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 공영방송 이사 논란 키우는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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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총·대선 앞두고 전례 없는 ‘3연임’ 시도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9기 현 이사회의 임기가 오는 8일 끝난다. 하지만 임기만료를 사흘 앞둔 5일 현재까지도 차기 이사회 구성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방문진 이사 선임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이달 6일 전체회의를 열어 방문진과 오는 31일 현 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는 KBS 이사회의 차기 이사 선임·추천을 위한 의결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가 열릴 수 있을지, 열리더라도 ‘합의제’ 정신에 따른 의결을 이뤄낼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당초 지난 7월 31일 예정했던 의결을 미뤄지게 한 이유인 특정인의 전례 없는 공영방송 이사 ‘3연임’(9년)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합의제 원칙’ 강조하던 방통위원장은…

지난 7월 30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추천 안건에 대한 의결을 위해 예정했던 전체회의 하루 전이었던 이날 야권 추천의 두 방통위 상임위원(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방통위 내부의 최소한의 인선 기준도 없는 ‘정파적 나눠먹기’ 인사는 안 된다”고 밝혔다.

내부의 인선 기준 없이 방문진과 KBS 이사 선임·추천 관련 의결에 나설 경우, 그동안 방송계 안팎에서 방송 자유 침해의 핵심 요소로 비판 받아왔던 여야 추천 비율 7대 4(KBS이사회), 6대 3(방문진) 구조의 ‘정파적 나눠먹기’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의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가 불균형한 구성비 속 여야 정파를 대리하는, 추천권자의 이해에 복무하는 모양새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4월 8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두 상임위원은 특히 “특정인의 3연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에 대한 원칙이 세워지지 않을 경우 표결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추천 안건 의결 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선 기준의 제일 첫 머리에 두 상임위원은 ‘3연임’ 금지를 올려두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두 상임위원은 7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정인의 3연임은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이사직 독점으로 이사회 구성의 다양함을 해치고,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해야 한다. 비상임 이사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권력을 대리하는 게 아닌, 사회의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저마다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이들을 모아 공영방송 이사라는 역할을 맡기고 있는 현행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방송 자유와 독립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상임의 지위를 두고 있는데, 특정인에게 무려 10년 가까이 이사직을 맡길 경우 사실상 붙박이로 공영방송 이사를 하라고 하는 모양새가 된다. 추천 정파에 대한 충성 혹은 자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인 방송사의 경영진과의 유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이유다.

두 상임위원이 ‘3연임’ 금지 원칙을 말하며 이 부분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일주일가량 회의가 미뤄지긴 했지만, 회의 예정일을 하루 앞둔 5일 현재까지도 의결을 위한 협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취임 당시부터 ‘합의제 이사회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던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타협과 설득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방통위 내부의 전언이다.

때문에 방통위 안팎에선 ‘3연임’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후보를 ‘선택하지 않을’ 권한이 방통위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현행법에선 KBS·방문진 이사 추천·선임 권한이 방통위에 있지만, 현실에선 청와대와 여야 지도부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을 방통위에서 대부분 받아 추천·선임 작업을 완료한다. 대부분 받는다는 건, 방통위 내부에서 협상할 여지가 그래도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청와대와 여야 원내지도부에서 이 정도 인물이면 좋겠다는, 단순 추천을 했을 경우다.

하지만 야권 추천의 두 상임위원이 ‘3연임’ 불가 원칙을 내세운 상황에서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3인의 여권 추천 상임위원들은 협의를 위한 움직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결국 현재 ‘3연임’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 중 방통위 내부에서의 협상이 불가능한, 즉 청와대와 여야의 단순 추천이 아닌 ‘낙점’의 대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베’ 논리 퍼다 나른 ‘3연임’ 유력 후보, “사회 통합” 방송의 역할은?

그렇다면 현재 전례 없는 ‘3연임’ 가능성이 나오는 후보자들은 누구일까.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은 KBS와 방문진 이사에 각각 지원한 차기환, 김광동 현 방문진 이사다. 이중에서 특히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차기환 이사다. 8기(2009년)와 9기(2012년) 방문진 이사를 지낸 차 이사는 현재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저격수를 자청하고 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차 이사는 당시 현직 서울시장으로 재선을 위해 뛰고 있던 박원순 시장에 향한 ‘일베’의 무상급식 관련 의혹부터 박 시장 부인의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 글들을 퍼다 날랐다. 또한 판사 출신 변호사인 차 이사는 박원순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에 대한 병역 의혹을 제기한 양승오 박사에 대한 변론을 맡고 있는데, 최근까지도 재판 관련 내용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며 관련 의혹을 전파하고 있다.

현 정부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주제인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비판에도 차 이사는 앞장서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7월 차 이사는 자신의 SNS에 “일부 유가족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며 “전원 의사자 인정(의사자 개념에 맞지 않는다), 피해자 형제자매까지 특례입학 인정, 유가족 평생 생활 지원 등을 요구하는데…진상규명에 동의하는 여론을 (유가족들이) 저 무리한 요구에 동의하는 걸로 확장·해석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또 8월에도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제1야당이 그들 요구에 따라 여당과 한 합의를 번복해 수사권·기소권을 요구하는 건 자책골, 이제부터 세월호는 야당에게 더 악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적었다. 여권에서 차 변호사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 조사위원으로 임명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로 “부적격”을 주장하며 임명 철회를 요구한 이유다.

차기환 이사의 ‘3연임’ 가능성이 유력하게 나오는 현 상황에 대해 방송계의 한 인사는 이런 위기의식을 전했다. “‘3연임’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차기환·김광동 이사 외에도 현재 연임설이 제기되고 있는 현 방문진·KBS 이사들의 상당수가 경영진 편에서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는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극단의 이념을 앞세우는 ‘일베’의 논리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와 정적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여 왔던 인사를 세 차례나, 그것도 공영방송의 대표 격인 KBS를 관리·감독하는 위치에 앉힐 경우 사회의 갈등 해소와 통합에 대한 방송의 역할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총·대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더욱 그렇다. 선거를 사회 분열의 장으로 만들고, 방송을 그 선봉에 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이 우려하는 지점 역시 이와 맞닿아 있는데, 그는 지난 7월 31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따져 물었다. “1988년 KBS 이사회와 방문진 출범 이후 37년 동안 이사를 연임시킨 경우는 있어도 3연임 시킨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현 정부 와서 이런 불문율을 깨려 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훼손하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등 공영방송 이사의 본분을 망각한 인사들을 다시 연임시키려 한다. 이념적·정치적 편향성으로 무장한 인사들을 이사로 임명해 공영방송을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공영방송을 장악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차기 KBS·방문진 이사회 구성을 앞두고 언론·시민단체는 법적 근거도 없이 ‘여야 정파 나눠먹기’로 공영방송 이사들을 추천·선임해왔던 관례를 깨기 위해 그동안 정당에 후보자를 제안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공동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들을 추려 방통위에 직접 후보 추천을 했다. 그리고 야권 추천의 두 방통위 상임위원도 ‘여야 정파 나눠먹기’ 관례의 종식을 주장하며 방통위 내부의 인사 기준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물론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당장 ‘여야 정파 나눠먹기’ 관례의 끝을 선언하긴 힘들다.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나눠먹기‘ 관례를 끊어내지 못하더라도 방통위 내부에서조차 “정상의 비정상화”라는 비판이 나오는 ‘3연임’을 ‘전례’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존재한다. 수의 우위를 앞세운 일방주의가 아닌, 양측의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한 토론의 자세를 기본으로 하는 ‘합의제 위원회의 원칙’만 지키면 된다. 그러나 그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어떤 이들에겐 가장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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