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평가’ 명분으로 ‘방송 통제’하려는 정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석] 방통위, 방송평가 공정성 기준 강화 문제점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지난 23일 방송심의 규정 중 ‘공정성’,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등을 위반한 경우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시 감점을 2배 강화하는 내용의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한 것을 두고 ‘방송 국정화’라는 비판이 거세다.

막말・편파 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에 대한 규제 강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뉴스를 차단하고 오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대비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4월 8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방통위는 지난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야당 추천 위원들이 절차의 부적절함을 항의하며 퇴장한 가운데 여당 위원들만이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보고받았다.

개정안은 운영・내용・편성 등 방송 평가 3개 영역 중 운영 영역의 평가 비중을 축소하고 내용 및 편성 영역의 평가 비중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내용 영역인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여부 평가’의 감점수준을 전체적으로 1.5배 강화하고, 방송심의 규정 중 ‘공정성’, ‘객관성’, ‘재난 등에 대한 방송’과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위반의 경우 감점수준을 2배 강화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막말, 자극적인 방송, 편파 방송에 대한 국회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를 고려해 내용 영역의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여부 평가’의 감점 수준을 강화했다”며 “이번 규칙 개정이 방송사업자들의 프로그램의 품격 향상, 오보 방지 노력을 촉구하고 방송평가의 내실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야당 추천 위원들은 해당 개정안이 방송평가 규칙을 심의하고 제안하는 방통위 내 심의기구인 방송평가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상정했을 뿐더러 오는 11월 말 공정성 평가 관련 방통위에서 발주한 연구과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방통위의 이 같은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해 공정성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방송평가에 반영해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조항 위반 시 감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방통위는 지상파 재허가, 종편・보도전문채널 등의 재승인 심사에 각각 40%, 35%씩 주요하게 반영되는 방송평가를 엄격하게 진행하기 위해 방송 공정성과 관련한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할 경우 감점 수준을 강화하고 공정성 평가지표를 개발해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한 장치가 되레 비판 저널리즘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권력 비판 보도 및 방송에 대한 방심위의 표적심의, 정치심의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심의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폐지 요구까지 있는 ‘공정성’ 심의・제재 결과를 2배 높게 반영하겠다는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통위의 이같은 추진이 방송을 국가가 통제하는 ‘방송 국정화’라는 비유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개최한 ‘방송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당시 문제가 된 내용 중 하나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공정성’이다. 정부 정책이나 공권력 행사에 비판적인 취지의 방송에 대해 정부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제재를 남용하면서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경고였다.

▲ 참여연대가 지난 9월 7일 공개한 '박근혜 정부 전반기 국민입막음 실태 보고서' ⓒPD저널

방심위의 이중적 잣대도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방심위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심의한 결과를 살펴보면 종편에 대한 심의건수는 총 231건으로 그 가운데 공정성 위반 건수는 38건(16.4%)이다. 38건 중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요소로 작용하는 법정제재인 주의(벌점 1점) 이상을 받은 경우는 7건이며, 행정제재(의견제시・권고)를 받은 경우는 31건(81.57%)에 달했다. 즉, 방통위가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종편에 대한 ‘봐주기 심의’ 비판이 일고 있는 현실에서는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방통위가 추진하는 개정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히 막말・편파방송에 대한 규제이자 프로그램의 품격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는 여론장악 및 언론통제의 흐름 속에서 방송평가 개정 작업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으로 부상한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 강화, 포털 사이트에 대한 공정성 문제제기 등이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지난 23일 전체회의에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반대하며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인터넷 매체 등록요건 강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댓글을 직권 삭제할 수 있게 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위축하거나 억압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서 추진하는 등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방송평가에 대한 규칙도 이런 맥락 속에서 추진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7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2014년 8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발생 7시간 가량 박 대통령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뉴스1

가뜩이나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위축된 상황이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과 박근혜 정부의 숨은 실세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해왔다고 보도한 <세계일보> 등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대선 기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댓글조작 및 정치개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한 심층취재를 진행한 최승호 <뉴스타파> PD의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 4월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은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됐는데,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협박이 증가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 그녀의 처신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에 대한 탄압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 언론의 공정성을 위해 필요한 건 바로 권력 비판에 대한 자유라고 언론인들은 말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