이용자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유료방송 플랫폼들의 주장에 더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정준희 박사는 다른 관점에서 이 주장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콘텐츠 제공자의 바기닝 파워(Bargaining Power·협상력)가 개별적으로든 집합적으로든 일정 수준으로 형성돼, 자신의 산업을 안정적으로 재생산 할 수 있는 선에서 콘텐츠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콘텐츠 대가 요구가) 이용자 단위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비자 이해를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시장의 성장과 콘텐츠 저가화 문제를 극복하는 단초라는 측면에서 부분적으로는 필수적이고, 딱히 가격 상승이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업자들이 자신의 산업과 시장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국 자기 상품의 가격과 이익의 폭을 조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위기에 지상파, 유료방송 플랫폼 하위 서비스로 종속되지 않으려면?

반면 양문석 전 방통위원은 공공미디어연구소 토론회 당시 “지상파의 (콘텐츠 가격 인상) 요구가 과도하면 결국 (유료방송 플랫폼에선) 자체 해결할 것이고 적당하면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지상파만큼 못 만들 이유가 없는 게 자본이고 종종 더 잘 만드는 것도 자본”이라고 말했다.

양 전 위원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지상파 방송은 지나치게 조급한 모습을, 유료방송은 지나치게 뻔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마지막 보루인 지상파 방송의 존재 삭제도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측면에서 상당히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 만큼, 한 번 기회를 잡아 정상화를 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이미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TV를 소비하는 쪽으로 시청자들의 이용행태가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지상파 방송이 취해야 할 전략은 전파를 사용하는 무선 플랫폼으로서 지상파의 역할을 완벽하게 서비스 하고, 광고를 통해 재순환이 되지 않는 영역은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벌충을 하되 지상파 자체 역량 이상의 수익을 올릴 정도로까지 가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지상파를 무료 공공 서비스로 기능하게 하는 직접수신의 문제를 놓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이에 더해 “MMS(다채널방송) 실현 등을 통해 현재 새롭게 창출되고 있는 시장인 VoD, OTT 등의 서비스에 있어 지상파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처럼 기존의 TV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게 아니라, 모바일 시청 패턴에 맞춰 10분 이내로 콘텐츠를 재편집하고 모바일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의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유료방송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자본을 앞세운 플랫폼 사업자들의 콘텐츠 경쟁은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일례로 미국의 정치 드라마인 <하우스 오브 카드>로 유명한 넷플릭스는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드라마 제작에 직접 나섰고 성공했다. 이런 결과는 다른 플랫폼 사업자들을 자극해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도 오픈 생중계 플랫폼 강화에 나서면서 빅뱅, 인피니트, 카라 등 한류 스타들이 참여하는 셀러브리티 개인 방송 생중계를 콘셉트로 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V’를 선보였다. 유료방송만이 아닌 다양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나 자체 제작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유료방송 플랫폼에 제공하는 콘텐츠 가격 문제를 매듭짓고 지상파의 또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OTT 서비스 안에서의 콘텐츠 제공을 어떻게 하고 경쟁력을 키울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 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KT 올레TV 모바일 홈페이지엔 6월 1일부터 KBS·MBC·SBS·EBS 등이 구성한 콘텐츠연합플랫폼의 요청에 따라 푹(Pooq)에서 제공하는 지상파 서비스에 대한 신규가입이 중단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KT올레 화면캡쳐

이런 가운데 지상파 방송 콘텐츠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갈등 상황에 대한 방통위의 시선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정미정 박사는 “지상파 콘텐츠 대가 산정을 둘러싼 논란은 공공영역인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부재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게 정상이지만, 방통위는 그동안 원인 분석 대신 분쟁으로만 규정하며 단타의 대응을 하는 데 그쳤다”며 사실상 방통위가 재송신료 협상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의 준사법적 재판절차와 마찬가지인 재정제도 등을 포함한 방송법 개정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정미정 박사는 “지상파 방송은 사회적으로 무료 보편 서비스라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해 왔지만, 정부는 직접수신이 가능한 무료 보편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 방송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등한시 해왔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미정 박사는 이어 “작금의 현실에서 정부의 할 일은 재정제도의 도입이 아닌, 공공정책의 입장에서 지상파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강화하고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의 위기? 지상파 ‘경영의 위기’도 배제해선 안 돼

지상파 방송이 현재 처한 일련의 위기 현실 속 강조되는 것은 결국 콘텐츠다. 공공 미디어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선 양질의 콘텐츠를 계속 제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콘텐츠 제 값 받기가 필요하고 공공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콘텐츠 제작에 이미 착수한 다른 플랫폼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무기’인 콘텐츠 제작에 대한 오랜 경험을 새로운 틀에 맞게 진화시켜야 한다는 고민이다.

이런 가운데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부)는 “지상파 콘텐츠 자체의 위기와 지상파 경영의 위기라는 두 측면에서 지금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디어 산업은 트렌드를 이끌고 대중이 관심 있을 이슈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었지만 이런 와중에도 몇 년 전까지는 끊임없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로서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지상파 경영의 위기로, 광고 시장의 파이가 줄어드는 등 외부적 요인도 분명 존재하지만, 계속된 위기 속에서도 지상파 방송이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던 인력들을 배제하고 이탈하게 만든 후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막대한 인건비를 들여 대체 인력을 채용하는 등의 경영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외부에서만 원인을 찾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유료방송 플랫폼 안에서 <미생>, <삼시세끼>(이상 tvN), <비정상회담>(JTBC)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획한 이들 대부분은 지상파 출신의 PD들이다.

김 교수는 “지상파 방송의 진짜 파워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고, 한쪽에선 광고를 줄이며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할 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중간광고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사별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의 대응이 아닌 전체 지상파에 도움이 되는 장기적인 로드맵 진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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