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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비극을 낳다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WE' 오정호‧남내원 PD 구소라 기자l승인2015.09.16 17: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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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손을 뻗쳐 하일 히틀러하고 있을 때 군중 가운데 한 명이 팔짱을 끼고 있었어요. 이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를 6부작에 담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침묵에 동조할 때 목소리를 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남내원 EBS PD)

2015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한국인의 집단심리를 무엇일까. 이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해답을 찾아 나선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난 8월 31일부터 2주에 걸쳐 6일간(매주 월‧화‧수)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WE‘가 바로 그것. 총 6부작의 다큐멘터리에서 1,2부는 대중유혹의 기술을, 3‧4‧5부는 직장 내 집단주의와 영‧호남의 지역감정, 그리고 윤일병 사망사건을 다뤘고, 마지막 6부에서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했다.

6개의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소외된 개인’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이 가진 개성과 특수성은 설 자리가 없다. 제각각 다르게 생긴 모난 돌이 아니라 반들반들한 둥근 돌이 환영받는 사회다. 결국 ‘우리’는 있지만 ‘나’는 없다. 다큐멘터리는 끊임없이 ‘너를 없애고 조직에 순응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와 그 안에서 소외되고 신음하는 개인을 보여준다. 언제까지 개인은 소외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야 할까. 이런 우리의 모습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14일 도곡동 EBS본사에서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오정호, 남내원PD를 만나 그동안의 고민과 생각을 들었다.

▲ 오정호PD(왼쪽)와 남내원PD(오른쪽)의 모습 ⓒPD저널

개인을 소외시키는 미디어에 속지 않으려면?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WE’의 1,2부는 20세기 최고의 대중 유혹기술과 국가와 자본이라는 권력이 대중을 설득하거나 조작하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계급이 무너지고 만인이 평등한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기득권은 어떻게 이 예측 불가한 대중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고 그 결과로서 대중선전(Propaganda)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습득하게 된다. 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유권자와 소비자를 현혹시키고자 이 기법을 활용했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였다.

현대의 미디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소외를 가속시킨다. 미디어는 대중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미디어이벤트와 이미지 조작을 서슴지 않는다. 미디어가 유포하는 욕망에 휩싸인 개인은 ‘자신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매우 치밀하게 준비된 자본의 극본에 따른 것임을 암시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도 다큐에서 소개된다.

건강한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미디어의 유혹(혹은 기만)으로부터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 오PD는 다큐의 1,2부가 원래는 5,6부였다고 했다. 앞에서 한국의 집단심리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뒤에서 대중조작의 기술을 소개하며 마무리를 할 예정이었다는 것. 다큐의 결론인 셈이었던 5, 6부가 1,2부로 배치되면서 구체적인 사례와 진단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사태의 ‘원인’을 제시한 격이다. 오PD는 “1,2부가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그 안에 나오는 국내외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사회를 읽는 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 모두가 '하이히틀러'를 외치고 있을 때 오직 단 한 명이 팔짱을 끼고 있다. ⓒEBS

오PD는 “미디어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손”이라며 “사람들을 움직이는 홍보나 PR, 프로파간다는 모두 미디어를 통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기 위해 대중의 욕망과 무의식을 읽어내는 힘인 ‘통찰’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다. 통찰과 대중 유혹의 기법들이 권력과 자본을 위해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하도록 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찰과 대중 유혹의 기법을 어떻게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미디어이벤트나 공포와 분노의 기법들은 모든 언론사에서 씁니다. 한겨레나 경향이라고 안 쓰겠어요. 다만 그것이 무엇을 위해 그 기법들을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정호PD)

윤일병 사망사건 1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3부에서부터 다큐는 우리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현대인들은 문득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지만 이내 밀려오는 업무에 다시 일상에 파묻힌다. 남PD는 이렇게 살다가는 결코 ‘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조직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회사에서 나는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과 모멸감. 이것이 대한민국 청년의 30%가 5년 내 직장을 떠나는 이유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까라면 까야하는’ 조직에서 그러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보복과 수모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아예 삶을 앗아가기도 한다. 지난해 4월에 일어난 윤일병 사망사건의 이야기다.

남PD는 3부와 5부에서 대한민국의 직장과 군대를 조명한 이유에 대해 “사실 이 두 편은 같은 주제를 다룬 내용”이라며 “한국의 권위주의 조직문화를 잘 표현하는 곳이 회사와 군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계를 지향하는 한국인들이 병든 조직에 있을 때 어떻게 함께 병들어가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20대 평범한 학생들이 한 명은 악마가 되고, 한 명은 죽고, 한 사람은 옳은 일을 했음에도 고통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5부를 기획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언론이 달려들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언론은 떠났고 군대 내 병영 문화혁신 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개선한다고 했는데, 과연 될까요. 지금껏 우리는 군대 내 개혁이 실패하는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롯이 그냥 유가족의 고통만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남내원PD)

조직 속 개인이 가진 예민한 감정과 느낌들 살필 때

남PD는 "가족들의 구구절절 한 마디가 너무 아팠다"며 윤승주 일병의 가족을 만나 인터뷰 하는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전말을 폭로한 김재량 상병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 상병은 증언 이후 군대 내에서도 내부고발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김 상병은 지난 1월 제대를 했다.

▲ EBS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WE' 중 5부 '나일 수도 있었던 나의 이야기' 중 한 장면 ⓒEBS

“옳은 행동을 한 사람이 다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수능 공부를 다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하냐고 물어보니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직까지는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며, 변호사가 되는 것에는 많은 길들이 남아있으니 인터뷰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남PD)

침묵의 합창을 깼던 김재량 상병은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찬양할 때 팔짱을 끼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고 고민하던 군중 속 개인의 모습과 닮았다. 오PD는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집단문화인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그걸 깨려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문화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단 속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우리 사회에 무겁게 드리워진 집단주의를 걷어내기 위한 해법이기도 하다.

“우리라고 하면 덩어리로 생각하는데, 그 덩어리 안에 있는 개인 하나하나를 봐야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모두가 뭉쳐져 우리라는 집단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으쌰으쌰’ 하기도 하고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덩어리 안에 있는 수많은 개인이 가진 예민한 감정들과 느낌들, 이런 것들을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015년의 우리는 다시 끊임없이 개인을 괴롭힐 겁니다.” (남PD)

 


구소라 기자  sorago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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