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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억압된 언론 현실 여전히 외면…이용마 MBC 해직기자 “언론의 죽음은 곧 민주주의의 죽음”

“제52회 방송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시간에도 국내외 방송현장에서 알찬 정보와 다양한 문화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방송인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박근혜 대통령)

2일 제52회 방송의 날을 맞아 열린 축하연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세계 속 한류 열풍, UHD(초고화질) 방송 시대에 대한 기대감 등 방송 발전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치하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해직언론인이 아직도 거리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있고, 현업 언론인들이 ‘공정방송 회복’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며 애쓰고 있는 또 다른 방송인들의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자리였다.

이날 축하연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황교안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들과 전・현직 방송인 500여 명이 참석해 방송의 날을 축하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제52회 방송의 날(매년 9월 3일)을 맞아 2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축하연에 영상을 통해 “제52회 방송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시간에도 국내외 방송현장에서 알찬 정보와 다양한 문화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방송인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있다. ⓒ미디어스

집권 이후 지난 두 차례의 축하연에 직접 참석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중국순방을 떠나며 영상으로 축사를 대신했다. 박 대통령은 “미디어 융・복합이 가속화되고 콘텐츠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세계 각국이 문화영토 확장에 나서는 시대, 방송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찬란한 문화, 아이디어, 기술을 융합한 우수한 콘텐츠로 세계와 교류하며 방송이 문화 융성과 창조경제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방송이 창의와 혁신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나가고 국민의 더 큰 사랑 받을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해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방송의 날을 맞아 쏟아진 화려한 수사는 방송을 바라보는 언론계 안팎의 우려와는 분명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 4월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33점을 기록하며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됐다. 순위는 전체 199개국 중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공동 67위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가운데에서는 30위를 기록했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협박이 증가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 그녀의 처신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에 대한 탄압 때문에 하향 추세 표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8일째인 지난 2013년 3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프리덤하우스가 밝혔듯이 이 같은 약속은 여전히 약속 상태로만 남아 있다. 당장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MBC 사태 해결도 요원하기만 하다. 공정방송 회복을 외치며 170일간 파업을 벌이다 해직된 MBC 해직언론인들은 벌써 1000일 넘게 거리에서 ‘언론자유’와 ‘공정방송 회복’을 외치고 있다.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1277일(2일 기준), 정영하 전 노조 위원장 1248일,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 1248일, 박성호 전 MBC기자회장 1191일, 최승호 전 PD 1170일, 박성제 전 기자 1170일. ‘방송 공정성’은 언론종사자의 근로조건이며 이를 위해 싸운 언론인들에 대한 해고는 무효하다는 고등법원의 판결까지 받았지만 이들은 아직 ‘해직언론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는 <시사인>(411호)과의 인터뷰에서 MBC노조의 170일 파업 당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MBC 파업 사태를 해결하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증언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은 당선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선 출마’라는 정치적 명분을 위해서라지만 MBC 정상화를 약속했고 이후 대선 공약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약속했던 박 대통령이다.

▲ MBC노조가 2012년 11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내 회의실에서 박근혜 후보의 언론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는 스스로 넉 달 전 조합과 한 약속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바꿨다. 김무성 본부장이 직접 나서서 김재철 해임을 저지한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지적하며 본인이 밝힌 약속을 당장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좌)과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우). ⓒPD저널

언론계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증거로 지난 8월 꾸려진 공영방송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의 구성을 지적한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 출신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다시 이사장직을 맡게 된 이인호 KBS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일·독재 미화 논란의 ‘대안교과서’의 감수를 맡았으며, 이후 국민원로회의 위원을,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이 이사장은 지난 6월 24일 KBS의 메인뉴스 <뉴스9>의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하며 보도 경위 파악을 목적으로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보도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됐으며, 앞서 <광복70주년 특집-뿌리깊은 미래 1편>(이하 뿌리깊은 미래)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진에 대해 ‘우매하다’라고 표현하는 등 거듭 방송 개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유주의연대 출신으로 뉴라이트 계열 인사인 차기환 KBS이사는 지난 6년 동안 방문진 이사로 재임하며 김재철 전 사장 해임안 부결에 앞장서는 등 MBC를 망가뜨린 장본인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차 이사는 세월호 유가족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하며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박 시장을 비하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극우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물을 옮기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안검사 출신이자 영화 <변호인>의 바탕이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 출신으로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앞서 방문진 감사를 맡았다. 고 이사장은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MBC가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낸 것을 끝까지 두둔했으며, 그해 6월 방문진 이사회에서는 “해경이 79명을 구조했는데 (MBC 보도에선)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고 하나. (세월호 참사 책임에) 왜 정부를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KBS이사회와 방문진에는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친박, 극우로 대표되는 부적격 인사들”로 꼽는 인물들이 다수 이사로 선임됐다.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서도 언론자유는 물론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영성을 바로 세우기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들이다.

이날 유일하게 ‘방송의 공정성’을 언급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민이 기대하는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송인 여러분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방송은) 부풀려진 정보나 왜곡된 주장을 가려내고 물리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나친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에도 지혜롭게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 국회의장의 말처럼 국민이 기대하는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류 열풍과 방송 기술의 발전 뒤에 가려진 해직언론인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이 약속한 “방송장악은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약속이 이뤄져야 한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3일 논평을 내고 이번 방송의 날 축하연에 대해 “‘반쪽짜리’ 방송의 날”이라며 “웃으며 축하받아야 할 그 자리에 정작 방송의 주역인 방송노동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어디에도 방송노동자들의 자리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불의한 현실에 맞서 공정방송을 외치던 노동자는 해고됐고, 평생을 방송에 헌신한 노동자는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 속에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열악한 처우를 참고 견디고만 있다”며 “저 높은 곳의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아 방송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와 방송사 경영진들 당신들에게는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축하연이 있던 2일, 한켠에서는 ‘공정방송 회복’을 외치다 해직언론인이 된 이용마 전 MBC기자가 ‘방송의 날’(9월 3일)을 맞아 그간의 소회를 담은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 해직기자는 편지에서 “언론의 죽음은 곧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며 그간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원칙과 신뢰’에 입각해 지금이라도 언론 정상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 취임 3년, 반환점을 맞이한 지금 박 대통령은 또 다른 현실에 놓인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 암흑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80년대 해직자들이 복직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해고된 지도 벌써 3년 반이 되었으니, 이제 절반을 채웠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법원 판결에서도 저희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진전되었으니 박근혜 정부는 전두환 정부보다 좀 나을까요? 대통령의 답변을 기대합니다.”(이용마 MBC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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