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를 바라보는 시사프로그램의 자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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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4편의 방송 통해 ‘여성 문제’ 다룬 ‘PD수첩’의 의미와 한계

MBC <PD수첩>은 이슈의 ‘리트머스지’다. <PD수첩>은 그동안 방송 당시 가장 최신의, 논란이 된 이슈를 발빠르게 다뤄왔다. 지난 6월 16일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을 시작으로, 7월 21일 ‘보복성 포르노 피해자, 나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 7월 28일 ‘직장 상사가 당신을 성추행한다면?’, 8월 4일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등 최근 두 달 사이 네 편의 방송을 통해 여성문제를 담아냈다. 시사프로그램이 일련의 시리즈처럼 연달아 여성 문제를 논한 적은 없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졌거나 문제의 심각성이 높아져 결국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주목할 만한 일이다.

<PD수첩>의 진단처럼 2015년은 여성주의(페미니즘)에 있어서 뜻 깊은 해다. 물론 한 해 동안 여성혐오에 대한 발언과 사건이 끊이질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이도, 무뇌아적인 여성이 싫다고 자랑스럽게 공언한 남성 평론가도 있었다. 개그맨은 설치는 여자를 비난하는 혐오발언을 마구 뱉어냈고 남성 진보논객의 데이트폭력 가해사실은 여성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 여성들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선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일부 여성들은 지금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에서 그동안 남성들이 행태를 ‘미러링’하고 있다.

▲ 방송 중 직장 내 성추행 피해 여성이 어렵게 인터뷰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MBC

여성은 나오는데 여성이 없다?

브라운관 속 여성은 24시간 365일 등장하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미디어에서도 여전히 타자이며 소수자다. 오히려 언론이 앞장서 여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성 역할 고정관념과 가부장제를 고착화시켜온 사례가 많았다. 방송은 너무나 쉽게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을 권하고 ‘아몰랑’ ‘김치녀’와 같은 여성비하 단어를 전혀 걸러내지 않는다.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착하다’는 말로 상품화하는 행태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정치학자 피파 노리스(Pippa Norris)는 “언론이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소수집단에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해야한다”고 미디어의 다원성을 강조한다. 미디어가 사회에 공헌하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 외에도 다른 가치들을 수행해야 한다. 다양성은 그 중 핵심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이 연달아 여성 문제를 다루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질 만큼 기존의 미디어는 여성문제와 여성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다뤄오지 않았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이를 고려했든 고려치 않았든 여성 문제를 다룬 방송이 새삼 반가웠던 이유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 ‘보복성 포르노 피해자, 나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 ‘직장 상사가 당신을 성추행한다면?’ 세 편 모두 여성이 처한 현재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데이트 폭력’에서는 애인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복성 포르노’ 편에서는 연예인 H씨의 사례를 시작으로 남성들의 몰래카메라 촬영과 유포를 다뤘다. ‘직장 내 성추행’은 학교, 병원, 제약회사 등에서 직급이 높은 남성들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례가 소개됐다.

일련의 세 편은 피해 사실만을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은 피해자가 혼자 짊어질 2차 피해, 아물지 않는 상처에 대해 조명했다. 보복성이든, 무차별적 몰래카메라든 포르노 유출 피해여성들은 후유증으로 정신과 상담 혹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얼굴과 신상이 세상에 알려질까 불안해했다.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피해 직후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고 느낀 순간은 직장을 잃을 때, 동료들로부터 거짓말쟁이로 오인 받을 때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각각의 사건은 조금씩 결이 다른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 모두 심한 경우에는 직장을 잃고 가정이 붕괴되는,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보호해주진 않는다. 심지어 법마저도. 포르노 유출, 데이트 폭력,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은 제각기 피해 내용도, 가해 동기도 다르지만 피해 여성들은 피해 사실을 용기 내어 고발해도 사회에서 외면당하거나 스스로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피해자 인권과 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피해자가 안으로 숨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다. 심지어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해버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 5일 방송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의 한 장면. 술자리에서 일반인 남성들을 인터뷰했다. ⓒMBC

‘피해 여성’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왜 항상 미디어 속 여성은 피해자로 존재할 때만 주체가 되는 것일까. <PD수첩>이 연달아 내보낸 세 편의 방송에서도 여성은 피해자 혹은 법의 테두리 밖 타자로 묘사된다. 피해자화는 흔히 타자화를 전제한다는 게 문제인데 ‘피해 여성은 피해자’라는 단순한 논의에 머무르면 여성은 남성 주체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고 만다. 남성의 입장에서 피해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힘없이 당하고 있는 희생자일 뿐이다. 여성은 늘 모자이크 된 모습으로 자신의 피해사실과 억울함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방송에선 왜 특정 집단의 성(여기서는 여성)이 차별과 폭력의 문제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식의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자칫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닌 수동적이고 나약한 약자로 여길 수 있다. 결국 미디어가 사회에 이미 고착된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성 고정관념을 오히려 굳히는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 4일 방송된 ‘2030, 왜 등을 돌렸나’ 편에서도 여성은 없었다. 이날 방송의 주제는 ‘여성혐오’였지만 정작 여성들의 이야기는 담지 못했다. 제작진은 인터넷 채팅방을 열어 ‘김치녀’라는 단어에 대한 20~30대 남성들의 의견을 묻거나 술자리에서 일반인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듣는 데만 방송의 반 이상을 할애했다. 급기야는 남성이 여성에게 길에서 명품백을 선물하며 프러포즈하는 상황극을 연출해 지나가는 일반인 남녀의 반응을 보여준다. ‘계산은 항상 남자의 몫’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나운서와 심리전문가가 소개팅을 몰래카메라로 지켜보는 등 이날 방송은 예능프로그램 모음집 같았다. 과거 자신의 노래 가사나 칼럼에 ‘여성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던 남성이 인터뷰이로 나왔을 때 여성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시사 프로그램이 단순히 법적 장치와 제도의 미비함을 꼬집거나 사회적 인식 부족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언제나 ‘뻔한 결론’으로 끝나는 것도 문제다. ‘주체로서의 여성’의 모습을 좀 더 보여주기 위해 미디어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방송이 일반인 여성들의 이야기와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제대로 듣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단순히 여성이 피해를 받고 있는 식의 문제 지적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진행자가 “우리는 모든 혐오와 차별에 대해 반대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복잡하고 심각한 사안을 일단락 시키는 건 당사자인 여성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 아니 위안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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