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 1년, 여전히 밀실에 갇힌 공영방송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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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포커스]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절차 및 방식에 대한 논의조차 '비공개'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지난해 5월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한 가지 항이 신설됐다. 제46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등) 제9항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사인 KBS, MBC, EBS를 관리・감독하는 각 이사회는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법 개정이 1년도 더 지난 현재까지도 이사회가 ‘비공개’를 거듭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KBS이사회는 방송법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는 방송문화진흥회법 제9조(이사회의 구성) 제6항에, EBS이사회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13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제8항에 각각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신설된 이유는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이사회 회의 과정을 공개함으로서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최고의결기구로서 시청자에게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위함이다. 특히 보수 정권 집권 이후 방송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개선책으로 나온 복안이기도 하다.

각 공영방송의 이사들은 여야 정치권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는데 이들은 방송사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을 다루고 방송의 운영계획, 예산·자금 계획 등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 사장을 임명·추천하는 등 공영방송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장임명(추천)권을 갖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조가 ‘여대야소’로 정부·여당 측 추천이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수적 우위에 따른 일방적 정책 결정은 물론 이 같은 여대야소 구조가 ‘친(親)정부 사장’ 선임으로 이어진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우려에서 방송법이 개정돼 시행된 지도 1년이 넘었다. ‘밀실 이사회’, ‘깜깜이 이사회’로 불리던 공영방송 이사회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방송법이 개정됐지만 공영방송 이사회는 지금도 ‘밀실’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KBS이사회 회의 장면 ⓒKBS

시청자가 내는 월 2500원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사장을 임명 제청하는 권한을 가진 KBS이사회가 시청자에게 사장 선임 절차와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지난 7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후임 사장 임명 제청을 위한 절차와 방법에 관한 건’을 ‘비공개’로 논의했다. 인사 문제도 아닌 절차 문제를 표결에 부쳐 비공개 처리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KBS이사회는 회의 공개 여부에 대한 결정조차 비공개로 진행했다.

지난해 방송법 개정 당시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사와 사장의 결격사유 등을 강화하고, 사장의 선임에 앞서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정파성이 배제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히며 KBS 사장 선임 시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이처럼 방송법 개정은 공영방송을 이끌어 나갈 사장 선임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KBS 사장 선임 절차에 대한 안건 논의 과정을 이사회가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방송법 제46조 제9항과는 어긋나는 것이며, 방송법 개정 이유와도 어긋난다.

동조 동항에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사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으나 이는 △다른 법령에 따라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가 제한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공개하면 개인·법인 및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감사·인사관리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하면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한다. 그러나 KBS 사장 선임 절차와 방법이 이 같은 비공개 사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 ⓒPD저널

이인호 KBS이사장은 지난해 KBS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수준으로 KBS이사회 회의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이사회에서 보듯이 사장 선임 절차와 방법에 대한 논의를 비공개로 한 것은 결국 이 이사장이 국감에서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통위의 경우 KBS 등 공영방송의 이사 선임계획을 공개하여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단지 절차와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부터 불투명하게 진행되자 “시작부터 감추고 보는 KBS 사장”, “KBS이사회의 노골적인 ‘밀실 사장 뽑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시작부터 ‘밀실’이라는 지적을 받는 선임 절차가 인사청문을 거친다고 해서 과연 투명성과 공정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절차와 방법’에 관한 논의는 후보자의 신상정보를 노출하거나 개인에 대한 긴밀한 평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전혀 없다. ‘선임방식’에 관한 논의를 공개하는 것이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리도 만무하다”며 “오히려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사장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저해하여 심사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 것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같은 비판 여론이 일자 KBS이사회 사무국 관계자는 “회의 공개와 관련해서 지금보다 공개의 폭이 넓은 쪽으로 바뀌도록 회의 공개 등에 관한 시행 규칙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하위법이라 할 수 있는 규칙에 우선하는 게 상위법인 ‘방송법’이다.

방송법에서 말하는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의 의미는 소극적 공개가 아니다. 지난해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영방송 이사회 회의 공개와 관련한 법률 검토를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회신 받은 결과에서도 입법조사처는 “이사회 공개의 의미는 회의 자체 공개는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회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 EBS 사옥 이미지 ⓒPD저널

이 같은 문제는 또 다른 공영방송 이사회인 방문진과 EBS이사회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방문진과 EBS이사회 역시 ‘공개가 원칙, 비공개는 예외’로 해야 하는 법 개정 취지와는 달리 ‘비공개가 원칙, 공개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비공개 진행이 대부분이다. 비공개 경우 이사회의 의결로 한다는 법의 내용과 달리 미리 ‘비공개’를 공지하기도 한다. 당장 오는 11월 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EBS 역시 KBS이사회처럼 ‘밀실 진행’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영방송 이사회의 일방적 행보를 막을 수 있는 별다른 방안은 없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국회에서 법률 개정 취지에 맞게 (공개하도록) 질타를 해줘야 한다”고 한 것은 뾰족한 수가 없는 현 상황에 대한 자조와도 같은 지적이다.

방송법이 개정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KBS이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라는 선서를 하고 방통위 수준으로 회의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공개는 여전하다. 법 개정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과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과연 공영방송 이사들은 ‘공영’이라는 의미에 대해, ‘공영방송 이사회’의 역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방송법 개정의 취지와 말로만 남은 국감에서의 약속에 대해 거듭 질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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