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살려야한다” 라디오와 TV의 색다른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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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예능의 합작 프로젝트 KBS ‘여우사이’ 이렇게 탄생했다

라디오와 TV, 인터넷의 만남으로 탄생한 KBS 2TV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감성진료소-여우사이>(이하 <여우사이>)가 지난 19일 KBS라디오coolFM에서 방송된 라디오 버전에 이어 29일 TV로도 방송됐다. TV판은 톡톡튀는 편집과 스토리텔링으로 신선한 재미를 안겨줬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이날 방송은 청취자 참여 방식을 음성이나 사연을 읽어주는 기존 심야 라디오의 방식에서 탈피해 청취자가 직접 보내 온 영상을 곳곳에 녹여내 보는 재미와 따뜻함까지 전달했다. 새벽 2시까지 유리창 청소를 하는 청년, 늦게까지 일하는 택시기사, 퇴근하는 직장인 등 라디오 방송을 듣는 청취자의 모습이 생생한 영상으로 소개됐다. ‘청취자가 이런 모습이구나’하며 놀라고 신기해하는 라디오부스 속 DJ의 모습에서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라디오와 예능이 만났다?

▲ 유희열과 정형돈 두 DJ는 첫 만남에도 호흡이 좋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KBS

<여우사이>는 KBS 라디오국과 예능국의 공동 프로젝트다. 라디오 생방송 분을 미리 촬영해 추후 편집과정을 거쳐 TV 예능 프로그램 <감성진료소-여우사이: 속보이는 라디오>로 재탄생했다. TV버전은 90분 동안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과 시트콤 형식으로 라디오 부스를 둘러싼 에피소드를 알차게 담아냈다.

방송 전부터 <여우사이>는 공동 메인 라디오 DJ로 유희열과 정형돈이 그리고 유병재가 작가로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과거 <라디오천국>에서 유희열과 호흡을 맞춰온 윤성현 KBS 라디오 PD가 라디오 방송의 연출을, KBS<해피투게더> ‘야간 매점’ 을 기획한 손지원 PD가 예능 버전의 연출을 맡아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바 있다.

홍보도 인터넷 방송과 V앱으로 색다르게!

▲ TV방송은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의 실시간 모습까지도 영상에 담아내 신선함을 줬다.ⓒKBS

<여우사이>는 인터넷 방송의 본질이 라디오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네이버 V앱’ 이라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홍보했다. 지난 14일에는 방송 제작 전 회의모습과 뒷이야기를 네이버 ‘V앱’으로 생중계한 바 있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코너를 ‘맛보기’로 공개하고 제작기를 짧게 보여줬다. 라디오 방송일인 22일에는 방송 직전 LIVE 영상과 방송 후 소감영상도 V앱으로 나갔다. 방송 중 V앱에 접속한 사람들은 실시간 채팅으로 DJ와 접속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V앱에서 미처 공개되지 않았던 에피소드와 생방송 풍경을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결과물이 지난 29일에 방영된 TV판<여우사이>다. 연출을 맡은 손지원 PD가 <여우사이>를 ‘라디오 판 프로듀사’ 라고 소개했던 만큼 방송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시트콤 형식을 차용했다. 손 PD는 “방송을 통해 라디오 부스 뒤에 감쳐진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싶었다. 생방송이라서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 방송 전 DJ들이 겪는 긴장감, 라디오부스를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의 고군분투, 설레고 떨리는 감정을 빠짐없이 감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디오 방송을 들은 청취자도 몰랐던 전후 사정과 인물들의 감정선, 뒷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프로그램의 중요 포인트다. 가령 라디오 생방송 중 정형돈이 컨디션 난조에도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나 아픈 그를 배려하며 이를 청취자에게는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유병재와 유희열의 모습 등 라디오만 들어서는 알기 힘들고 접할 수 없었던 세세한 속사정과 뒷이야기들은 TV 버전에서 설명하는 식이다.

실제로 29일 방송은 촬영장이나 세트장과는 달리 녹음기기와 음향기기만 있는 단조로운 라디오부스의 풍경을 알차게 담아냈다. 19일 라디오 방송을 들었던 시청자는 그날의 감성을 떠올리고, 방송을 미처 듣지 못한 시청자도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이 자연스럽고 분량도 적절했다. 방송 후 포털 사이트에서는 깨알 재미를 준 효과나 자막, 실시간 채팅창을 소개하는 시각효과가 방송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몰입도를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두 매체의 만남: ‘라디오를 살려야한다’

▲ 제작진과 두 DJ, 유병재 작가 모두 파일럿 방송에 대한 아쉬움을 내심 표현했다.ⓒKBS

<여우사이>는 라디오와 TV라는 두 매체의 결합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라디오가 청취자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뼈아픈 진단을 내린 데 따른 시도다. 윤 PD는 “혁신과 변혁의 시대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색다르고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하고 싶다. 라디오가 아날로그-올드미디어라고 해서 기존 방식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할 거라는 답답함을 항상 가지고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2년 전부터 윤 PD는 이미 ‘오디오 온리’에 경험이 없는 세대를 라디오로 유인하기 위해서 콘텐츠 소비 경향을 분석했다. 사람들이 영상과 이미지가 없으면 콘텐츠를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고 라디오가 영상과 조우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MBC<마이리틀텔레비전>이 성공을 거두고, MCN과 같은 1인 인터넷 방송이 주목받는 지금에서야 묵혀뒀던 기획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는 “방송을 보고 들으며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라디오의 본질이고, 강점이란 점에서 인터넷 방송과 매우 닮았다. 인터넷 방송이 화제가 되는 걸 보고 (<여우사이>를 기획해도 좋다는)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두 매체의 결합: 예능도 리프레시가 필요해

▲ <여우사이>는 '여기서 우리들의 사랑을 이야기하자'는 뜻으로 유희열이 직접 지었다. ⓒKBS

KBS 예능국 역시 예능 가에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쿡방, 먹방, 육아 예능이라는 포맷의 획일화와 변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예능국에서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TV판 연출을 맡은 손지원 PD는 “TV를 통해 라디오의 기능을 환기하는 게 이상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라고 답한다. 이어 손 PD는 “라디오라는 올드 미디어가 인터넷과 TV라는 타 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심야 라디오가 과거처럼 젊은 세대의 놀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방송과 라디오의 협업 그 자체로 파격적이었지만 방송의 진행과 구성도 새로움과 도전에 무게를 둔 듯 보인다. 유희열을 단독 DJ로 두는 안전한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집단 DJ 체제를 선택해 정형돈을 진행자로 섭외하고 작가로 유병재를 기용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콘텐츠와 내용을 다르게 담아내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예상대로 3시간 방송 내내 세 사람은 신기하게 합을 자랑했다. 시작한 프로그램인 만큼 1부에서는 배경음악을 잘못 틀거나 음향 조절이 안 되는 등 소소한 실수도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셋은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코너를 선보이기 바빴다. 특히 작가 유병재가 쓴 각본으로 진행한 ‘라디오극장-감성진료소’ 콩트코너는 청취자에게 큰 웃음을 줬다.

예능과 라디오가 만나니 투닥투닥

▲ 생방송 라디오 제작과정이 '여우사이'에는 고스란히 나온다. ⓒKBS

예능과 라디오의 협업에 어려움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매체의 차이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특성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늘 함께 하는 스태프가 많고 ‘일을 벌려야 하는 스타일’ 이라면 라디오는 ‘조용하고 소소한 스타일’이다.

가령 방송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서 3시간이라는 시간이 라디오라는 매체에는 무리수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편성해야 했다. 즉흥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인 윤성현 라디오 PD는 이번 경험을 통해 방송이 늘어지지 않으려면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2부 ‘라디오극장’ 역시 기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는 콩트는 지루해지기 전에 짧게 끊는 게 원칙이지만 기존 방식을 탈피했다. SNL에서 보여준 유병재 식 어법과 개그를 마음껏 풀어내도록 2부 전체를 유병재에게 내어주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두 PD모두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손 PD 역시 “(촬영하면서)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해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다”고 터놓았다. 작은 라디오 부스 안에 40~50명이 넘는 촬영 스태프들이 들어가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는 상황에서 DJ들이 심야 라디오의 잔잔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넘게 따로 살던 두 사람이 만났을 때도 관계가 자연스러울 수 없듯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만남이니만큼 어색함과 어려움이 오히려 리얼했던 게 아닌가. TV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으면서도 아닌 듯, 더욱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TV와 라디오라는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절충과 타협의 접점을 찾아가는 여정은 PD들이 직접 시도하고 또 부딪혀 깨져봐야 알 수 있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여우사이>의 후반부, 아팠던 정형돈과 유희열이 방송이 끝난 후 개인 인터뷰를 통해 정규편성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미련을 끊임없이 보여준 이유다. 기획을 맡은 손지원‧윤성현 두 PD 모두 “방송 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다음에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는데” 라는 방송에 대한 애착과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과연 <여우사이>가 정규편성의 벽을 넘어 일주일에 한 번 라디오로는 그 동안 잊고 지낸 '새벽 감성'을 느끼고 TV로 라디오부스의 풍경을 '훔쳐 보는 재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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