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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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선 PD의 행복한 오타쿠] ① 당신이 취미 생활을 당장 해야 하는 이유

미국에서는 하우스와인을 ‘그 주에 가장 헐 값에 구해서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비싼 값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와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웨이트리스의 미소에 넘어가 시켰다가 숱하게 실망하는 게 바로 미국의 하우스와인이다.

한국의 레스토랑이나 미국의 식당에선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 반면에 유럽의 대다수 레스토랑들은 주인의 취향, 그 식당의 전통, 셰프가 만들어 내는 음식맛을 고려해 와인을 신중하게 골라낸다. 그러니 유럽여행에서만큼은 하우스와인에 사기당할 일이 적다.

▲ ⓒpixabay

취미도 마찬가지다. 하고많은 취미서들과 자기계발서들은 마치 하우스와인처럼 저렴하며, 요리하기도 쉽고, 가격대비 이익이 많이 남는 가벼운 것들을 소개하느라 경쟁이다. 반면 시간과 품이 많이 들고, 제법 만만찮은 고통을 연료로 하며, 인생을 품삯으로 바쳐야 되는 깊이 있는 취미들은 막상 소개하기를 두려워한다.

필자는 그런 책들의 저자는 취미로 고통받고, 그 댓가로 영혼이 구제되거나 인생이 살만한 것이 되었다는 따위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왜냐하면 2년 전 펴낸 ‘남자의 취미’란 책에서도 썼다시피, 취미는 ‘편협’할수록 좋은 것이니 오소독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러블리한 취미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하기 쉬운 도락이나 취미란 말하자면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만큼의 무게밖에 나가지 않는다. 취미란 모름지기 좁고 편협할수록 좋다. 그것 때문에 애태우고, 방황하며 애달파 사랑해야 한다.

좋은 취미를 건사하고 누리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폼나게 산다는 것은 그러므로 일생을 바칠 편협한 취미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알고보면 좋은 취미란 어떤 마약보다도 중독적이지만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고, 매일 그것에 빠져 편식을 일삼더라도 몸에 해롭지 않다. 좋은 취미란 실로 영혼의 구세주요, 구원으로 가는 현실적인 계단이다.

▲ ⓒpixabay

“운명하셨습니다.”

의사가 시트를 끌어당겨 친구의 얼굴을 덮었다. 내 친구는 평생 꿈에 그리던 유럽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자영업을 하던 그 친구는 소심했고 성실했다. 오로지 자그마한 아파트를 내 손으로 장만하고 아이들 과외를 옆집에 뒤떨어지지 않게 시키는 것이 인생의 행복인 줄 알고 살았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머리 벗겨진 이웃 아저씨와 공모해 가곤 했던 아가씨 나오는 퇴락한 술집이 유일한 타락이라면 타락이었다.

하나에 빠지면 10년 이상 공을 들이고 깊이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두고 늘 부러워만 하던 친구는 입버릇처럼 유럽을 한번 가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런 일일랑은 미루어 두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일렀다. 그러나 친구는 적금도 부어야 하고, 아파트 융자금도 갚아야 한다며 꿈을 미루었다. 나는 여행이란 돈을 모아서 가는 게 아니라 갔다 와서 돈을 갚아나가야 하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주택담보대출은 갚는 게 아니라 이자만 주는 게 자기를 믿고 돈을 빌려준 은행에 대한 예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 ⓒpixabay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어느 날, 반가운 목소리의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드디어 유럽 4개국 8박 9일 상품을 예약했다며, 쪼잔한 카드할부가 아니라 현금일시불로 결제까지 마쳤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당신은 이제야 제주도바깥의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며 가족들이 모두 꿈에 부풀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아가씨 나오는 술집의 아가씨 문자도 씹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 후, 친구는 퇴근길에 넥타이를 풀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진작에 유럽을 다녀오라고 채근하던 나는 더욱 깊은 슬픔에 빠졌다. 우리 인생이 깃털처럼 경박(輕薄)하다. 왜 더 일찍 우리는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지 않은 것일까? 왜 그런 일들을 미루어 두고서 시간이 가버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 깊이 후회하는 것일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종이에 적어놓고 오늘 바로 실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제한된 시간을 알 수는 없으나 살면서 유보할 행복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2편에 계속)

* 필자는 대구MBC PD로 책도 쓰면서 음반과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F.S.U)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독도>로 국제상 2관왕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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