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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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지상중계] 다섯 번째 PD인문학 포럼 “아프리카, 인문의 무덤”
  • 강만지 한국PD연합회 사무국
  • 승인 2015.08.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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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아프리가, 인문의 무덤'을 주제로 한 인문학 포럼에 패널들이 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남 독립PD, 윤상욱 외교관(외교부 정책과장),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MBC PD)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다.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다. 아프리카인은 흑인이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으로 볼 수 없고, 그들만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대륙이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의 저자 윤상욱 외교관은 지난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인문학 포럼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지적했다.

이번 포럼은 ‘아프리카, 인문의 무덤’를 주제로, 윤상욱 외교관과 박정남 PD가 발제를 맡아 아프리카가 왜 4D(죽음(Death), 질병(Disease), 재난(Disaster), 절망(Despair))의 대륙이 되었는지, 아프리카의 희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강의했다.

윤상욱 외교관은 주세네갈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6개국(세네갈, 감비아, 가포베르데, 기니, 기니비사우, 말리)을 관할했고, 현재 외교부 개발정책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립PD협회 소속 박정남 PD는 케냐, 우간다, 콩고, 르완다, 시에라리온 등 11개국을 돌면서 MBC <W>에서 ‘시에라리온의 소년병’등 아프리카의 생생한 현실을 취재했다. 박PD는 다양한 자원을 둘러싼 아프리카 각국의 내전과 말라리아, 에이즈 등 질병 문제를 취재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전했다.

윤상욱 외교관은 “아프리카를 ‘천연자원의 보고’나 ‘보물섬’으로 여기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전혀 기회의 땅이 아니다”라며 “일부 장사꾼들을 위한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 정부당국자, 학자들에게 반성 없이 통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외교관은 절망뿐일 것 같은 아프리카에 희망의 씨앗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그것이다. 그는 “시에라리온에서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민들도 주인의식이 생겨나고 있다”며 “단순한 물적 원조가 아니라 이런 희망의 씨앗을 보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상욱 외교관과 박정남PD의 강의와 질의응답 중 주요 내용 정리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윤상욱 외교관)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가 없다는 것은 문자로 기록된 기록물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문자가 있어야 역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이나 구전으로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역사가 이어질 수 있다.

▲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 역사가 없다고 하자, 아프리카 역사가들이 모여 방대한 구술사를 정리해 ‘The Pedagogical Use of general history of Africa’라는 역사서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아프리카에도 게즈문자, 암하라문자, 바문자 등 문자가 존재했지만 아프리카인들은 문자보다는 구술을 통한 역사전승을 선호한다.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 역사가 없다고 하자, 아프리카 역사가들이 모여 방대한 구술사를 정리해 ‘The Pedagogical Use of general history of Africa’라는 역사서를 만들기도 했다.

“아프리카 산유국은 부유하다”는 것도 편견이다. 세계 9위의 석유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9년 기준 700불 수준이다. 자원이 넘쳐나는 데 가난한 이유는 아프리카 석유가 국민의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사유물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정권을 잡으면 지역을 바둑판식으로 나누고 권력자들이 광구를 나누어 챙긴다. 그럴듯하게 자원보고서를 제작해 투자를 유치하고 이익은 그들이 챙긴다.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농작물도 자국의 식량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생산하는 대표적 작물인 커피, 코코아, 땅콩, 면화 등은 서구에 수출하기 위해 재배된다. 이러한 수탈의 핵심에 국제자본이 있다. 지도자들은 자국민들이 먹을 식량생산에 주력하기보다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자원은 많지만 자국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은 없는 실정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오직 금, 석유와 같은 자원을 팔아서 식량을 얻는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으며 이와 같은 채굴업(Digging industry)만이 아프리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 윤상욱 외교관 ⓒ한국PD연합회

현재 여러 나라들이 아프리카에 원조를 하고 있다. 원조는 아프리카에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프리카의 높은 문맹률을 줄이기 위해 각국에서 학교를 지어 주었다. 하지만 문맹률은 그대로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학부모가 굳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다. 공급형 원조의 치명적 단점이 바로 ‘공급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잘못된 원조 관행으로 인해 상품을 생산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 해외에서 모기장을 지원해 주다보니 모기장조차도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옛말이다. 이제는 물고기를 잡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공급형 원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요 유발형, 동기 창출형 원조가 필요한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독재자들도 아프리카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덫으로 작용한다. 원조, 자원에만 눈독을 들이는 지도자들이 바뀌어야 아프리카에 미래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시에라리온이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점이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자는 두려움이 생겼고, 국민들은 주인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각국에서 지지하고 보호해줘야 한다.

“아프리카인에게 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 (박정남 독립PD)

아프리카 문제의 시작은 제국주의 열강의 탐욕에서 시작한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 많다. 이 선들은 열강들이 편의에 따라 그어졌다. 선이 그어지면서 소수의 종족과 다수의 지배 종족으로 나뉘게 되었고, 열강들은 편의를 위해 각 종족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다. 그때껏 별 구별 없이 살아가던 투치와 후투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벨기에였다. 벨기에가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을 구분 짓고 그에 따라 차등을 두었고, 내분이 시작됐다. UN과 벨기에가 르완다를 방치한 며칠 간 100만 명의 양민들이 학살을 당했다.

아프리카에서 가난이 남긴 것 중에 가장 큰 문제가 질병이다. 당시 촬영을 간 우간다는 경제인구의 절반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할 만큼 에이즈 문제가 심각했다. 케냐에서 우간다를 거쳐 콩고에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는 트럭 운전기사들이 마을을 경유하며 에이즈를 퍼뜨렸고, 아프리카의 할례 풍습이나 미신 치료가 에이즈를 확산시켰다. 문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자국에서는 금지된 약을 이곳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박정남 독립PD ⓒ한국PD연합회

아프리카인에게 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는 반군과 정부군의 자금줄이 되어 무기로 되돌아왔다. 배경엔 다국적 다이아몬드 회사가 있었다. 나이지리아 내전은 석유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자원으로 생겨난 수익은 부패한 정권이 가져가고 석유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은 나이지리아인들은 반군을 조직해 정부와 다국적기업에 테러를 가한다. 자원을 갖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있다.

Q. 아프리카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가 나서서 국제연대를 출범해보는 것은 어떨지?

2010년 이래로 아프리카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부각되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나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 서서히 인프라를 갖춰나가고 있다. 한-아프리카포럼, 장관회의 등을 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아프리카 새시대 포럼을 연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 학부가 하나뿐이다. 때문에 이러한 지적 인프라도 빨리 구축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프라도 없이 바로 연대로 나아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한-아프리카 포럼을 개최하고 있는데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국내 지적인 토양이 더 두터워져야하고 방송인들에도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Q. 식량문제는 내전 때문에 계속되는 것인가? 내전이 없는 지역에 기아 문제는 없는 것인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한다’는 멜서스의 덫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지역이 아프리카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인구는 100년 전보다 3~4배 늘어 현재8억명 정도에 달한다. 식량 산출이 늘어나야 하는데, 정작 정부지도자들은 농업에 무관심하고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아프리카 농업에 투자하는 지원보다 긴급식량 구호 지원이 늘고 있다. 국제투자자나 정부는 아프리카 식량 가공 시설, 가공 산업 등에 관심이 없고 자원에만 관심을 갖는다. 국제자본들이 자원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제분 공장, 수산업 가공 등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아프리카를 진정한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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