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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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선PD의 행복한 오타쿠] ②열심히 일만 한다? 그것은 족쇄를 찬 ‘노예’

아직 많지도 않은 나이지만 내 동기들 중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고급장교이던 친구는 나와 회식을 끝내고 돌아가 숙소에서 심장이 멎었으며, 공무원이던 누구는 장가도 못간 놈이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택시에 변을 당했다. 또 어떤 친구는 음주운전으로, 또 누구는 부부싸움 끝에 홧김에 목숨을 버렸다. 죽어서 아니될 타이밍에 터무니없는 이유로 다들 죽어버렸다.

친한 패션디자이너 최복호 선생이 최근에 강연을 하나 했는데 무대 위로 목관을 끌고 올라왔다. 그 자리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 나이 지긋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강의를 하는데, 이른바 ‘저 트렌디한 최후의 패션! 나무코트를 보라!’며 인생의 유항함에 대해 얘기하였다. 삶의 자세와 덕목을 강조함에 있어, 인생이 너무나 짧아 누구나 언제 저 목관안에 들어가 누울지는 모르는 일이며 결국은 혼자 놀 줄 알아야 나이들어 우울증에도 맞설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조용히 자연과 벗하고, 좋은 취미를 가지라는 얘기였다. 살아있을 때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말짱 무효란 얘기다.

▲ ⓒpixabay

혼자 놀 줄 모르고 늘 떼지어 다니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인생이 혼자라는 사실을 절감했을 때 견디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누구나 예고없이 나무코트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니 우물쭈물 하지말고 냉큼 하고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것이며,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라고 설득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순간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 인생에 미루어 둘 행복이 어디있으랴.

뭐든 만고풍상을 겪어야 제 맛을 내는 모양이다. 나는 새로운 하나의 취미에 진입하기 직전 항상 몸이 아팠다. B형 만성활동성 간염, 경추 디스크와 후종인대골화증 등 제법 굵직한 병증들이 태풍처럼 지나갔고 나는 각종 약물과 의사친구들의 호의에 힘입어 건강을 되찾았다. 지금은 목뼈에 끼워둔 티타늄 한조각 외에는 아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병마와 싸우며 눈물겨운 투쟁을 했다거나 젊은 날을 눈물로 보낸 끝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격을 갖게 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학 때 간염으로 2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서 놀았다는 것과 회사생활도중 목뼈에 자라나는 화석화된 인대를 끊어내는 수술을 받느라 몇 주를 또 쉬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평생 신경절이 눌려 목과 어깨에 근육통을 안고 가야한다는 조금의 불편이 있다. 간혹 많이 아플 때 먹는 진통제와도 제법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평생 약물을 끊으면 안된다는 게 조금 귀찮을 뿐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21살의 청춘에게 6개월간의 입원생활은 아주 고역이었고, 병실위의 하얀 회벽도 우울증이 걸릴 만큼 지겨웠는데, 그 모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는 데는 나의 취미와 세월의 도움이 컸다. 충분히 아팠지만 힘겨운 투병의 동반자는 역시 취미생활이었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클래식 음악을 30년 이상 들으며 심취해 온 음악마니아이며 오디오 파일이자 오디오평론가이다. 게다가 사진도 고등학교 때부터 심취해 국내 사진콘테스트에도 여러 번 입상했고 여러 번 단체전을 가졌다. 거기다 15년 이상 즐겨온 커피마니아이며 바다를 사랑하는 스쿠버다이버이다. 격렬한 스포츠를 좋아해 총각 때는 복싱도 1년 배웠다. 무엇 하나에 빠지면 모두 10년 이상을 열심히 했다. 너무 좋아서 깊이 빠져들었고 하루종일 그 생각만 했다. 병증이 자못 심각했지만 너무 재미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다 큰 어른에게도 무슨 짓을 하느라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를 행위에 빠지는 게 필요하다. 이른바 생산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창조적 게으름’이다.

우리는 자랄 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어릴 때‘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항상 어른에게서 퍽하고 뒷통수를 얻어맞았다.‘뭐긴 뭐야 잘 살기 위해서지 이놈아!’하면서.

▲ ⓒpixabay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들 퇴근도 안하고 사무실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일만 하는 어른들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다. 세상의 엄마들은 학원갔다 오는 아이들을 픽업하려고 자정이 다된 시간에 잠도 못자고 학원앞에 도열한다. 그들이 정말 행복한지, 즐겁기는 한건지 도통 모르겠다.

나의 취미타령 끝에는 “좋아하는 것만 하고 어떻게 살아요!”라거나 “당신은 팔자가 좋아서”라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인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이 나를 도와준다.

▲ 영국인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의 책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그는 “인간은 하루 4시간만 밥벌이를 위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무언가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8시간은 커녕 야근과 주말특근까지 전쟁처럼 치러내야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러셀의 도움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러셀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윤리’는 족쇄를 찬 노예의 것이지, 문명화된 사회를 사는 자유인의 것이 아니다. 진정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여가’이며 그 여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유인이냐 아니냐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러셀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찬양하는 창조적 게으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점은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게으름을 실천’하는 베짱이의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고, 자기를 위해 자유를 주는 시간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먹기 살기위해, 자식과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예로 살아야 하는 나와 이 땅의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참다운 자유’다. 무엇이 진정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 필자는 대구MBC PD로 책도 쓰면서 음반과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취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책' 남자의 취미'에 이어 얼마 전에는 책 '여자의 취미'를 출간했다. 플로리다 주립대(F.S.U)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독도>로 국제상 2관왕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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