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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딱 하나뿐인 그녀들의 이야기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 박혁지 PD 김연지 기자l승인2015.09.07 06: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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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처자식이 있지만, 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거든요. 그런데 이 두 분의 관계를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저는 사랑이라고도 우정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온 세상에 딱 하나뿐인 유일한 관계, 단어화되어있지 않은 두 사람만의 유니크한 관계. 서로가 상대방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인간상이죠.”

90세 최막이 할머니와 71세 김춘희 할머니. 기묘한 동거관계를 47년째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은 본처와 후처 사이다. 7살 아이의 지능을 가진 춘희 할머니는 24세에 씨받이로 시집을 왔다.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가 71세 노인이 되는 동안 남편은 죽고 자식들도 장성해 떠났지만, 그 옆에는 늘 막이 할머니가 있었다. 47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상에 담겼다. 전주국제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며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다. 오는 30일 개봉을 앞두고 <춘희막이>를 연출한 박혁지 PD를 지난 8월 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났다.

▲ 다큐멘터리 <춘희막이>를 연출한 박혁지 PD. ⓒPD저널

박 PD가 두 할머니를 처음 영상에 담은 건 5년 전 일이었다. 우연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접한 박 PD는 당시 일하고 있던 지역 방송국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박PD는 이 프로그램으로 독립PD협회에서 상까지 받았지만, 막상 방영되고 나니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2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고 끝내기엔 두 사람의 관계에 더 많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 PD가 만든 프로그램은 막이 할머니가 ‘바보’ 춘희 할머니를 오랜 기간 돌보며 희생해왔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박 PD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단순히 단편적으로 소개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영화화해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만든 건 고 이성규 PD였다. 평소 존경했지만 아무런 일면식도 없었던 대선배였다. 그런데 이성규 PD가 어느 날 박 PD를 불렀다. 박 PD가 독립PD협회에서 수상을 한 직후였다.

“그때 이성규 선배님이 심사를 하셨거든요. 순댓국밥집에서 밥을 사주며 칭찬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났느냐고, 촬영기법도 맘에 들고 인물상도 독특하다고. 더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데 이대로 끝내기엔 아깝다고 말씀하셨죠. 방송계 변두리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제가 그렇게 칭찬을 들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용기도 없었고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감도 없었다. 어떻게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영화화할 생각 없느냐고 넌지시 물어보던 이성규 PD의 말, 인상 깊었던 두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2011년 2월 설날, 박 PD는 할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내려갔다. 아직 구체적인 영화작업 계획이 머리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선 할머니들과 인연의 끈을 이어나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를 가기도 했다. 할머니들과 관계가 돈독해지고 애정이 쌓이면서 박 PD는 점점 확신을 가졌다.

▲ 다큐멘터리 <춘희막이> 포스터. ⓒ춘희막이

2011년 12월 20일, 첫 촬영이 시작됐다. 인연의 끈을 이어만 오다가 본격적인 영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 날부터 2013년 12월까지, 박 PD는 할머니들 곁에서 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다. 박 PD가 ‘큰할머니’라고 부르는 막이 할머니는 전형적인 ‘조선 여인’이다. 여자가 나서거나 화면에 나와 부각되는 걸 옳지 못하다고 여기는 그녀는 손주뻘이라고는 해도 박 PD가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고 관찰하는 것도 남사스럽다고 여겼다. 하지만 박 PD가 오랜 기간 머물며 무거운 것도 들어드리고, 말동무도 해 드리며 시간을 보내자 점차 아들처럼 대해주기 시작했다.

두 할머니를 오랜 기간 관찰한 박 PD의 말처럼, 영화 속 그녀들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어릴 때 방앗간에서 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작은할머니’ 춘희 할머니는 만석꾼 집안의 딸이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딸을 씨받이 후처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아 했지만, 막이 할머니는 ‘10고 초려’ 끝에 춘희 할머니를 데려왔다. 젊은 시절 아들을 사고와 병으로 모두 잃은 후, 밖으로만 나돌며 바람을 피우던 남편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도록 막이 할머니가 택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데려온 춘희 할머니는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낳았다.

막이 할머니는 올해 처음으로 농사일을 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 인상 깊게 등장하던 치렁치렁 긴 하얀 백발도 싹둑 잘랐다. 아침에 머리를 빗고 나면 기운이 빠진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까지 아흔이 되도록 막이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이 떠난 후 남겨질 춘희 할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막이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춘희 할머니를 걱정한다. 나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거둘 사람도 가르칠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사느냐고. 그래서 막이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소작농으로 차곡차곡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

▲ 다큐멘터리 <춘희막이> 캡쳐. ⓒ춘희막이

하지만 박 PD는 단순히 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마냥 해맑은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현자의 얼굴로 현답을 말하는 춘희 할머니. 보이지 않게 막이 할머니를 챙기고 걱정하고 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박 PD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먹여 살리듯, 어쩌면 춘희 할머니도 막이 할머니가 살아가게 만드는 힘, 이유,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것.

“큰할머니는 늘 걱정하시죠. 내가 죽고 나면 쟨 어떡하느냐고. 하지만 전 그 반대의 상황이 와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에 하나라도 작은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다면, 큰할머니는 어떻게 하나.”

박 PD는 막이 할머니를 보며 시지푸스 신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로 커다란 바위를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지푸스. 산꼭대기에 이르면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 때문에 영원히 형벌을 되풀이해야 하는 시지푸스. 박 PD는 막이 할머니가 무거운 돌을 이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그 돌을 기꺼이 끌어안고 오른다는 느낌. 어쩌면 춘희 할머니와의 동거는 막이 할머니가 스스로 택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 모자란 여자를 데려왔지만, 그에 대해 책임을 졌고, 절대 나태해지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큰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에요. 이용하고 나면 신발짝처럼 사람을 버리는 이 세상에서 끝까지 책임감을 안고 당신 스스로에게 내린 업보와 죗값을 치르는 사람인 거죠. ‘도리’라는 말이 유교적이고 딱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걸 누구보다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저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 다큐멘터리 <춘희막이> 캡쳐. ⓒ춘희막이

사실 두 할머니는 모두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다. 말도 안 되는 구시대의 폭력, 그 예민하고 아픈 역사를 박 PD는 직접 드러내거나 날을 세워 설명하지는 않지만, 두 할머니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그 질곡의 세월과 풍파를 느낀다. 투닥이며 나란히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굽은 등은 그 어떤 장치보다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박 PD는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함께 <춘희막이>가 ‘실버 3종세트’로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표하기도 했다. 역사에 남을만한 두 대작과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움도 느낀다는 게 그의 심정이다.

“노인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세 작품은 모두 주제도, 결도 다르거든요. 관객들이 여기에 매몰돼서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춘희막이> 예고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니 휴지를 많이 챙겨가야겠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많이 울었는데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겠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춘희막이>는 여운은 있어도 사실 그렇게 슬프지는 않거든요.(웃음)”

물론 500만 명에 가까운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엮어서 홍보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고 들여다볼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다큐도 재밌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며 문턱을 낮춘 순기능을 하긴 했지만, 아직 다큐멘터리는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 다큐멘터리 <춘희막이>의 두 할머니와 박혁지 감독. ⓒ한상호

그래서 박 PD는 <춘희막이>가 ‘잘’ 됐으면 좋겠단다.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보여준 다큐멘터리의 산업적 가능성을 확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아직 ‘산업’이 아니잖아요? 투자도 거의 없고요. 하지만 투자 대비로 치면 경제적 효과는 다큐도 다른 상업영화 못지않거든요. 저는 이번 영화가 잘 돼서 그런 인식을 확실하게 다져놓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다큐가 극영화의 100분의 1만이라도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겠어요. 제 영화가 그런 생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더 좋은 다큐들이 나오게 될 거구요.”

아무런 기반도 없이 혼자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작업. 두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며 담은 이야기들이 관객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춘희막이>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김연지 기자  onmymind@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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