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PD가 소송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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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기 PD의 시시콜콜 취재노트]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이 가지는 부담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판을 당하는 쪽에서 가하는 다양한 형태의 압력은 제작 기간 내내 아니 방송이 나간 후에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취재 상대방의 반발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겪은 일들만 해도 정말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 밤늦게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너를 죽이니 살리니..”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고 점잖은 목소리로 “잘 봤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나름 신사적으로 마무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정도는 전화 통화하는 순간만 잘 참고 지나가면 큰 문제는 없다. 사실 PD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소송이다. 사건에 따라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PD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거기다 최근 들어서는 개인이나 기업에서 PD들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사소송에 휘말리거나 방송심의로 인한 행정소송도 많이 발생하면서 PD들이 법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소송이야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오늘은 내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경험했던 소송, 언론중재위원회 사례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선후배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일들을 통해서 PD가 어떻게 하면 소송을 피할 수 있고, 만약에 송사에 휘말린다고 해도 승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 KBS '추적60분-천안함' 편 대법원 판결서 ⓒPD저널

지난 7월 14일, 촬영 도중에 사내 변호사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대법원에서 우리 사건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상고를 기각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4년여에 걸친 행정소송이 ‘승소’라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다. 문제의 방송은 <추적60분-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2010년 11월 17일 방송)편 이었다. 지금은 ‘뉴스타파’에서 활약하고 있는 심인보 기자와 내가 공동 제작한 이 방송은,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조사에 문제가 많으며 특히 흡착물질 조사, 천안함의 스크류 조사, 어뢰 피격 원점 발표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조치를 KBS에 내렸고 나를 비롯한 제작진은 이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방송 내용에 객관적인 문제가 없고 의혹 제기도 합리적이었으며 심지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라는 칭찬(?)까지 해 주었다. 예상대로 방통위는 1심, 2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별도의 심리도 거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해버렸다. 말 그대로 ‘완승’이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취재할 때부터 방통심의위원회의 징계나 개별적인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무려 4년 이상을 시달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비록 개인적인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을 겪었던 많은 PD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4년 전, 행정소송의 준비서면을 쓰면서 시작된 소송이 대법원에 가서야 결론이 나면서 나는 프로그램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송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겪어 본 몇 안 되는 PD가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재판을 ‘승소’로 끝낼 수 있었던 요인들은 무엇이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 KBS '추적 60분' 천안함편 ⓒ화면캡쳐

1) 모든 증거를 남겨라-결국 재판은 증거싸움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악인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반대도 성립한다. 방송내용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가 있어야 상대가 억지로 소송을 거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고 소송에 휘말려도 이길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증거란 곧 제작과정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추적60분 ‘천안함’편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가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이유는 그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들을 우리가 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보통 PD들은 주요한 인터뷰 테이프나 영상파일을 보관한다. 나는 방송에 나오지는 않더라도 모든 인터뷰이와의 대화 내용을 촬영했고 또 보관했다. 이것은 처음 시사프로그램 제작을 경험할 때부터 선배들에게 여러 번 들었던 일종의 FM이었다. 공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카메라 세팅을 할 때에도 최소한 음성은 녹음하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카메라의 레코딩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 왜냐하면 주로 중요한 말은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 그 전후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천안함의 스크류 휨 현상 조사에 참여한 한 대학 교수를 만났을 때였다. 당시 국방부는 조사 보고서에서 스크류가 휜 것에 대해 스웨덴의 제조사에서 조사를 했으며 그 회사가 천안함의 스크류가 휜 것은 좌초 때문이 아니라 폭발 때 생긴 관성에 의한 것이라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그는 그 보고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형식적인 대답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내가 몇 가지를 물어보자 솔직한 본인의 심정을 이야기해줬다. “내가 조사했는데 왜 스웨덴 회사가 조사를 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결국 그와 한참을 이야기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고 인터뷰 전후 대화의 몇몇 문답은 방송에서 내 논리를 세워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재판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자료조사나 섭외를 위해 중요한 인물들과 통화할 때는 무조건 녹음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 녹취를 하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전화기에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연결해서 따로 녹음을 해야 했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그 고통도 사라졌다(녹취에 따른 법적인 문제는 여기서 논하기에 아주 복잡하나 간단하게 생각하면 방송에서 사용하느냐 마느냐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면 녹음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만약 녹화나 녹음마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취재노트에 바로 바로 내용을 기록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취재도중 만났거나 전화통화를 한 내용을 간단하게라도 노트에 기록해둔다면 그 것도 중요한 증거자료로 채택될 수 있다. 이런 메모는 취재 과정에 윤리적인 논란이 발생했을 때에도 필수적인 논거가 될 수 있다.

2) 회심의 카드를 반드시 남겨두자-2007년, ‘소비자고발’을 만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유부남들에게 불륜 상대자를 알선하는 한 결혼중개업체의 문제점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해당업체의 대표(지금도 그 여사장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빨간 바지는 내게 공포로 남아있다)는 한창 취재가 진행 중일 때, 내게 전화를 걸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과 협박을 해댔다. 사실 겁이 나기도 했고 막상 대꾸할 말도 딱히 없을 때, 몰카 촬영된 그 여사장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여대생으로 위장해 상담을 받고 있던 우리 스태프에게 “등록금 내기도 힘든데 눈 딱 깜고 유부남이랑 몇 달만 놀아주면 돼.” 라고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방송에 쓰기도 애매할 정도로 ‘센’ 표현이라 편집에서는 빼려고 했던 멘트였다. 그런데 내가 “사장님, 이 말하신 거 기억하시죠? 계속 인정하지 않으시니 이 말도 방송에 넣을 겁니다.” 라고 했더니 그녀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그녀는 퍼붓던 욕설을 멈추고 “그런 말 한 적은 없는데...”라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소송을 걸지도 않았다. 심지어 방송이 끝나고 그 여사장은 내게 전화를 걸어 와 “이번 기회로 새로 사무실을 잘 해보려고 해요. 고맙워요. 강PD도 고마워요”라고 했다.

‘천안함’편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국방부 소속으로 천안함과 어뢰에 붙어있던 흡착물질의 성분을 조사한 한 과학자에게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 전날의 인터뷰가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였다. 물론 그 통화는 당연히 녹음했다. 그런데 몇 가지 단순한 질문에도 답변이 막히더니 그가 “사실 추적60분의 실험 결과가 맞아요. 저도 아직 그 흡착물질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대로 말을 하면 문제가 커질 거 같아서...”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전화통화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에는 특종을 건졌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녹취 그대로를 방송에 넣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분명히 방송 후에 여기저기서 엄청난 공격이 밀려 올 텐데 나를 방어할 무기가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해당 멘트를 방송에 넣지 않고 말 그대로 keep하는 것이었다. 대신 내레이션과 음성대역으로 요점만 방송에 넣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방송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서 부당한 공격이 들어온다면 이 녹취를 근거로 후속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과 만일에 있을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전체 녹취내용은 아껴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 이유로 후속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는 법원에 해당 녹취 전체를 제출했고 이는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3) 취재하면서 말을 아껴라-취재를 하다보면 PD 자신이 분노하기도 하고 사건 자체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표현’을 하게 된다. 무심코 뱉었던 짜증 섞인 욕설이나 부정확한 말을 가지고 상대방이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이내 방송의 본질을 둘러싼 다툼은 사라지고 그 표현에 대한 논쟁으로 싸움이 변질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소비자 고발>을 제작할 때 한 이민업체의 사기 행각을 고발한 적이 있다. 이 업체는 허위 과대 광고를 통해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돈을 받아 챙겼지만 막상 약속했던 취업 장소가 아닌 닭 가공 공장이나 청소부 등으로 이민자들의 취업을 알선했다는 의혹이 있던 회사였다. 그때 해당업체 담당자에게 공식 인터뷰를 얻어내기 위해 나는 “제보자들의 주장이 좀 이상해서 나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업체의 고민을 이해합니다”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마 그들도 내 말을 다 녹음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 이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녹취하는 것이 편해진 만큼 상대방도 편해졌다.

아무튼 방송 후, 이 업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중재위원들 앞에서 업체의 변호사는 나의 그 발언을 문제 삼으며 취재 당시에는 이해한다고 해놓고 방송에서는 억지주장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행히 나의 그 한마디보다 다른 증거들이 압도적이었기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도 문제없이 사건을 종결했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필요한 말만 하고 늘 취재 상대방이 더 오랫동안 말을 하도록 만들어야하며 아는 것도 다시 질문하고 알아도 다시 물어봐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꼭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에 대한 제재조치처분취소 2심 판결문 일부 캡쳐.

4) 팩트는 기본이다-너무 뻔한 말이라서 더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원칙이다. PD의 주관적인 주장을 중심으로 제작된 방송은 소송으로 들어가면 절대 불리하다. 어떤 논리의 방송이든 사실에 철저히 기반한 내용이어야 한다. 물론 쉬운 게 아니다. 심증도 많고 정황상으로 보면 더 심각한 악행을 한 것 같지만 방송에서는 PD가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걸 넘어서는 순간, 소송은 불리해진다. 취재기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도를 벗어난 함정 취재나 도덕적으로 비판의 소지가 있는 취재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지양해야하지만 법적으로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방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인터넷이 없고 미디어가 TV와 신문에 국한된 시절에는 그런 기법들을 사용한다고 해도 프로그램들이 통하던 때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아무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뒷걸음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법원이 객관적이고 사실에 기반해 제작되었으며 취재과정에도 큰 문제가 없는 프로그램까지 벌할 수는 없다. 다행히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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