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실행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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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실행해야 할 것들
[남우선 PD의 행복한 오타쿠 ④]
  • 남우선 대구MBC PD
  • 승인 2015.09.11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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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하교 길에 교문 앞에 팔던 병아리를 몇 마리 사서 집에 왔다. 그런데 그것들이 죽지 않고 자라 커다란 장닭들이 되었다.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는데 어느 날 두 마리가 사라졌다. 즉각 어머니는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세들어 사는 방과 이웃집을 조용히 염탐했다. 뽑힌 털이 부엌에 날아다니지나 않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모두들 자기들은 잡아먹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어린 나는 사랑하는 ‘반려닭’이 두 마리나 없어졌으므로 마당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날이 저물어 어머니는 수사를 포기하였고 나는 낙심하였다.

등잔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나는 평소에 닭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뒷집 아저씨를 보강수사하기로 했다. 그 집의 열린 대문으로 몰래 기어들어가 찬장 안을 수색했다. 안 쓰는 그릇들로 눌러놓긴 했지만 냄비의 온도를 손으로 만져본 결과, 가장 아래의 냄비가 따뜻했고 나는 그 안에 고이 삶겨진 반려닭들을 발견했다.

우리 어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시는 동안 나는 남은 닭들의 우리에 보안을 강화했다. 난닝구(속옷)바람으로 어머니에게 맞으며 경을 친 뒷집 늙은이는 내게 그걸 어떻게 발견했냐고 씩씩거리며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거는 포기하지 않는다구요”

“어이구 이눔아...삶은 닭 찾아내는 그 머리로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코흘리개 시절의 병아리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강아지도 열심히 키웠다. 그러다 집이 아파트로 이사하고부터는 살아있는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대신할 놀이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혼자 놀기 딱좋은 나의 취미들이었고 나는 취미를 열심히 키웠다.

“무엇 무엇이 하고 싶어 죽겠어요, 그걸 지금 안하면 죽을 것 같아요..”

곧 당신이 저지르게 될 축복같은 아이템이다. 어른들이 하는 이런 놀이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좋아서 죽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들의 사망소식이나 부고(訃告)는 동호회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무개가 무엇을 저질렀다. 그것을 하느라 날밤을 새는 중이다, 사연들을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저지르다가 집에서 쫓겨났다거나, 패가망신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연병장의 폭죽처럼 환호가 터진다.

그들의 즐거움은 어린이들의 딱지치기나 오자미놀이처럼 감정이 단순하다. 투명한 감정은 전염도 잘된다. 그래서 역병에 걸린 환자들이 서로를 벗삼아 환우촌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혼자 노는데 익숙해지면 의외로 혼자 노는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적 연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희한하게도 결속력이 강하다. 서로의 취미를 이해해주니 화제가 만발이다.

직장인들은 밥그릇 싸움이 심하다. 가진 아이디어를 탈탈 털어서 짜잔 하고 보여줘야 하고, 눈에 띄는 실적도 올려줘야 자리가 온전하다.

취미의 세계엔 그런 게 없다. 이것도 알려주고 저것도 알려주고 서로 못 도와줘서 난리다. 재미있게 놀다가도 혼자 놀 시간이 되거나, 자기에게만 처방된 투약시간이 돌아오면 각자 일사불란하게 해산한다. 그 동네가‘취미의 세계’다.

최근 한 온라인 게시판에는 ‘여자를 망하게 하는 취미’라는 제목으로 화장품 등 쇼핑, 맛집 탐방, 덕후질 (오타쿠적인 취미활동. 예를 들면 팬클럽 활동) 등 여성들 사이에서 위험도 높은 취미생활을 지목하였다. 얼핏 들으면 덕후질이 아주 위험한 짓일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KDB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가 2015년 1월 50세 이상, 잔고 1000만 원 이상인 고객 9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의미심장했다. 살아오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뭐냐는 질문에 ‘평생 취미를 못 가진 것(18%)’이 1위로 꼽혔다. 더 많은 도전을 못한 것(15%) 과 여행 부족(14%)은 그 뒤를 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빅 웨이브에 꽂힌 여자서퍼, 집도 팔고 회사도 정리해버리고 떠난 세계여행가, 커피라는 취미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때려 친 아가씨, 20년간 다니던 신문사를 때려치고 취미인 사진을 찍기 위해 태어난 바닷가 섬으로 돌아간 사람. 거리에 지문을 찍듯이 천천히 바람을 즐기며 오토바이를 탄다는 할리 마니아, 목숨을 걸고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프리다이버, 인생의 토대를 파괴하고 악마적 유혹을 사랑하지 않을 거면 무엇하러 취미를 즐기냐는 음악마니아 등등....내가 만난 마니아들의 영혼은 취미로 인해 비로소 구제되었다. 그들의 방황하는 영혼들은 취미로 인해 비를 피하고 안식을 구하였다.

그런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매혹의 순간들을 접하다 보면 이들을 통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방법쯤은 저절로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자신만만하게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에게 경배를 들고 싶다. 그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무료한 인생에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땐 취미를 활용하세요”

입을 동그랗게 말아 “나 이거 시작했어”라고 친구에게 말하라. 그것을 시작한 날, 흥분과 설렘으로 약간 상승한 당신의 체온을 기억하라. 용맹할 정도로 자극적일 당신의 첫 발을 잊지 마라. 요즘 경쟁력은 ‘진정한 취미’다.

 

* 필자는 대구MBC PD로 책도 쓰면서 음반과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취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책' 남자의 취미'에 이어 얼마 전에는 책 '여자의 취미'를 출간했다. 플로리다 주립대(F.S.U)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독도>로 국제상 2관왕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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