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훈장' 2부작, 어떤 내용 담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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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지시 대부분 박정희 관련 훈장 문제 때문"

제작진, 박정희의 일본총리 서신 삭제 지시 부당
박정희 집권 시기, 일본인에 수교훈장 등 문제 제기 담아

KBS 탐사보도 아이템 <훈장> 2부작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방 위기에 처해있다는 주장이 제작진에게서 나온 가운데 1편 '친일과 훈장'은 국내 언론 처음으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일본 유력 정치인에게 보낸 친서 내용 일부를 공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29일 코비스(KBS 사내게시판)을 통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기시 전 일본총리에게 한일 수교협상과 관련해 두 번 친서를 보낸 것이 확인됐다"며 "그 중 첫 번째 편지는 '귀하에게 사신을 드리게 된 기회를 갖게 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로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 셀픈 훈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

'훈장' 제작진는 지난 26일 사내 인트라넷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는데, 삭제 지시가 내려진 그 부분이 바로 박 전 대통령이 기시 전 일본총리에게 보낸 서신의 인사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 김형덕 탐사제작부장은 이 친서와 관련해 "제작진이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표현이 담긴 서신 내용을 문제가 많은 것처럼 서술했다"며 "편향적 해석이나 편협한 평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인사말을 넣은 것은 이 부분이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친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의 최고 권력자와 일본의 막후 실력자' 사이의 대등한 위치보다는 '사병과 장교', '제자와 스승' 관계 정도로 느껴졌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1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4,389명 중 000명이 000건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들을 주요 수훈자, 훈장 종류, 공적 사유 등으로 분석해 본 결과 친일행적을 가진 162명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에 일본인 70여명에게 수교훈장이 수여됐다는 사실 등을 전할 예정이었다.

'훈장' 탐사보도팀장 교체‧취재기재 타부서 발령 "이인호 박근혜 불편할 것"

한편 '훈장'은 KBS 탐사보도팀이 2013년 기획, 취재해오던 아이템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훈장을 누가, 왜 받았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다루는 기획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과연 헌법적 가치에 맞게 독립운동과 친일행위를 평가했는지를 '수훈현황'을 통해 따져보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탐사보도팀은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3년 동안 정보공개소송을 벌인 끝에 훈포장 수훈 내역을 모두 확보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이 미뤄지고 해당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던 탐사보도팀장이 교체되고 취재기자 2명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는 등 KBS가 의도적으로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아이템을 회피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KBS본부)는 지난달 11일 성명을 통해 “방송 편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가 사측은 방송 날짜를 확정해주기는커녕 제작진 두 사람을 아예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 내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라며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당시 친일행적자와 일제식민통치를 주도한 일본인들에게 대거 훈장을 수여했다는 방송 내용이 그동안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에 앞장서 온 이인호 이사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일행적자‧간첩조작 수사관이 훈장 받았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KBS

1부 '친일과 훈장' 편에서 친일 행적자 및 일본인 수훈 현황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2부 '간첩과 훈장'편에는 7,80년대 독재정권 시절 간첩조작 사건으로 훈장을 받은 대공 수사관 현황이 주요한 내용이다. 제작진의 말에 따르면, 7,80년대 간첩검거로 보국 훈장을 받았으나 이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공적이 거짓인 경우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 보국훈장 수의 비율이 14% 정도였다고 한다.

또 옛 보안사가 1979년1월부터 1986년12월까지 검거 수사한 간첩 사건을 정리해 펴낸 책 '대공활동사'에 실린 간첩 사건 중 이후 무죄로 밝혀진 사건은 62건 중 24건으로, 약 40%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요한 수치는 구성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전자는 취재 팀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진짜 간첩 사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대공수사 전체를 폄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처럼 제작진은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염두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구성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사측은 "제작진은 간첩 관련 재심 무죄 사건 전체를 '간첩조작' 사건으로 일반화해 표현하길 고집하고 있다"며 "편향적 해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에 제작진은 "취재한 5건의 사건을 포함해 60건의 재심 무죄 사건 중 아직 어떤 사건도 재수사에서 간첩으로 결론 난 사건이 없다. 오히려 수십억 원의 국가배상이 이뤄지고 있다"며 "절차상 불법은 인정하면서도 간첩조작에 대해선 일관되게 부정한다는 대공수사관의 주장 때문에 KBS가 '조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대공수사관들의 명예가 중요한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으로 본인이 간첩이라고 스스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인권도 중요하다"며 "KBS가 과거 이들을 모두 간첩이라고 뉴스는 물론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방송했다는 점에서 KBS도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복권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훈장' 원고의 데스킹 과정이 벌써 두 달째 이어지고 있으며 그 사이에 10여 차례, 20여 시간의 데스킹 회의를 거쳤으나 방송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 제작진이 '훈장'은 계획된 불방 수순을 밟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제작진은 "과연 '훈장 2부작'이 방송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며 "KBS가 3년의 소송을 벌여, KBS만이 단독으로 확보한 '훈포장 전수자료'라는 빅데이터를 방송하지 못한다면 큰 수치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작진의 주장에 대해 김형덕 부장은 "'방송날짜가 미확정'이라는 발언은 허위사실"이며 "'간첩과 훈장'편은 주간 편성회의에까지 방송 예정일자가 보고된 사안이었고, 전사적인 집중편성에 따라 순연을 고지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송 예정 날짜를 밝히진 않았다. 이어 "제작진이 정상적인 데스크 과정을 거부한 채 회사 대내외로 일방적인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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