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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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 등을 통해 본 라디오의 현재

최근 MBC FM 라디오 <여성시대>가 이례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올해 방송 40주년을 맞은 <여성시대>가 개그맨 서경석을 새 DJ로 영입했기 때문. 서경석은 무려 17년간 <여성시대>의 안방마님을 지낸 가수 양희은 씨와 진행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연출을 맡은 이한재 PD는 “(서경석을 두고) 신구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며 섭외 이유를 밝혔다. 양희은 씨도 “평소 서경석이란 사람에 대해 선입견이 없었지만 아직 장단점을 잘 몰라 차차 알아가고자 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오랜 시간 청취자 곁을 지켜온 <여성시대>가 변화를 꾀한 것이다.

▲ MBC 라디오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 홈페이지 ⓒMBC

사실 라디오의 위기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텔레비전이 등장한 20세기부터 라디오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하고,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 플랫폼이 일상화되면서 라디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라디오 청취자 10명 중 3명이 매일 라디오를 듣는다고 답할 정도로 라디오의 매체력이 존재했다. 또한 광고 영향력 측면에서도 인터넷, 케이블TV보다 앞섰지만 불과 몇 년 사이 라디오는 거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연합뉴스>, ‘라디오 '무시할 수 없는 매체파워’ 2009.05.10.)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뉴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라디오의 위기도 본격화됐다. 라디오는 매체 특성상 청취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그러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발 빠르게 적응하는 데 방송사 내외부적 한계가 뒤따랐다. 청취자들은 방송사별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는 ‘콩’(KBS), ‘미니’(MBC), ‘고릴라’(SBS), ‘레인보우’(CBS) 등 모바일 앱을 통해 어디서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자체로 화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모바일 열풍의 주역은 상대적으로 표현 수위가 자유로운 팟캐스트에게 돌아갔다. 일례로 현직 SBS 라디오 PD들이 진행한 영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풍문으로 들었소>가 인기를 끌자 FM 라디오 <씨네타운 S>로 정규 편성되는 등 흐름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은 ‘라디오의 위기’를 다시 호명하고 있다. 그러나 ‘라디오만’의 속성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즉,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라디오는 팟캐스트 등 모바일 플랫폼이 갖지 못한 ‘아날로그’와 ‘감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라디오를 다른 미디어로 대체할 수 없다는 의견(11년 33.4%→15년 33.3%)이 과거와 큰 차이가 없는 것(시장조사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 매체인식조사, 2015.06.05.)을 보면, 팟캐스트의 열풍이 불더라도 라디오가 청취자와 쌓아온 공감대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유독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 많다. 그 뒤에는 든든한 청취자들이 존재한다. KBS 라디오 <볼륨을 높여요>,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두시의 데이트>, SBS 라디오<최화정의 파워타임> 등은 오랜 시간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두시 탈출 컬투쇼>(SBS)는 지난 2006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9주년을 맞았다. 방청객과 함께하는 공개 방송 형식을 최초로 도입해 스튜디오를 다녀간 방청객만 약 10만명에 이르는 등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 SBS 라디오 '씨네타운S' ⓒSBS

25년간 꾸준히 자리를 지킨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마니아층의 지지가 대단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타 라디오 프로그램과 달리 편성 시간대가 바뀌거나 진행자가 교체된 적이 없었는데 현재 DJ 배철수의 25주년 휴가 기념으로 스페셜 DJ들이 자청해 방송을 이어나가고 있어 청취자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사실 청취자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종사자들도 ‘배캠’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매일 같은 시간 청취자를 찾아간다는 건 라디오만의 힘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 윤종신, 윤도현, 김구라, 심은경, 이윤석, 배칠수를 비롯해 이번 주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을 비롯해 배우 이서진과 가수 김윤아, 김종진 등이 스페셜 DJ 바통을 잇고 있다.

지난달 20일 좀처럼 대중매체에서 만나기 힘든 배우 김혜수가 ‘배캠’ DJ로 나섰다. 그는 생방송 클로징 후 미처 마이크를 끄지 않고 제작진에게 “너무 일찍 끝났나요”라고 묻는 실수를 했지만 청취자들은 오히려 “라디오의 묘미”라는 반응을 보였다.

라디오의 힘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켜온 라디오 프로그램일수록 청취자들은 DJ와 더 소통하고자 하고, 청취자 간의 공감대까지 넓혀간다. <여성시대>의 양희은 씨도 “하루의 시작이자 일상이자 오랜 세월, 무난하게 해온 게 여태껏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 같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듯 소소한 일상을 파고드는 라디오는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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