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독서단’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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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셀러 영향력과 출판 시장의 양극화

출판·문학 시장이 하향세를 걷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북 토크쇼 O tvN <비밀 독서단>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소개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진입하면서 출판 시장에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기를 얻거나 영화·드라마 등의 미디어를 통해 화제를 낳는 미디어셀러.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오아시스는 미디어일까.

종이책의 위기.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어려워진 건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 되면서부터다. 스마트 기기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의 게임, 영화, 방송, 뉴스 등의 흥밋거리와 가십거리에 눈길을 빼앗기면서 책을 펴기가 쉽지 않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한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26분으로 조사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시간이 2.3시간, 1.6시간인 데 비하면 ‘독서 가뭄’인 상황이다. 이 가운데 미디어가 출판 시장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 OtvN '비밀독서단' ⓒCJ E&M

출판 시장에 파장을 일으킨 <비밀 독서단>은 책을 주제로 하지만 예능 요소를 접목시켜 대중의 소구력을 높이고 있다. 기존 책 소개 프로그램들이 전문가 패널을 출연시켜 양질의 정보를 전했다면, <비밀 독서단>은 정찬우, 데프콘, 김범수, 예지원 등이 선정된 책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해 다소 무거울 법한 분위기를 덜어냈다. 연출을 맡은 김도형 PD도 “<비밀독서단>에서는 책에 대한 호평만 존재하지 않는다. 단원들의 솔직한 감상평과 반론, 그리고 단원들의 진솔한 경험담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뉴스엔> ‘비밀독서단’, ‘책책책’ 이후 10년만 독서 신드롬 일으키나)

<비밀 독서단>의 영향력은 예상 밖으로 컸다. 박준 시인의 시집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악당의 명언>, 역대 설득의 고수들의 말을 분석해 설득의 비밀을 풀어낸 <레토릭> 등이 줄줄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등 미디어셀러의 위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셀러는 방송의 영향력으로 홍보 효과만 누리지 않는다. 오히려 방송될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등 출판 시장의 흐름 자체를 미디어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디어셀러의 흥행은 <비밀 독서단>과 같은 TV 프로그램 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대안 미디어로 등장한 팟캐스트의 경우 미디어셀러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문학 팟캐스트로 자리 잡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이언 맥큐언의 <속죄>가 소개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또 절판됐던 일본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 대해 언급을 하자 출판사에 독자들의 재출간 요청이 쇄도했다. 젊은층의 수요가 높은 팟캐스트가 신간 뿐 아니라 책의 출간에 재점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셀러의 승승장구는 빛을 못 보던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기회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도리어 출판계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를 통해 수혜를 입는 출판사는 한정돼 있는데다가 드라마에서 간접광고(PPL)를 진행할 수 있는 출판사들이 소수에 불과해 미디어셀러 열풍이 출판 시장의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재기와 마찬가지로 자본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미디어 노출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상업적인 미디어셀러 만들기에 나설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방송사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된 사례들이 있었기에 <비밀 독서단>의 작은 흥행은 반길 만하다. 시집을 출판한 출판사는 증쇄를 하며 ‘반짝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맞물려 단행본은 아니지만, 40여 년을 버텨온 문예지 <세계의 문학>이 폐간되고, 만성적 적자를 타개를 위해 <소설문학>이 잠정 휴간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미디어셀러’만 살아남는 현실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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