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방문진 이사들, 공영방송의 ‘안티테제’로 기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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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박근혜 대통령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장악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방송장악은)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 약속드릴 수 있다.”

2013년 3월 4일, 취임 8일째였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독임제 행정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에 방송 관련 규제‧정책 권한을 넘길 경우 정부의 방송장악 상황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야당이 반대하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방송장악에 대한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대통령이 직접 밝히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째인 지금, 이 말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언론인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선임 결과를 두고 언론노조가 보인 반응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방통위가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진 추천과 선임을 완료한 지난 13일 언론노조에서 발표한 성명의 일부는 이렇다.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된 독립 기구의 장(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스스로 방통위의 독립성을 어기고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했다. 권력에 굴종했다.”

방통위가 극우 성향 사이트인 ‘일베’의 글을 퍼 나르고 친박(親朴)이 아닌 이들을 ‘좌파’로 몰아붙이는 등 극단으로 치우친 잣대로 사회를 양분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을 대거 공영방송 이사로 인선했다는 문제의식이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3일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차기 이사회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인호 KBS 이사장(연임)과 차기환 방문진 이사(차기 KBS 이사·3연임), 김원배 방문진 이사(연임) ⓒ뉴스1, TV조선 화면캡쳐(차기환 이사)

방송법에서 규정한 방송의 공적책임 구현 가능할까

권력이 방송‧언론을 통제하길 원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권력의 의중을 헤아려 필요한 순간 돌격대처럼 돌진할 수 있는 인물들을 의사결정권자로 앉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경우 이사회가 대상이 된다. 해당 방송의 경영‧인사 등에 대한 권한은 사장에게 있지만, 그 사장을 임명하는 건 이사회다. 임기를 채우거나 연장하는 게 중요한 사장은 이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사회의 절대 다수는 그들을 임명(추천)한 정권 편에 서있다. 물론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의 근거가 되는 법(방송법 제46조, 방문진법 제1조)에서는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고 적고 있지만, 현실에선 법에서 정한 의무와 역할보다 임명(추천)권자의 의중의 힘이 더 세다.

그리고 지난 13일 방통위에서 추천‧선임한 KBS와 방문진 이사들의 상당수가 이런 현실에 지나칠 만큼 부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 공적책무 등을 수행하는 데 있어 이미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했던 인물들이 무더기로 등장, 혹은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먼저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방송(언론)의 본령에 대한 부분으로, 대중이 과연 방송을 신뢰해도 좋을 지에 대한 판단하는 근거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번에 방통위에서 다시 한 번 KBS 이사에 추천한 이인호 현 KBS 이사장의 경우 KBS의 프로그램과 보도에 이미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라이트 역사학자인 이 이사장은 지난해 KBS 이사장직을 맡은 직후부터 ‘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니 논평‧비평을 해선 안 된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이사회는 KBS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발언으로 방송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이 이사장은 실제로 지난 2월 방송된 KBS 역사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를 두고 “북한의 입장에서 쓴 듯한 부분이 있다”고 하며 제작진을 향한 ‘우매하다’는 발언 등으로 논란을 불렀다. 또 지난 6월엔 KBS <뉴스9>의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요청’ 보도를 문제 삼으며 일방적으로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방송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고 내부의 반발을 샀다.

이미 두 차례 방문진 이사를 지냈음에도 또 다시 KBS 이사에 추천된 차기환 이사 역시 보도 개입 의지를 드러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 이사는 지난 18일 매체비평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KBS 이사에 지원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KBS 보도의 문제를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차 이사는 “과거 방문진에 들어가서 보니 MBC에서 데스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KBS에서도 최근 그런 문제가 있었다”며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요청’ 보도를 거론했다.

이번에 새롭게 KBS 이사에 추천된 조우석 전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는 2014년 5월 19일 <미디어펜>에 기고한 칼럼에서 “공영방송을 포함해 언론사 사장과 이사회는 뉴스 편집 편성권의 최종 책임자라는 게 상식”이라며 “공정언론, 뉴스제작의 독립성이라는 구호의 구린 뒷면, 음험한 정치적 속내를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 방송법은 이사회의 보도 개입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방송법 제4조는 ①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③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해야 한다 ④종합편성‧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방송 제작과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라는 원칙과 함께, 이를 구현하기 위해 사장으로 하여금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해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하면서 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하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70주년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청와대 제공)

“정권의 주구” 비판받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사회, 공영방송의 미래는?

방송법 제5조(방송의 공적 책임)는 사회통합을 위한 방송의 역할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2항(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해야 하며 지역‧세대‧계층‧성별 간의 갈등을 조장해선 안 된다)에서 이런 부분이 두드러지는데, 이번에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선임된 인사들이 보인 그간의 행적을 볼 때 과연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환 이사의 경우 극우 성향 사이트인 ‘일베’의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퍼 나르고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집요하게 공세를 펴는 등 정파적인 모습을 앞서 방문진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또 벌써 세 번째 방문진 이사에 선임된 김광동 이사와 방문진 감사에서 이사로 역할만 바꾼 고영주 이사, 그리고 KBS 이사에 추천된 조우석씨 등은 세월호 유족을 “떼쓰는 존재”로 폄훼하거나 세월호로 인한 정부 비판 여론 확산을 “제2의 광우병 파동”이라고 일컫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사 추천‧선임과 관련한 이견으로 방통위의 파행이 이어지고 있을 당시 고삼석 방통위원이 자신의 SNS 계정에 “이념적‧정치적 편향성으로 무장한 인사들을 이사로 임명해 공영방송을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것인가”(7월 31일)라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한 방송법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는 방송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 정권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성(9항 ‘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각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KBS 이사로 추천된 변석찬 전 KBS라디오센터장의 경우 2013년 봄 개편을 앞두고 KBS에서 친박 성향의 정치평론가와 현재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의 처남을 라디오 진행자로 기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당시 20년차 이상 라디오 PD들로부터 보직해임 요구를 받았던 인물이며, 김광동 방문진 이사의 경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을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논란을 불렀다. 일련의 인선을 두고 해당 방송사의 노조들과 언론‧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방통위가 공영성과 공정성에 대한 고려보다 오로지 ‘방송 장악’ 차원에서 (이사 선임‧추천에) 접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8월 13일 언론노조 MBC본부 성명 발췌)고 반발한 이유다.

그런데 일련의 우려를 완전히 없앨 순 없어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진 않을 수 있도록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 언론학자들이, 그리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이 있다.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다. 지난 13일 ‘합의제’ 원칙이 무너진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선임을 마무리한 직후 야권 추천 방통위원들이 최우선 과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대선 공약을 하반기 국정과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직전 발표한 새누리당 대선 정책공약집을 통해 “방송은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지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약속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여야는 국회 안에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 시 특별다수제(재적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 도입과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위한 이사 추천위원회 등의 도입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일련의 방안들은 박 대통령의 ‘모르쇠’와 여당의 거부, 당장의 현안들에 밀리며 말 그대로 언론계 “주변”에서나 강조하는 의제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방송계 안팎에서 “권력의 하수인”(8월 13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논평), “KBS와 MBC를 정권의 의지로 조종하는 데 앞장선 주구들”(8월 14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논평) 등의 평가를 내놓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구성됐고, 구성을 앞두고 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의무를 부정하는, 마치 안티테제(Antithese)처럼 기능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는 이사회는 공영방송을, 한국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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