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때문에 축소되어야 하는 BBC의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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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영방송 위기 담론의 필연성과 인위성

공영방송 위기 담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공영방송의 당위성과 시대적 적실성에 대한 크고 작은 논쟁이 있어 왔다. 사실상 공영방송은 그것이 해당 국가의 방송을 독점할 수 없게 된 시점부터 그 존재 의의에 대한 여러 가지 도전을 받아왔던 셈이다. 최근의 공영방송 위기 담론 역시 그와 같은, 따지고 보면 퍽이나 해묵은 도전과 교란의 연장선 위에 있다. 점점 더 많은 방송 및 미디어 서비스 공급자가 점점 더 폭넓은 선택성을 제공하게 된 상황에서 여전히 공영방송은 필요하며 정당화될 수 있는가?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공영방송이라는 대단히 독특한 형태의 사회문화적 기구를 창안하여 가장 발전된 형태로 발전시켜온 주체는 누가 뭐래도 영국 그리고 BBC라 할 것이다. 다양한 선택의 시대에도 여전히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답을 던진 이들은, 공영방송이 단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소극적 기구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불편부당하고 품격을 갖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장기간에 걸친 투자를 통해 완성도 높은 지적 담론을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 기회와 문화적 고양을 제공하는 콘텐츠뿐 아니라 드라마, 코미디, 연예오락 등과 같은 장르에서도 혁신성과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적 실험과 완성도를 높이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공공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것이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데 주력한다는 미명하에 구색 갖추기 식의 저품질 서비스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정작 그 서비스의 수혜자들로 전제되는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점점 더 많은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제공받는!) 상업 서비스가 공공 서비스 영역에 침투하게 해주는 빌미를 제공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곤 한다. 영국식 공영방송이 간파했던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이 함정이었으며, 최근까지 BBC는 시장 행위자들의 간교한 폭주를 가로막는 중요한 품질 규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평가할만하다.

ⓒBBC

2000년대 이후 BBC가 걸어온 길은 정확히 그랬다. 방송 서비스 일반이 탐욕적인 유료방송의 손쉬운 먹이로만 전락하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방어막이었다. 흔히 ‘시효를 다한 낡은 기술’이라고 치부되는 지상파 방송을 통해서도 양질의 무료 다채널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BBC 주도의 ‘프리뷰’ 서비스가 증명했다. 그렇다고 흔히 시장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반론처럼 BBC의 공공 서비스가 영국 유료방송 시장은 물론 디지털 미디어 시장 일반의 자연적인 성장을 가로막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디지털 지상파 방송이 무료보편적 서비스 영역의 최소 경쟁력을 잃지 않은 채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의 일상적 선택을 받는 조건에서도 영국의 유료방송 시장은 매우 크게 성장했고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의 다양성과 품질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선두 그룹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BBC와 기타 공공 서비스 방송 진영의 잇따른 혁신은 상업적 방식만으로서는 불가능했을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다종다양한 비선형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영국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을 전반적으로 확대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시장과 공공 부문이 상호 견제를 통해 동반 성장을 하는 바람직한 형태의 진화가 이뤄졌다는 점은 시장의 실패 속에서만 소극적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공영방송이 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반증한다.

이와 같은 ‘좋은 시나리오’는 물론 BBC와 공영방송 진영에 대한 상당한 공적 지원을 통해서 가능했다. 2000년 전후부터 약 10년의 기간, 즉 영국 미디어 환경의 구조적 전환 국면에서 BBC는 물가인상률을 상회하는 수신료 재원을 보장받았으며 이를 디지털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나 BBC iPlayer 등과 같은 혁신적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의 개발과 확산에 투자했다. 게다가 고품질의 고상한 프로그램이지만 대중의 취향과 정서로부터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었던 과거의 유산을 벗고 재미와 고품질성 그리고 차별성을 비교적 잘 혼합하여 성취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이와 같은 우호적 조건 때문에 가능했다. 창의성, 혁신, 고품질성, 보편성 등 디지털 시대의 공영방송이 견지해야 할 높은 수준의 목표는 영국의 공공정책과 혁신적 공공주체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협력 관계에 의해 성취 가능했고, 이는 다시 상업적 서비스 영역의 대응 혁신을 추동하는 선순환 고리를 마련해줬다.

▲ 영국 런던에 위치한 BBC 브로드캐스팅 하우스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공적 지원’과 협력이 여타 시장 행위자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 환경을 구성했고, 그로 인해 시장의 자연스런 성장이 저해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 변동 조건에서 지난 십수년간 BBC가 이뤄낸 성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는 해도, 그것이 사회적 자원을 몰아준 결과라면, 따라서 다른 부문의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얻어진 반쪽의 성과이자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면 BBC의 성취는 기껏해야 얼룩진 영광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봄의 총선을 통해 단독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당 정부 역시 이와 같은 부정적 견해에 기초를 두어 BBC와 공영방송 정책을 다루려 한다. 이들은 BBC가 그저 그런 방송사 중 하나로 쇠락하지 않고 영국을 대표하는 핵심 미디어 서비스로서 상당한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감히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BBC가 공공 서비스의 ‘본령’을 넘어 과도한 확장 전략을 취해왔으며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그런 규모와 범위를 공적 지원에 기초하여 지속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측면에서, BBC 역시 디지털 미디어 이니셔티브 등과 같이 적지 않은 공공 재원이 동원된 거대 기획에서 부분적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다는 걸 지적하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다.

공공 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기존 담론은 “공룡은 혁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영국 정부는 “혁신을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에 축소되어야 마땅하다”는 다소 아리송한 주장에 입지를 두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몇 가지 증거로만 확증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BBC 칙허장 갱신을 위한 녹서 발간과 함께 다시금 논쟁이 점화되었고, 향후 1년간 BBC의 적정 ‘규모와 범위’를 두고 치열한 가치 투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도전과 위기는 ‘자연스러운’ 것일 뿐만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길을 찾을까, 언제나, 아니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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