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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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봄’은 없었다
[분석] 조대현 사장 취임 1년, KBS 구성원들은 무엇을 말하나
  • 김연지 기자
  • 승인 2015.08.03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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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조대현 KBS 사장이 취임 1년을 맞았다. 1년. 그 1년은 KBS 구성원들이 길환영 전 사장 퇴진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시간이었다. 조 사장의 취임은 보도 독립성과 프로그램 자율성,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구성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투쟁은 세월호 국면이 있었기에 실현 가능했다. KBS 구성원들이 길 전 사장 해임을 “아이들의 죽음으로 얻어낸 승리”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게 얻어낸 승리였기에 KBS 구성원들에게 지난 ‘1년’이 주는 무게는 남달랐다. 새로운 사장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이 꽃폈던 ‘서울의 봄’(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부터 1980년 5월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이전까지의 기간.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말로,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처럼, 짧은 기간이나마 조 사장의 임기 동안 ‘KBS의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조 사장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KBS 구성원들은 “‘KBS의 봄’은 없었다”고 말한다.

▲ 조대현 KBS사장. ⓒ뉴스1

물론 처음부터 ‘봄’이 올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조 사장은 취임 당시 “공정성 시비를 확실히 끝내겠다”며 KBS의 신뢰회복을 자신했고, 프로그램 콘텐츠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KBS 구성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 사장이 ‘제2의 길환영’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기획제작국의 한 PD는 “길환영 전 사장 당시 KBS가 워낙 망가졌기 때문에 최소한의 복원 정도는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며 “지난 1년만이라도 보도 독립성, 프로그램 자율성이 보장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실망감은 특히 보도 부문에서 많이 나타났다.

한 기자는 “조 사장이 길 전 사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건 이승만 일본 망명설 보도 이후의 보복성 인사조치나 국정원 해킹 건 보도행태 등만 보아도 알 수 있다”며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이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기자도 “보도독립성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전 사장이 해임됐기 때문에 조 사장에 대한 상대적 기대감이 있었지만 최근 몇 개월간 조 사장의 행보를 보면 도대체 (길 전 사장과)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게 구성원의 전반적인 정서”라며 “가장 최근에 문제가 된 국정원 해킹 사건만 해도 작은 단신으로도 제대로 다루지 않다가 시간이 흘러서야 정부 해명을 중점에 두고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도 독립성이나 공정성에 대해서는 전혀 가치를 두고 있지 않은 행태”라며 “기대감이 있었던 만큼 실망이 더 크다”라고 평가했다.

보도독립성 만큼이나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개입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고, 프로그램 다양성도 위축되었다는 지적이다.

▲ 조대현 KBS 사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 ⓒ뉴스1

기획제작국의 한 PD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인호 이사장의 개입 논란이 계속 있어왔는데, 조 사장은 여기에 열심히 ‘입맛 맞추기’로 일관해왔다”며 “기대를 걸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복 70년 미래 30년’이라는 슬로건을 설정해 놓고 모든 프로그램을 여기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이런 경향이 프로그램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획제작국의 또 다른 PD는 “1월 1일 대개편 계획이 발표된 시점부터 온갖 특집 방송과 기획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주제가 광복70년, 경제, 통일 등의 카테고리 안에 한정돼 있었다”라며 “미래지향적이지도 않은데다가 ‘개발시대 향수를 팔아먹는’ 특정 주제들을 다룬 특집 방송에 인력이 대거 투입되면서 PD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커리어도 많이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PD들이 의욕을 많이 잃었고 프로그램 다양성도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생각한다”며 “아젠다 세팅이나 특집 기획 등은 사실 내부의 활발한 토론과 민주적 결정을 통해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같은 비판은 광복 70년 특집으로 방영중인 국민대합창 프로젝트 <나는 대한민국>에 특히 쏟아졌다. 해당 프로그램에 사내 역량을 총동원해 제작 자율성과 프로그램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제작국의 PD는 “한 쪽으로 치우친 주제의 프로그램을 물량 공세 하듯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에 투입할 역량을 다른 곳에 쓰면 좋은 프로그램들이 훨씬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 국회의원들이 출연한 KBS 광복 70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7월 18일 방영분. ⓒKBS

시사 프로그램 신설 무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KBS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시사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된다는 내부의 요구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취임 당시 “공영방송의 역할을 회복하고 프로그램을 개혁하겠다”던 조 사장의 선언은 공염불이었다는 평가다.

교양국의 한 PD는 “2008년부터 시사 프로그램이 축소되면서 현재 KBS 제작국의 시사보도기능은 최소화된 상태”라며 “공영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시사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를 PD들이 끊임없이 해왔지만 단 한발자국도 진척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교양국의 또 다른 PD도 “2008년 폐지된 <생방송 시사투나잇> 정도의 퀄리티까지는 생각지도 않지만,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할 시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신설되길 바랐다”며 “계속 미루고 핑계대기로 일관하다 결국 아직까지도 신설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솔직히 이제는 기대감도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2014년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의 일환으로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섰던 KBS 구성원 9명에 중징계가 내려진 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현재 매주 월요일 오전 징계철회 촉구 시위를 벌이는 한편 조대현 사장 반대 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 지난 해 5월 KBS 구성원들이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다. ⓒ뉴스1

한 기자는 “실망스러웠던 조 사장 1년의 화룡점정이 바로 9명에 대한 중징계”라며 “망가져가는 KBS를 살리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린다는 건 조 사장이 길 전 사장과 다르지 않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KBS 구성원들은 이 같은 비판 지점들이 조 사장이 사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결과라고 분석했다.

기획제작국의 한 PD는 “그래도 초반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노력이 보였었는데, 대개편이 실패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연임을 위한 ‘눈치 보기’가 심해진 것 같다”며 “정치적 의도가 보이는 치우친 주제들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노조에 징계를 내리는 사태가 일어나는 배경에는 연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양국의 한 PD도 “조 사장은 처음부터 연임되기 힘들 거란 평가가 많았다”며 “그래서 조 사장이 욕심 없이 짧은 임기 동안이라도 잃어버린 KBS의 명예를 다시 찾는 기간으로 생각하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구성원 사이에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그가 보여준 것은 연임을 위한 저열한 방송사유화였다”라며 “연임을 위해선 방송의 공정성이나 공영성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 PD는 칼럼을 통해 지금의 상황이 “뼈아프고 억울하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아이들의 죽음, 유가족의 분노, KBS 정상화를 향한 구성원들의 열망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년에 대한 착잡한 심정을 토로하던 한 PD는 “사장 자리에만 올라가면 그렇게 되는 건지,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라며 “단 1년만이라도 제작 자율성이 꽃피기를 기대했는데, 결국 ‘KBS의 봄’은 없었고 실망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KBS의 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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