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독립PD의 노동인권 현주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계약 노동에 체불·욕설·성폭력까지···독립PD 노동인권 실태조사 발표

“독립PD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을 이야기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그 즉시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자신이 속한 제작사가 방송사에서 퇴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사결과로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독립PD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고 어떤 노동환경에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독립PD들의 노동인권 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과 한국독립PD협회(협회장 이동기, 이하 독립PD협회) 등이 함께 구성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제도개선TF’(이하 외주제작노동인권TF)는 17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실시한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6월 24일 MBN의 한 PD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독립 PD를 폭행한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폭행사건 이후 독립PD협회는 71일간 MBN 앞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한 한편,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 주최, 외주제작노동인권TF 구성 등 독립PD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해왔다. 이번 조사는 외주제작노동인권TF의 첫 번째 사업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 외주제작노동인권TF가 17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PD들의 노동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노조

독립PD협회 정회원 17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실태조사는 △계약 및 업무 수행 형태 △4대 보험 가입 여부 및 근로조건 △임금 체불 및 인권 침해 사례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 등에 중점을 뒀다.

조사 결과, 독립PD들은 기본적인 계약서도 없이 방송 제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면계약을 체결하고 방송제작을 한다고 답한 독립PD의 비율은 23.4%에 불과했으며 구두계약을 선택한 응답자는 47.4%, 아무런 계약 없이 제작한다는 응답자도 29.2%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계약서에 대해서도 98.3%에 달하는 독립PD들이 ‘모르고 있다’라고 응답해 사실상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복진오 독립PD협회 권익위원장은 “방송사가 제작사와 무계약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라며 “여러 연예인을 거느리고 기획사를 겸하는 대규모 제작사도 계약서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규모 영세 제작사나 프리랜서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계약 체결 방식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방송사와 직접 계약이 아닌 독립제작사와 계약을 하는 경우에도 방송사 소속 PD가 주요 업무 지시자의 역할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2.4%였다. 인권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열악한 제작환경과 낮은 보수에 대한 실태도 드러났다. 방송제작 과정에 필요한 장비의 경우, 방송사가 제공한다고 답한 비율은 10.9%에 불과해 대부분 독립제작사나 독립PD가 개별적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지급형태도 ‘건당 지급받는다’라는 응답비율이 47.4%로 가장 커 독립PD들의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64.4%가 ‘체불 경험이 있다’라고 답해 보수체불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금까지 체불된 보수총액이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4.6%, ‘2000만 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8.9%에 달했다.

복 위원장은 “예를 들어 수중촬영이나 드론 같은 특수 촬영의 경우, 방송사는 그에 따른 비용은 주지 않으면서 결과물을 요구한다”라며 “주어진 제작비로 특수 촬영을 하려면 감당하기가 어려워 독립PD들이 직접 수중 촬영 기술, 드론 조종 기술 등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러한 촬영 뿐 아니라 운전, 편집 등은 기본”이라며 “독립PD들은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독립PD들이 처한 열악한 사회안전망 실태도 나타났다. 4대보험에 가입한 응답자 비율은 국민연금은 43.7%, 고용보험은 12%, 산재보험은 13.1%에 불과했으며 업무 중 발생한 부상 및 질병에 대해 ‘개인적을 해결한다’는 응답이 무려 83.7%였다.

한편 방송 제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84.6%의 응답자가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들어보았다고 답했으며, 욕설과 폭행 피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각각 61%, 17.7%를 기록했다. 또한 여성PD의 경우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포함)을 당한 경험은 무려 87.5%에 달했다.

외주제작노동인권TF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떤 직종보다도 독립PD들의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라며 “직종별단체에서 윤리강령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관계 당국의 지속적인 감시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 외주제작노동인권TF가 17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PD들의 노동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노조

이들은 △외주제작구조의 개선 △방송콘텐츠제작에 참여하는 비정규 제작인력에 대한 노동기본권 확립 △단체교섭역량 강화 등의 세가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외주제작노동인권TF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독립PD들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대안을 계속해서 마련해나갈 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MBN 폭행 사태 이후 독립PD협회의 조직적 문제제기로 MBN의 공식 사과를 받는 등 성과를 이뤘지만 이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할 때”라며 “보다 강력한 연대와 조직적 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첫 걸음이 되길 바란다”라며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우리사회의 갑을문화를 바꾸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안주식 한국PD연합회 회장은 “현재 PD연합회는 독립PD협회와 함께 인권보장선언을 작성 중”이라며 “표준계약서 문제,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제재 문제, 협찬문제, 폭언·폭행 대응 문제, 사소하게는 제작비 때문에 PD들이 직접 운전까지 해야 하는 실태 문제까지 매우 상세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언문이 완성되면 방통위와 방송사 등에 이에 대한 확답을 받을 생각”이라며 “각 방송사 내부와 방통위 등에 실질적으로 정책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결국 가장 중요한건 우리 방송시장이 독립PD들이 활동하기 열악하다는 근본적 문제”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향후 국회에 정책입법제안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