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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진정한 집밥과 먹방의 의미 보여준 MBC '무한도전-배달의 무도'

TV를 켜는 순간부터 끌 때까지 온통 ‘먹는 것’으로 가득 찬 요즘, 오늘도 TV는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는다. 시청자들도 덩달아 탐식의 즐거움에 빠졌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남)’ 셰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를 열어 색다른 요리를 선보이고 백주부(백종원 분)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집밥 메뉴를 시전한다. 유명 음식 평론가가 나와 맛집을 소개하면 방송이 나간 후 해당 맛집은 입소문을 타 유명해지는 식이다.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을 다 합치면 먹방·쿡방만 10개 이상의 방송이 전파를 탄다. 시청자들은 슬슬 획일화된 방송 포맷에 싫증을 느끼고 프로그램이 과도한 식탐 문화를 양산하고 음식을 물신화해 허기를 재생산하는 게 아닌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고 먹는 행위를 훔쳐본다는 뜻의 ‘푸드 포르노그래피’란 용어는 TV를 도배하는 먹방, 쿡방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먹방이 가장 맛있는 음식을 소비하거나 푸드 포르노에 집착하는 식이었다면 지난 22·29일에 방송된 MBC<무한도전> 광복 70주년 기획 ‘배달의 무도’는 식(食)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 89세 노모가 직접 만든 만둣국과 되비지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들 박상철 씨. ⓒMBC

'그리운 사람의 맛을 그리운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출발한 ‘배달의 무도’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진정한 '먹방'을 보여줬다. 해외 시청자에게 집밥을 배달해주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이유로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교포들의 사연을 조명했다. 1편(441화)에서 정준하는 노모를 대신해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30년 넘게 근무한 아들을 위한 되비지와 만둣국을 배달했다. 30년 간 아들을 보지 못한 노모는 “음식 먹을 때 엄마 생각하며 울지 말고 먹어라”는 영상편지와 함께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보내고 아들은 어머니의 음식 앞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2편(443화)에서 박명수는 칠레의 유일한 한국 학생인 아들과 남편을 위해 아내가 손수 만든 닭강정을 배달한다. 부자는 “역시 엄마의 요리!” “아내의 김치가 최고”라고 행복해하며 눈 깜짝 할 사이에 밥 한 공기를 비워낸다.

‘배달의 무도’에서 나온 음식은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집밥’이다, 하지만 방송은 세상 어떤 진귀한 음식도 유명 셰프가 만든 일품요리도 가족의 사랑이 담긴 집밥보다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달의 무도’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다. 밑반찬 하나에도 가족을 위한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예기치 않게 음식을 마주한 주인공들은 그리웠던 고향의 맛과 함께 가족들의 진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는 가족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결국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애를 상징한다.

▲ 유재석은 입양 가족들을 만나 김밥을 함께 만들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MBC

하지만 방송은 가족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멤버들의 여정을 같이 따라가다 보면 시청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2편에서 유재석이 소개한 재미교포 선영 씨의 사연이 그것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된 선영 씨의 사연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제작진은 모정이 담긴 음식과 함께 가족들을 미국으로 초대해 감동적인 자리를 마련했다. 예쁘게 자라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선영 씨와 그에게 늘 미안해하는 가족들과의 상봉은 감동을 배가시켰다. 그녀의 양아버지가 선영 씨의 친부모에게 "보물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방송은 통역사 장윤희 씨의 눈물을 포착해 입양된 그의 남편 크리스 씨의 사연도 소개했다. 크리스 씨는 짧은 영상을 통해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마산 시청 열린 시장에서 발견돼 입양됐던 캐런 워런, 쌍둥이 동생과 함께 입양된 장 제리미 용호의 사연도 소개했다. 방송 후반부에 유재석은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거주하는 입양 가족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 가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냐”는 재석의 질문에 한 아이는 망설이다 “친엄마와 위탁모를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좋은 양부모를 만났지만 가슴 한편에는 낳아준 부모님과 한국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해졌다.

▲ 입양된 딸 선영씨를 위해 어머니가 손수 만든 음식들. ⓒMBC

소소한 웃음과 재미에서 사회적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무도의 스토리텔링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기획이었다. 억지 감동을 주거나 교훈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겁지도 않다. 방송 시점이 가요제와 맞물려 있었고 과거 달력을 전달했던 시청자 참여 기획 정도의 소소한 재미를 줄 거라고 예측했던 사람들은 ‘배달의 무도’가 준 감동과 여운에 “또 한편의 레전드가 탄생했다”고 호평했다. 사실 광복 70주년을 어느 때보다 축하하고 화려한 축제로 보낸 우리였지만 어떤 이야기를 추억할지에 대해 깊은 고찰이 담긴 프로그램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보이지 않아 잊은 사람들과 부끄러워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되새긴 ‘배달의 무도’는 <무한도전>은 자신의 파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줬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무한도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디,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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