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광고’ 도입? 광고주가 프로그램 좌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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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 토론회…시청권·제작자율성 침해 우려

“왜 시청자를 소비자로 전락시키는가.”(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가장 큰 문제는 제작 자율성 침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하나의 회사가 (프로그램의) 모든 걸 좌우할 것이다.”(심영섭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오는 26일까지 의견을 받고 있다. 방송계를 비롯해 학계,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자본 권력에 의해 시청자의 시청권은 물론 방송제작자의 제작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와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주최로 25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협찬고지 규칙 개정 관련 토론회: 방송 프로그램에 협찬 기업 이름 붙인다?’에 참석자들도 한 목소리도 이 같은 우려를 쏟아내며 개정안을 철회하거나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와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주최로 25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협찬고지 규칙 개정 관련 토론회: 방송 프로그램에 협찬 기업 이름 붙인다?’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김경환 상지대 교수가 발제 중이다. ⓒPD저널

방통위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 ‘갤럭시S6와 함께하는 무한도전’ 가능케 하나

지난 6일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방통위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은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 개최한 전체회의에서 협찬고지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고 협찬고지 허용시간·횟수·고지 방법 등의 형식 규제를 대폭 개선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행정 예고된 개정안 중 논란이 되는 것은 제6조(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사용 허용)로,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로고를 포함한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상표 등을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 보도·시사·논평·토론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행정 예고 대로 시행되면 사실상 ‘제목광고’를 도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향후 프로그램 제목이 <갤럭시S6와 함께하는 무한도전>(MBC), <셰프콜렉션 냉장고를 부탁해>(JTBC), <고티카로 시작하는 삼시세끼>(tvN) 등으로 표기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지적이다.

방통위는 지난 7월 20일 협찬고지 허용 범위가 확대되는 내용으로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이를 협찬고지에 대한 규칙에 반영하고, 협찬고지에 대한 규제를 개선해 고품질 방송프로그램 제작 기반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이유를 들고 있지만 방송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광고주, 기업을 위한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 기반 강화보다는 광고주의 광고효과 강화, 더 나아가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입김만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 2월 28일 MBC <무한도전>에선 진행자인 유재석이 갑자기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삼성노트북에 대한 간접광고였다. ⓒMBC 화면캡쳐

‘제목광고’ 도입 시 시청자 시청권・제작자 제작자율성 침해 우려

발제자로 나선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사실상의 ‘제목광고’ 도입으로 방송광고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광고주들은 프로그램 전후 광고보다 광고 효과가 높은 ‘제목광고’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광고시장보다 투명성이 낮은 협찬시장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게 확실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을 지원을 위한다는 방통위의 취지와 달리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및 일부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의 인기 프로그램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김 교수는 협찬주명·상품명·기업표어 등의 복수 사용도 가능함에 따라 <갤럭시S6와 함께 무한도전>, <대한민국 최고 여행사 하나투어와 꽃보다 할배> 등의 제목이 등장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협찬주가 매 프로그램 단위로 바뀔 수 있어 수시로 변경되는 제목으로 인해 시청자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갤럭시S6와 함께 무한도전>이 협찬주가 바뀜에 따라 <SK텔레콤과 갤럭시S6 무한도전>, <롯데호텔에서 스타벅스 마시며 무한도전> 등으로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교수는 광고주의 지나친 입김으로 인해 제작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협찬을 매개로 광고주 내지는 기업이 원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이야기하면 제작자는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시청자 트렌드와 동떨어진 광고주 입장이 반영된 프로그램이 양산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결국 질 낮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김 교수는 “광고주나 기업이 제작자에게 직접적으로 압력이나 로비를 가할 수 있는 길을 자꾸 열어주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개선은 방송사에 마이너스”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규제를 완화하려면 시청자의 시청권을 보호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의 맥을 잡아서 해야 하는데 이와 상관없이 미래창조과학부나 방통위가 실적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연말 기관평가 때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하는, 이런 구조가 맞물려 난맥상을 낳고 있다”며 “명확한 보완책 없이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대로 된 방송광고 규제체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무분별·무원칙한 방송광고 규제 체계의 재정비 및 비대칭적인 방송광고 규제 체계 재검토 △방송법 개정을 전제하지 않는 방송광고 규제 완화 제동 △대상 프로그램 범위 재검토·프로그램 광고 1사 독점 대응 방안 마련 등 시청권 보장 범위 내에서 방송 협찬명 고지 허용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tvN <삼시세끼-정선 편>에서는 협찬사이자 간접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코카콜라의 캔커피 조지아 고티카를 출연진들이 마시는 장면이 프로그램 시작과 중간에 계속 등장한다. ⓒtvN 화면캡쳐

“하나의 기업이 프로그램의 모든 걸 좌우하게 될 것”

토론자들도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심영섭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최근 조사를 보니 기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광고주라고 한다. 광고주가 권한을 행사하면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나 제작실무자도 실제로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며 “제목광고를 하게 되면 사업자가 PPL을 할 것이고 프로그램 앞뒤로 광고를 할 것이고, 결국 하나의 회사가 모든 걸 좌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 강사는 “기업이 집행하는 광고비는 정해져 있다.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광고비를 더 늘린다? 아니다”라며 “불필요하게 광고시장을 여기저기 누더기로 만드는 개정안은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다. 여러 복합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개정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MBC PD 출신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PD 입장에서 본다면 제목은 굉장히 중요하다.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 지향점,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다른 게(제목협찬)이 들어온다? 굉장히 곤혹스럽다”며 “김태호 PD가 유지해왔던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는 물론 프로그램이 가진 강력한 아이덴티티가 있는데 이걸 허물어뜨리는 거다. 굉장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누가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기업들이 홍보 예산으로 책정해 놓은 금액은 변동이 안 되기에 단순히 이런 효과는 있을 것이다. 다른 데 쓸 돈을 <무한도전>, <1박 2일>로 옮겨오는 효과는 있을 것이지만 광고총량은 절대 늘지 않을 것”이라며 “광고 총량이 늘어나지 않음에도 이런 주장들이 계속 나오는 데에는 광고금액을 늘릴 생각은 없지만 광고 효과는 높이고 싶은 광고주의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 방송법 위배로 보여”

법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재정 변호사는 “행정규칙에 불과한 고시가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는 형국”이라며 “협찬고지 규칙을 개정하는 경위를 설명하면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사항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시행령 개정시 협찬고지와 관련한 방송법 시행령 제60조는 건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 같은 경위 설명은 아무런 합리적 이유가 없다. 형식적으로 보면 방송법은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은 물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무수히 많은 각론적 규정에서 다루고 있다”며 “통일된 해석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결과적으로 방송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협찬고지를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개정안은) 방송법에 위배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상위법에 모순된 행정규칙의 효력은 무효인데, 이를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하며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규칙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는 (행정규칙이 법률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법원의 판단조차 받지 못하고 회피하는 방식의 행정기관의 일탈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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