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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KBS ‘해피투게더 3’ 개편에 부쳐
  •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5.10.21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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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시기, 꽤 어렵게 들어간 영화잡지사에서 예능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무한도전>과 박명수 때문이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작가겸 TV프로듀서 출신의 주드 애파토우가 자신의 코미디 사단을 이끌고 영미권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때 합류 한 인물이 이제는 유명 배우가 된 세스 로건, 조나 힐 등이다.

이들의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덜 자란 중산층 백인 남자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 우선 학교에서 소위 ‘너드’ 우리 비속어로는 ‘찐따’에 속했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연애를 비롯해 취업 등 사회적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유예된 성장을 극복하거나 즐기는 과정에서 오는 따스함과 위안이 욕설, 섹스, 마약으로 점철된 코미디의 하부를 이룬다. <무한도전>이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런 에너지와 정서가 예능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평균 이하를 내세운 프로그램과 당시 방송 문법을 그냥 휴지조각으로 만든 박명수의 캐릭터는 우리 땅에 그들만의 독보적인 코미디 영토를 만들었다. 그리고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 KBS '해피투게더3' ⓒKBS

그즈음 <해피투게더>는 3번째 시즌으로 개편했다. 터줏대감인 유재석의 짝으로 당시 최전성기를 누리던 <무도>의 콤비 박명수를 영입했다. 이 변화는 <무도>의 에너지를 빌려온 것 외에도 매우 큰 변화를 일으켰다. 시즌2는 유재석과 김제동의 더블MC였지만, 박명수를 맞이하며 유재석 1인 MC체제로 본격 전환됐다. 박명수는 유재석에게 진행을 일임하고 엉뚱함 등으로 핀잔과 타박을 받으며 웃음을 생산하는 <무도>의 캐릭터에 충실했고 그 밑으로 그간 거쳐 간 박미선, 신봉선, 허경환, 김신영, 이번에 살아남은 조세호 등 모든 고정 출연자들이 패널 타입의 보조 MC 역할에 한정됐다.

그리고 다시 7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해피투게더3>는 중간 개편을 단행했다. 결과는 현재 참담하다. 물론 세트장과 유니폼은 달라졌다. 그런데 모든 공력과 회의를 세트 구성에 할애한 듯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정서를 갖는 쇼인지 명확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한계가 온 1인 진행과 패널진이란 토크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서의 수정은 아예 건너뛰었다. 정서는 물건을 기증한다는 감동코드를 억지로 집어넣고, 구조 공사는 패널만 교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새로 투입된 MC들은 각자 자신의 장점은 접어두고 오로지 어시스트만 해야 한다. MC진의 역할이 유재석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것으로 한정되자 진행자로 잘나가는 전현무와 김풍은 교체된 기존 멤버들과 별 다를 바 없이 헤매고 있고 박명수는 이미 그때 그 시절의 폼이 아니다. 정작 웃음과 재미가 발발할 구조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 건물 외벽에 페인트만 칠한 다음 리모델링했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 KBS '해피투게더3' ⓒKBS

속내를 뜯어봐도 새로워져야 하겠다고 하면서 타임머신을 탄 듯 완전히 과거로 돌아갔다. 차라리 유행에 편승해 셰프라도 계속 나오면 메뉴에 따라 화제라도 이끌 수 있었을 텐데 사연이 있는 물건, 깜짝 손님, 장기자랑, 과거 작품 이야기 등 에피소드 토크로 완벽하게 회귀했다. 샤워할 때 남자들이 스스로 멋있게 보이지 않느냐, 조정석에게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이야기 등 가장 상투적이고 가장 새롭지 않은 에피소드식 토크만을 고집스럽게 복원해냈다.

스스로 비상체제라고 하지만 유재석도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고, 제작진은 오늘날 예능의 흐름과 너무나 동떨어진 리뉴얼을 했다. 캐스팅만 봐도 1회는 지인들, 2회, 3회는 모두 영화 홍보 출연이다. KBS도 파일럿이 쏟아지는데 14년차 장수 예능이자 우리나라 예능계 간판선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치고는 너무나 안일한 모습이다.

앞서 언급한 주드 애파토우는 어느덧 <스파이>의 폴 페이그 감독 등 자신의 후배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어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20대가 아닌 30, 40대의 성장 그 이후를 그리고 있다. 인기와 반응이 예전만 못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해피투게더3>는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거스른다. 이것은 게으름일까 아집일까. 진정 비상체제임을 인식한다면 유재석과 제작진이 진심으로 바꾸려고 노력할 것은 출연진과 세트가 아니라 토크의 구조와 그 정서임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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