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정부 광고, 단순한 광고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피 한 줄로 일방 홍보…광고 게재 ‘한겨레’ 내부서도 비판

▲ 교육부가 지난 15일을 시작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등 전국 단위 일간지와 경제지 등 총 22개 신문에 집행한 광고.

한 편의 광고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는 교육부의 광고다. '쉬운 해고'로 대표되는 노사정 합의에 이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여론이 들끓자 대대적인 ‘선전전’에 나선 모양새다. 여기에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언론의 태도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부의 이번 광고는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감을 키울 수 있는 역사교과서"라고 설명하며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에 충실하게 만들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2일 교육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행정예고한 이후 여론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교육부의 공식 발표 이후인 지난 13일부터 15일간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국정화 찬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찬반이 각각 42%로 팽팽히 갈렸다.

찬반여론이 대립하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15일을 시작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등 전국 단위 일간지와 경제지 등 총 22개 신문에 해당 광고를 집행했다. 진보, 보수 등 매체 성향을 가리지 않고 집행된 광고의 집행비는 5억 원 규모. 신문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홍보하는 40초짜리 동영상이 지난 19일부터 등장했다. 반대하는 국민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대국민 여론전에 들어간 것이다.

▲ 교육부에서 제작한 영상광고. ⓒ교육부

정부와 여당은 기존 검정 교과서들이 지닌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잡고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고 국정화 이유를 밝혔지만 오히려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사학계, 시민사회, 심지어 학생들조차 국정화는 오히려 사실 왜곡과 이념 편향적으로 흐를 수 있다며 국정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역사학자들과 역사 교사들은 대대적으로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성명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가장 역사가 길고 보수적 성향의 역사학회 역시 국정화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국정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자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한 줄의 문장을 통한 여론전이다.

앞서 정부는 노동계 안팎의 비판을 받았던 노사정 합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세대 갈등으로까지 부각되면서 비판이 일자 40초짜리 영상물을 제작해 지상파 3사를 비롯한 전국 전광판 115개와 전국 영화관 1272개 스크린의 상영 전 광고, 서울시내 버스 주요노선 1574대 등에 노출한 바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여론전을 통해 ‘노사정 대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은 노동개혁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은 일면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전후 관계 등이 생략된 속에서 보여주는 광고는 정부와 여당의 말마따나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편향 및 친일미화, 밀실 수정 논란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 실패 후 나온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본질은 ‘올바른’이 아닌 ‘왜곡’이며 시대착오적·반민주적 행위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 2015년 10월 19일 <한겨레> 1면에는 교육부에서 제작한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광고가 실렸다. 사진은 해당 지면.

이런 맥락 속에서 지난 19일 진보성향의 매체로 분류되는 <한겨레> 1면에는 교육부의 의견광고가 실린 것을 두고 비판이 높다. 정부가 광고를 집행한 신문 가운데 <경향신문>만이 교육부 광고를 싣지 않았는데, 그동안 국정화 반대 기사를 실어왔고 또 19일자에서도 비판적 논조를 보였던 <한겨레>가 정부 광고를 게재한 것을 두고 기사 논조와 광고의 불일치를 둘러싼 비판이 일고 있다.

광고는 단순히 광고일 뿐이며, “기사와 광고는 별개”로 광고가 기사 논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 광고는 단순히 교과서를 국정화 할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관계를 알리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행이자 유신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을 덮고 당위성만을 강조하려는 정부의 여론전이다.

이 같은 상황에 <한겨레>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겨레> 측은 기사와 광고는 별도로 집행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언론노조 한겨레지부가 당일 성명을 통해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형식논리만을 이번 정부 광고의 취급에 대한 한겨레의 판단 잣대로 삼기 어렵다. 정부 광고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며 지극히 타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도는 불순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한겨레 구성원이라면 모를 리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광고는 단순히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그 성격과 사안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노조가 지난 20일 논평을 통해 “정부가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매체를 통해 홍보 광고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의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기 위한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며 “외신들까지 정부여당의 강행 의도를 지적하는 마당에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신문 광고가 웬 말인가. 국민 여론은 결코 ‘국정화’ 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 역시 정부의 광고가 의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전달이라는 점에서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하는 건 완벽하게 여론을 돌리기보다는 역사교과서 찬성 여론을 보다 견고하게 만들고 비판 여론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는 일견 그럴싸해 보이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기사와 광고는 별개”일 수 있지만, 그 전에 한 문장 뒤로 감춰진 수많은 맥락과 비판의 목소리를 떠올려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