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레이싱 프로그램, 틀린 그림 찾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 랠리스트', '더 레이서'와 판박이 이유 있다

야심한 밤, 또다시 모터스포츠다. 분명 같은 토요일 저녁, 연예인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을 달렸던 것 같은데 똑같은 배경에서 레이싱이 펼쳐지고 있다. 이 방송이 지난 달 방송을 시작한 <더 레이서>의 재방송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새 프로그램인지 헷갈려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번엔 MC도 다르고 출연진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다. 두 방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출연진만 다를 뿐 방송의 배경 장소와 진행방식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든 바로 알 수 있다.

지난 17일 밤 12시 15분 첫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더 랠리스트>와 10일 매우 저조한 성적으로 종영한 <더 레이서>이야기다. <더 랠리스트>는 한국을 대표할 ‘랠리 드라이버’ 선발을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기획된 10부작 프로그램이다.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두 경기는 F1그랑프리와 WRC(월드 랠리 챔피언십)다. <더 랠리스트>는 이 중 WRC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5주간의 합숙 후 최종 선발된 지원자 1인에게는 랠리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2년 유럽 교육 연수를 지원하고, 세계 랠리 대회인 WRC 출전 기회를 제공한다.

▲ 대한민국의 랠리 드라이버를 세계 '최초' 오디션 방식으로 선발한다는 SBS '더 랠리스트'.ⓒSBS

<더 랠리스트>는 자동차 수출국임에도 내로라하는 드라이버가 없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며 문을 열었다. 프로그램은 이날 방송분 중 초반 10분여를 할애해 랠리 드라이버 양성을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며 당위성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MC를 맡은 배성재 아나운서가 2015 WRC 9차전이 열린 독일을 직접 찾아가 외국에서는 이미 WRC가 대중적인데 한국은 ‘부족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더 랠리스트>는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21일까지 4986명이 지원을 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차 면접 후 600여 명의 지원자는 TOP 21로 선발되기 위한 예선전을 치렀다. 이날 방송은 예선전의 이모저모를 보여줬다. 심사는 평탄한 광장에 콘컵 등을 사용해 복잡한 코스를 설정해 이를 빠져나가는 시간으로 순위를 정하는 ‘짐카나’ 방식이었다. 21인 중 첫 번째 탈락자를 선정하는 미션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포함된 1.4km 달리기 등으로 기초 체력을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는데 <더 레이서> 역시 탈락자 선정 시 짐카나, 철인 체력 검증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방식을 채택함에도 랠리 드라이버에 적합한 ‘인재’를 검증하고 선발하는 것 보다 외모가 예쁘거나 잘생긴 지원자나 차량을 수대 보유한 지원자, 연예인 매니저 지원자 등 진짜 실력과 사연보다는 화제성이 클 것 같은 외부 요소에만 집중하는 가벼운 모습을 보여 진정성과 진지함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혹평을 받았다. 초반부에 방송이 길게 설명했던 ‘진짜 랠리스트’를 양성하겠다는 기획의도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 지난 10일 저조한 성적으로 종영한 SBS'더 레이서'의 배경 역시 인제스피디움이다.ⓒSBS

진행방식에서도 예선 후 갑자기 합숙 전 체력 테스트를 진행해 ‘달리기’만으로 1차 탈락자를 발표한다거나 합숙을 시작한 지 17시간 만에 심야 레이싱을 통해 두 번째 탈락자를 선정하는 엄혹한 미션이 이어지는 모습이 2회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아 과연 프로그램이 세계 대회에서 달릴 선수를 제대로 뽑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방송 특성상 정해진 분량과 시간 안에 탈락자를 가려내 우승자를 선발하는 게 목표라지만 ‘탈락’과 ‘경쟁’만을 부각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다.

<더 레이서>는 7회 중 자체 최고 시청률 3.1%(닐슨코리아 전국 집계 기준)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청자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동시간대 MBC<무한도전>이 방송되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더 레이서> 후속으로 방송된 <주먹쥐고 소림사>의 6.0%의 시청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더 랠리스트>의 실패에도 SBS가 계속해서 실패한 기존의 레이싱 프로그램을 그대로 반복하는 식의 ‘판박이 프로그램’을 연달아 방송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더 랠리스트>와 <더 레이서>의 무대인 인제 스피디움이 SBS미디어홀딩스의 최대주주인 태영건설이 투자한 곳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제 스피디움 사업의 실적이 저조하자 SBS와 관계사들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게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내부에서 일기도 했다.

사실상 SBS의 인제 스피디움 띄우기 조짐은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됐다. 지난 5월 7일 SBS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 코너에서 인제 스피디움을 배경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촬영하고 인제 스피디움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내용이 광고효과를 줄 수 있다며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행정지도인 ‘권고’를 조치했다. 이외에도 인제스피디움은 지속적으로 타 프로그램에도 수차례 등장했다. 지난 6월 7일 방송된 <런닝맨>은 이를 배경으로 진행됐으며,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의 특집 공개방송이 열리기도 했다. 실제로 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 7월 27일 열린 편성위원회에서 사측에 ‘인제스피디움 띄우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8월 4일에 이와 관련해 성명을 낸 바 있다. 사측은 해당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WRC가 애들 장난이냐”는 일부 시청자의 비판과 ‘인제 스피디움 띄우기’라는 ‘합리적 의심’과 노조 측의 문제제기를 일축하기 위해서는 SBS <더 랠리스트>가 남은 9회 동안 과거 레이싱 프로그램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고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