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소송 남발 ‘국민입막음’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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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실태보고서 공개…“공직자 남용 막기 위해 법개정해야”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를 비판한 커뮤티니 게시물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댓글’이다. 게시물 작성자가 대통령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이나 조롱․비방으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되면 혹여나 자신이 단 댓글 때문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의 표출이자 정부 비판적인 의견을 쓰거나 동조할 때마다 고소·고발 가능성을 유념해야 하는 현 시대를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등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면 그 게시물 아래 댓글란에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 자신은 웃지 않았다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게 포인트다. “판사님,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양이가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판사님, 저는 이 게시물에 우연히 온 것뿐입니다.” “판사님, 전 살고 싶습니다.”로 변형돼 풍자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참여연대가 지난 7일 공개한 '박근혜 정부 전반기 국민입막음 실태 보고서' ⓒPD저널

하지만 이러한 세태를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실제로 시민과 언론인 등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고소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 전반기(2013년2월~2015년8월) 국민입막음 소송 실태보고서’에는 이러한 소송 사례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국가기관‧공직자 개인에 의해 제기된 주요 명예훼손 소송은 총 22건으로 이중 18건은 형사사건, 4건은 민사사건이다. 보고서는 “주로 문제된 사례들이 국정원이나 청와대, 대통령 등 핵심 권력의 정당성 및 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과 의혹제기로 이어졌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의혹을 제기했던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와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제작‧배포했던 박모 씨 등도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모 씨가 제작한 전단지는 정윤회 씨 등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관한 의혹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두 의혹 모두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을 때 청와대가 충분히 해명을 하지 못해 이후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보도를 한 언론인에 대한 ‘입막음 소송’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해 기소된 <산케이 신문> 지국장과 박근혜 정부의 숨은 실세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해왔다고 보도해 고소를 당한 <세계일보>다.

이외에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수사관 3명이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를 고소했다. 최 PD가 방송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이 가혹 행위를 해 허위자백을 이끌어 냈다”고 말한 혐의다. 최 PD는 그 전부터 대선 기간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조작 및 정치개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바 있다. 최 PD는 지난해 9월 관련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피의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소송이 결국 불기소처분이 되거나 민‧형사 재판에서 무죄 또는 배상책임없음 판결이 나오더라도 국가기관이나 공직자들이 그로 인해 잃는 것보다는 ‘비판 여론 차단’이라는 이익을 얻어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도 “정부와 공직자로부터 소송 등을 당한 이들은 그 과정에서 위축, 발언자제, 심적 부담, 대인관계의 단절, 재정적 부담 등을 경험하게 돼” 시민들의 비판적 여론 형성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7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2014년 8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발생 7시간 가량 박 대통령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뉴스1

보고서는 주요 소송에서 당사자의 고소 없이 검‧경 등 수사기관의 직권 또는 제3자의 고발에 의해 수사가 착수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보도한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국장에 대한 검찰 기소, 비선실세로 ‘만만회’를 언급한 박지원 의원에 대한 검찰 기소 모두 제3자인 보수단체의 고발로 이뤄졌다. 박래군 씨와 박 대통령 비판 전단을 배포한 박 모씨 등은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를 개시하고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로써 공직자와 국기기관은 직접 명예훼손 피해를 주장할 때 받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효과적으로 시민의 비판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명예훼손죄를 피해당사자가 고소를 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기관과 공직자 개인은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법조인들의 생각이다. 대법원은 2008년 국정원이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제기한 명예훼손에서 국가기관‧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이 ‘국가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에도 적합하다는 것이다.

국민입막음 소송에 활용되는 근거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UN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인 프랑크 라 뤼는 UN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한국의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비범죄화를 권고한 바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 등이 반의사불법죄 조항 폐지 및 친고죄 규정 신설, 명예훼손의 징역형 폐지 및 벌금형 하향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지난달 31일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자유틀별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 유승희 의원)는 표현의 자유 피해 신고센터를 개소한 이유도 이러한 연장선에서의 일이다. 위원회는 대통령 등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당해 재판을 받는 시민과 언론인들을 위한 법률 상담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고소‧고발을 당한 시민이 법정에서 개인적으로 국가기관이나 공직자를 상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박근혜 정부 전반기 국민입막음 소송 실태보고서’를 작성한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에 대한 비판과 의혹제기는 자유롭게 토론되고 그런 와중에 검증이 되거나 필요한 부분이 정화되어야 하는데, 국가가 이를 공론화를 하기 보다는 무조건 차단하려는 모습은 민주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허위사실도 아니고 진실한 사실을 말했는데 처벌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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