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스타일 프로그램, 그 불편한 동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작기] KBS ‘어 스타일 포유’

▲ KBS '어 스타일 포유' ⓒKBS

<KBS PD협회보>에 두 번째로 프로그램 제작기를 쓰게 되었다. 2년 전, 첫 제작기는 가까스로 휴가를 간 안면도의 어느 펜션에서 맥주 여덟 캔을 비우고 나서야 첫 줄을 쓸 수 있었다. 이번 제작기도 몇날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가, 팀 워크숍을 떠나는 차 안에서 황망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이차호프’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듯 제작후기가 술술 풀리지 않는 이유는, 매번의 프로그램 런칭이 그러했지만, 특히나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는 내게 크나큰 ‘재앙’ 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재앙의 발단

이 재앙의 가장 큰 원인은, “할 만큼 했다” 는 오만방자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4년 간, 4개의 파일럿 프로그램과 2개의 레귤러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운 좋은’ 경험을 하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시사예능 토크쇼, 인문학 토크쇼, 육아 리얼리티, 외국인 리얼리티, 드라마타이즈 법률 정보 쇼, 취재 매거진 프로그램... 대개는 내 것이아닌 누군가의 몇 줄짜리 기획에 붙들려 반들반들하게 한 시간짜리 방송으로 만들어 내고 나면, 이후에는 오래지않아 스러지는 프로그램을 목도하는 일이나 거칠어진 피부결만 남고는 했다.

마침 작년 하반기, 조직개편으로 탄생한 ‘콘텐츠창의센터’ 일각에서는 K-POP WAVE 기반의 <AS4U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10~30대 젊은 층을 메인 타킷으로 기획한 콘텐츠를 글로벌 웹&모바일 플랫폼에 기반해, <AS4U>라는 콘텐츠 브랜드를 띄우고 글로벌 수익모델을 구축한다는 기조였다. 이미 외부 펀딩으로 시즌 2, 3을 제작한 <어 송 포유>는 유튜브와 중국 및 미주 등 해외 웹 플랫폼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K-POP 뒤를 잇는 콘텐츠는 <어 스타일 포유>. 패션/뷰티 관련 콘텐츠는 최근 중화권 시장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10~40대까지의 여성을 타깃층으로 하는 수익 사업에 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10년 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할 생각도 없었던 분야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상당히 짜릿한 유혹이었다. 물론 그 너머에 10년 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재앙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재앙의 전개
프로그램 제작은 작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국내외에서 인지도 높은 K-POP 아이돌들 (김희철, 구하라, 보라, 하니) 로 섭외를 완료했고, 외주 제작사 PD와 스타일쇼 전문 작가들로 제작진을 구성했다. 전문 케이블 채널의 스타일 쇼와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가 중요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님’이 출연해서 연예인들의 충격적인 민낯을 공개하고 눈두덩에 아이라인을 죽죽 그어대며 “참 쉽죠~?”를 연발하거나, PPL과 잘 구분도 가지 않는 화장품 랭킹쇼를 벌이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보였다. 대신, ‘패셔니스타’ 축에도 못 들어가는 ‘패션 테러리스트’ 아이돌들의 ‘무대 밖 스타일 성장기’에 초점을 두었다. 첫 회 방송의 주제였던 ‘스타일리스트 없이 일주일 보내기’부터 시작해서 매주 다른 아이템, 다른 형식의 미션을 부여하는 포맷으로 기획했다.

문제는, KBS는 ‘스타일 쇼’를하지 않는 –한 적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지상파 방송사라는 것에 있었다. 함께 제작할 내부 PD도, 예산도 없었다. 12회를 제작하는 동안 회사에서 받은 총 제작비는 1억 2000만원이었다. 편당 1000만원. 이를 제외한 전체 제작비의 80%가 넘는 금액을 협찬과 간접광고로 충당해야 하는 ‘제작진의 극한 미션’이 방송 내내 제작과 병행되었다.

하지만, KBS에서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스타일 쇼’, 게다가 방송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제작비 선투자를 받기는 녹록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판단하겠다” 중국 측 투자자도, 방송 전 제작지원을 위해 접촉했던 여러 업체들도 한결 같이 보인 반응이었다.
일요일 밤 11시 55분이라는 편성시간은 더 큰 복병이었다. 대다수의 학생과 직장인들이 다가오는 월요일의 무거운 기운을 어깨에 얹고 잠드는 시간. 아쉬울 것 없는 출연자들과 광고주의 적극적 투자를 설득하기에는 매우 ‘적극적이지 않은’ 방송 시간대였다.

게다가, 걸 그룹 아이돌 MC들이 모두 출연 중에 각자 화장품 광고 계약을 하면서, 시즌 후반 방송에서 협찬 화장품을 만질 수 있는 출연자는 남자MC인 김희철 뿐인 ‘웃픈’ 사태도 발생했다. 결국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영역을 넘어 전자제품, 식음료, 인테리어, 헬스기기 등으로 전방위적 협찬/간접광고 유치에 전력 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상했으되 이 정도일거라고까지는 미처 예상치 못한’ 재앙의 연속이었다.

천만다행이랄까. 오랜 시간 같이 활동하며 공감대를 쌓은 출연자들은 ‘케미’가 좋은 편이었다. 생기발랄한 남녀 아이돌들의 합이 만들어낸 미션 수행 리얼리티와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이 보내오는 ‘스타일 정보 영상’을 성장기라는 큰 틀에 녹여내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어느 기관에서 집계한 ‘인터넷 화제성 지수’에서는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중 7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중국 TENCENT 계열의 동영상 포털인 QQ.COM에서는 에피소드 당 평균 조회수 25만건, 유튜브 KBS WORLD 채널에서는 평균 조회수 20만 건을 기록했다. 비공식 채널로 업로드되는 영상클립들은 최다 조회수 70만 건을 넘어서고 있다. 강조하건대, 일요일 밤 11시 55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재앙의 이면
입사 이후 해본 적 없는 ‘영업’을 위해 팀장은 동창회 수첩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비즈니스 매니저는 밤 11시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작가들은 ‘광고주님’들을 위해 협찬 제안서를 3번씩 고쳐 썼고, 촬영 전날까지도 들어오는 갖가지 협찬을 어떻게 구성에 무리 없이 녹일 것인가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메인PD는 프로그램의 구성 조율보다 ‘돈 냄새가 덜 나는’ 편집과 자막을 고민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 결과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제작한 12편으로 총 6억 6000여 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간접광고 판매 단가 및 총액은 주말 예능/드라마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선이었다. 광고국에서는 <어 스타일 포유>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간접광고를 소화하는 프로그램’ 이라 리포트 하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건대, 편당 제작비는 1000만원이었다.

재앙의 근육

그렇게, 예정되었던 6개월 간의 <어 스타일 포유> 시즌1 12회 제작을 ‘완주’ 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여러차례 질문을 받았다. 왜 이 모든 ‘재앙’을 무릅쓰고, 지상파 편성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드는가?

그렇다. KBS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스타일 포유> 는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고, <어 스타일 포유>는 시즌4를 방송하고 있다.

특히, <어 스타일 포유> 시즌2는 시즌 1에서 실험했던 광고 협찬 펀딩을 넘어서, 보다 다양한 포맷의 디지털콘텐츠 및 외부 플랫폼과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논의 중이다. 이렇게, <AS4U>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왜 K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려 하는가’ 라는 질문은, ‘왜 K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가’ 라는 고민으로 돌려보려 한다. 굳이 ‘아이돌들이 옷 갈아입는’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새로운 콘텐츠와 플랫폼에 대한 KBS의 ‘지원’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KBS가 견고하게 포장을 친 온실 속 - 그러니까 KBS에서 언제든 할 수 있고, KBS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프로그램의 제작이, 언제까지 시청자들에게 통할 것이며 방송 시장에서 유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리 중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보지 않았던가.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결국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재앙’은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온실 밖에서도 자생 가능한 근육을 조금은 키워내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인물현대사>를 보면서 KBS 입성의 꿈을 키웠고 <시사투나잇>에서 방송의 지향점을 보았다고 여기고 있는 ‘시사 교양 PD’인 내가, 지금도 그 마음을 한켠에 간직한 채 <A STYLE FOR YOU> 시즌2를 준비하는 이유일 것이다.

* 이 글은 KBS PD협회보에 게재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